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제12회
만석이의 두 번째 고백
며칠 전 암을 말하는 국내 굴지의 카페에 가입했다. 투병일기니 간병일기 등을 싣고 서로의 정보를 교환하면서 암을 이겨나가자는 카페개설자의 마음이 읽힌다. 즐겨찾기에 추가하고 자주 드나들었다. 처음 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하거나 항암치료를 받거나 또는 방사선치료를 받는 환우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가 있었다. 특히 수술 뒤에 있을 여러 가지 후유증이나 식이요법 등이 내겐 큰 관심사였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게 중에는 암에 대한 아주 박식한 지식인도 있어서, 도움이 되는 정보를 많이 얻어 들을 수 있었다.
며칠 동안 고민을 했다. 내가 얻어가는 정보만큼 나도 그들에게 내가 경험한 정보를 나눠 주어야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 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한 지 1년하고도 두어 달. 그동안의 내 노력과 내 나름으로의 쌓여진 내공을 쏟아주고 싶었다. 다른 병과 달라서 암이라는 병을 앓는 사람들은 커다란 동지애(同志愛)를 갖는다. 작은 도움도 목 말라하는 그들이기에, 내 작은 경험도 필히 반가워하는 환우가 있을 터이다. 고로 내가 설 자리가 <아줌마 닷컴>이 아니라 여기가 적격이 아닌가 하고.
역으로 내가 그동안 글을 올린 <아줌마 닷컴(이후로는 ‘아컴’으로 하자>을 생각해 보았다. 여기에는 암을 앓아보지 못한 독자들이 대부분이고, 암을 앓는 환자를 간병하는 이들도 많지는 않다. 일상에서의 일을 기술하고 일상의 글을 읽고, 그래서 정담을 나누며 일상에 충실한 사람들의 정겨운 모임이다. 그래서 다만 정상인들과 달리 암을 앓는 사람으로서의 호기심에 내 글을 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하자면 내 글은 아니, 나는 ‘아컴’의 회원들에게 구경거리인 셈이다. 아니면 조금은 동정의 시선으로 보는 이들도 있긴 하겠다.
간혹은 고맙게도 병을 꼭 이겨내기를 바라는 님들도 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마음으로 내 가족이나 친지들의 아픔을 알기에……. 그래서 혹여 내 글이 오랫동안 오르지 않으면, ‘혹시…….’하는 마음으로 가슴을 조이기도 한다는 걸 나는 너무나도 잘 안다. 고마운 일이다. 내가 글쓰기를 열심히 하는 이유도 여기에 기인한다. 구태여 좀 더 이유를 대자면, 아직도 건재하다는 과시욕(過示慾)때문이기도 하다. 아니,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그대들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인지(認知)시키고 싶은 걸게다.
좀 더 솔직 하자. 나는,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싶다. 환자의 범주에서 벗어나고 싶은 게다. 왜냐하면 내가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이어서, 이렇게는 해야 하고 저렇게는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들이, 내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니, 나 아닌 모든 암을 앓는 환우들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야겠다. 이것은 내가 ‘암을 앓는 사람들의 모임’에 자주 드나들면서 터득한 ‘나만의 경지’라고 해 두자. 다른 이들은 몰라도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데에야 뉘라 토를 달겠는가.
평생을 올바르게 살았고 몸에 좋다는 것만을 먹었는데, ‘왜 내가 암에 걸렸느냐’고 절규하는 환우의 물음엔 딱히 해 줄 위로의 말이 없다. 또 의사가 하라는 대로 수술도 하고 항암도 하고 방사선치료도 했으며, 그 뒤에도 지시대로 잘 따랐는데 어째서 암이 재발(再發) 되었느냐는 항변에는 더 해 줄만한 말이 없다. ‘좋다는 것은 다 먹어도 보았고 권하는 대로 운동도 충분하게 했는데 왜?’라는 데에 정답을 줄 의인(義人)이 없다는 말씀이야. 더욱이 어제 조언(助言)을 하고 위로(慰勞)를 아끼지 않던 환우가, 며칠 만에 세상을 떴다는 데에는 나도 고뇌(苦惱)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제야 알았다. 서두(序頭)에서 말한 것과 같이 내가 ‘암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사는 게 현명한 처사(處事)라는 것을 터득했다는 말씀이야.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워서, ‘언제 죽을 것인가’를 고민한다고, 그게 내게 무슨 덕이 되겠는가 말이지. 사는 날까지 다른 이들과 동등(同等)하게 살고 싶다. 물론 사는 날이 오랜 동안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기대하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로 <암? 그거 별거 아녀~!>의 투병기를 끝낸다. 이제부터는 ‘암’이라는 단어를 기억도 하지 말자. 나는 그 ‘암’이라는 병과는 상관이 없는 사람으로 살 것이다. 아~. 정기검진이나 의사의 지시는 따라야겠지. 요것이 바로 인간의 한계란 말씀이야.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도, 그리고 더 오랫동안 <아컴>을 사랑하기로 했다는 말씀. 아줌마들의 정겨운 수다 속에 내 정신을 빼앗기고, 그래서 즐겁다면 한결 행복할 것 같다. 너무 재미있어서 병원을 가야 하는 날도 잊어버릴 정도면 더 좋겠지. 보라지. 엊그제는 <아컴>에서 연극 관람권도 날아오지 않았는가 베. ㅎㅎㅎ 벌써부터 재미있는 일은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늙은 도둑의 이야기가 아니라, <늘근 도둑의 이야기>란다. 그래. 이렇게 재미있게 사는 거다. 다음 글은, ‘시어미로서의 만석이’, ‘며느리로서의 만석이’, ‘어미로서의 만석이’, ‘주부로서의 만석’로 수다를 떨 것이다. 것도 더 재미있겠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