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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계피 대추 그리고 내 마음


BY 바늘 2009-11-05

집안 가득 몇 시간째 차 끓이는 냄새가 진동한다.

생강 계피 그리고 대추

 

퇴근하면서 재래시장에 들러 재료를 사서 부지런히 귀가하여

들통에 물도 넉넉하게 붓고 각각의 성분이 진하게 우러나도록 몇 시간째 차를 끓이고 있다.

 

앞뒤 베란다  투명한 유리창은 차 끓이며 들통에서 발생하는 수증기로 말미암아 뿌옇게 변하고

간만에 뿌연 유리창을 도화지 삼아 하트 표시로 낙서도 해보았다.

 

예쁜 딸은 두 달째 자기 개발한다며 퇴근하기 무섭게 직장이 위치한 시청 쪽에서 강남으로

이동하며 영어 강의 들으러 다녀 늦고

 

대학 졸업반 아들은 취업 준비로 바빠 나름대로 시간에 쫓기며 또 늦고

 

이래저래 깊어가는 가을 아니 이제 겨울 본의 아니게 계절이 주는 을씨l년과 더불어

외롭고 고독하기만 한 요즘이다.

 

오늘 퇴근 후에도 일상대로 직장 앞 버스 정류장에서 습관처럼 집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

마침 빈자리가 있어 앉게 되었다.

 

핸드백에서 정해진 순서처럼 MP3를 꺼내 엉킨 줄을 정돈하여 귀에 꽂고

즐겨듣는 라디오 방송에 주파수를 맞추고 음악과 더불어 진행자의 차분한 멘트에

심취해 가는데

 

\"길에게 길을 묻다\" 라는 코너에서

 

청취자가 보낸 사연을 진행자가 읽어 주는데 갑자기 가슴이 찡해져 온다.

 

사연인즉 자신의 집에서 2시간여 거리에 친정 부모님이 사시는데

하루는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시어 아버님이 요즘 몸무게도 많이 줄으시고

식사도 전과 같지 않아 염려가 크시다는 어머님 말씀에 사연을 보낸 따님은 망설임 없이

다음날로 일찍 집을 나서 부모님을 뵈러 갔다고 한다.

 

생각지도 않았던 딸이 오자 부모님은 왜 왔느냐고 하시면서도

반가워 하시고  따님은 처음으로 어머님 아버님을 모시고 

오리 바비큐 전문점으로 가서 외식을 하였는데 두 분 모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은

처음 드셔 보신다면서 어찌나 잘 드시던지 정말 기뻤다는 사연이었다.

 

어둠이 내린 거리의 풍경 낮시간 지치게 일하여 눈도 아프고 목도 아프고 

계절 탓인지 마음마저 횡한데 때마침  라디오에서 갑자기 찾아가 부모님 모시고 맛있는 

음식 대접을 했다는  따님의 사연을 들으니 이미 세상에 안 계신 나의 부모님 생각이 떠올라

그만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그리운 부모님!

 

2시간이 되든 3시간이 되든 아니 밤 세워서라도 달려가 문 열고  들어서

엄마 나야~~~~~~나왔어~

 

그렇게 찾아갈 부모님이 생전에 계시면 얼마나 좋았을까?

 

참외가 노랗게 익어 가게마다 크고 작은 크기별로 진열돼 있을 때

주홍의 홍시가 맨지르 면장갑 낀 과일 가게 주인의 손에 윤기를 더하며 가즈런

놓일 때에도

 

나는 잠시 머물러 참외와 홍시를 좋아하던  엄마 얼굴을 떠올려 본다.

 

엄마~~

 

퇴근길 습관처럼 무심으로 듣던 라디오 사연에 오늘따라 나는 왜 그렇게 

신세 한탄이 절로 깊어지는지...

 

분명히 하차 정류장이 아닌 곳이었지만 무작정 버스에서 내려 걷기 시작하였다.

 

백화점 근처인데 거리 좌판이 두 곳이나 열려 배추를 비롯 무와 대파 고추 호박까지

즐비하게 늘어놓고 아주머니 두 분이 노점에서 야채 장사를 하시고 그 옆 손수레에는

호떡을 굽는 아줌마와 그 앞에서 돈 계산과 포장을 해주시는 아저씨가 열심히 장사를

하고 계신다.

 

기름이 흥건한 철판 위에 녹차 가루를 넣어 반죽을했는지 호떡 색깔이 푸르스름하다.

 

우울해진 마음도 달랠 겸 뜨겁게 구워진 호떡을  일회용 종이 컵에 담아 먹기 좋게

반으로 접어 건네 주시기에 아무 생각 없이 아이처럼 먹으며 걸었다.   

 

호떡 안에 소로 넣은 검은 설탕이 녹아 달콤하고 땅콩은 으깨 흑설탕과 함께 넣었는지

그럭저럭 씹히는 맛도 고소하다.

 

그렇게 군것질로 마음을 달래며 걷는데 급여 자동 이체 연결되는 주거래 은행이 눈에 들어온다.

 

특별히 사용처도 없으면서 은행 현금 자동 인출기 앞으로 다가가서

현금 카드를 넣고 출금 버튼 누루고 비밀번호 누르고 현금 인출 누루고 다음 확인

 

드르륵~

 

돈 돈 돈이다~~

 

흥부 앞에서 슬금슬금 박질 하여 터져 나오는 금은보화 처럼 버튼 하나에 돈이 나온다.

 

더럽고 치사하고 귀하고 소중한 돈이다 돈!!!

 

라디오 사연에 나온 딸처럼

맛있는 오리 바비큐 사드리러 갈 부모님도 안 계시는데 현금을 찾아 핸드백 지갑 속에 

챙겨 넣으니 갑자기 묘한 위로랄까! 아니면 든든함이랄까?

 

은행을 나와 다시 걸었다~

 

재래시장이다.

 

김장철이 코 앞이라 그런지 알이 굵은 햇생강이 풍성하다

 

대추의 본 고장 경산에서 올라왔다는 붉은 대추도 좋아 보인다.

 

특유의 향이 좋은 계피도 보인다

 

내일은 직장에 출근하여 전 직원 모두에게 따끈한 차 한 잔씩 건네야지~

 

깊어 가는 밤 차 향기가 온 집안에 진하게 풍겨난다.

 

인생이 쓸쓸하고 그래서 세상에 동그마니 혼자만의 고독한 섬에 갇힐 때

 나는 작은 이벤트 하나 열어 스스로 아니 더불어 행복한 풍경 속으로 빠져 본다

 

풍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