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공이가 일곱살이 되던 해 봄 어느 날이었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데 아주머니가 상기된 목소리로 아이들을 향해 말했습니다. \"얘들아~ 나 뭐 배우게 됐다~\" 아이들은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 물었습니다. \"우와~뭘 배우시는 거예요? 요리강습요?\" \"혹시...옷 만드는 법 배우시는 거 아니예요?\" 연세도 적지않은 아주머니가 뭔가를 배우려 한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신나서 물었습니다. 그리고 지레 아주머니가 늘 하시는 집안 일과 관련된 어떤 일일 거라고 확신하였지요. 그런데 아주머니가 수줍은 미소 지으시며 이으신 다음 말에 우리 가족은 모두 숙연해 졌습니다. 아주머니가 다니게 된 학원은 한글 학원이었습니다. 아주머니는 귀공이를 가리키며 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렸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를 다니지 못했답니다. 귀공이 동화책 읽는 거 보고 오래 전부터 부끄럽다 생각했습니다. 저 어린 것도 책을 줄줄 읽는데 나이가 몇 배는 더 된 사람이 글도 못읽는게 참 한심하다 생각되더군요. 이제 귀공이 유치원에서 조금 늦게 오니 오전시간을 이용해서 한글을 배우려고요. 3개월코스인데 수업료도 좀 되긴 하지만 열심히 해보려 합니다\" 딸은 흥분해서 \"이 참에 검정고시로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하는 거예요!!\" 말했고 아들은 \"아빠 늦게 오시는 날 ,TV보시면서 기다리지 말고 이젠 복습을 하는 거예요. 어려운 거는 제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말했고 귀공이는 쪼로록 문구함으로 달려가더니 친구에게서 며칠 전 생일선물로 받은 연필 3자루를 아주머니께 갖다 드렸습니다. 그 날 집으로 가실 때 나는 봉투에 얼마 안되는 격려금(?)을 넣어 드리며 화이팅!을 외쳤죠.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지만 아주머니는 모범학생 이셨습니다. 잡안 일 하는 틈틈히 식탁위에 공책을 두고 복습도 하셨고 받아쓰기에서 혼자 100점을 받아 선생님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하시며 이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처럼 행복한 얼굴이셨죠. 스승의 날이 다가오자 아주머니는 생애 최초의 선생님에게 선물을 드려야 한다며 어떤 게 좋을까 설레이는 얼굴로 물어보기도 하셨습니다. 그리고 3개월 후 아주머니는 정말 한글을 읽으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학문에 뜻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로지 한글을 읽고 싶다는 소박한 바램이어서 3개월 공부 하고 아주머니는 학원을 마쳤습니다. 그 후 달라진 게 있다면 아주머니 나름의 쇼핑리스트를 작성하시고 구입한 물품을 적어 저에게 보여주시게 된 것입니다. 양파 4000원, 오이 1000원, 오뎅1300원, 대파900원...2400원 남음. 서툰글씨로 적어놓은 종이를 보는데 감동해서 가슴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필요한 건 알아서 사시라고 했고 일일히 말씀하시지 않아도 된다고 했는데 굳이 구입한 물품을 다 적어 남은 돈과 함께 보여주시는 아주머니를 보며 화려한 성취감에 행복한 학습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인간은 늙어가는 거라고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알고있지 못함을 후회하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겠다는 꿈을 꾸고 실천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순수한 열정과 도전하는 자세의 아주머니께 배울 점이 참으로 많다고 생각하였습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