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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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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 할머니의 사랑(1)--만남


BY 동요 2009-10-01

맹인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원 봉사자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국어 선생님도 있었고 성우도 있었고 동화 구연가도 있었고

안경쓴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맹인들에게 어떤 사람이 책을 읽어주면 가장 기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한결같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안경 할머니요~\"

 

이유를 물었습니다.

\"안경 할머니는 책도 떠듬떠듬 읽고 읽을 때 입에서 냄새도 나는데요?\"

 

그러자 그들은 입을 모아 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안경 할머니는 책을 읽을 때 우리 손을 잡아 주거든요~\"

 

저에게는 참으로 소중한 분이 한 분 계십니다.

그림자처럼 숨어서 나를 도와주셨고 지금도 도와주시는 우리 아주머니..

 

우리와 함께 사셨던 시부모님은 귀공이가 유치원 다닐만한 나이 되었을 때

시골서 사시고 싶다고 내려 가셨습니다.

저녁늦게까지 일을 했던 나를 대신해 저녁에 귀공이를 돌봐 주는 일은

고등학생이었던 딸의 몫이 되었지요.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이 딸에게 왜 학교 끝나면 바로 집으로 가냐고 물으셨나 봅니다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가 야간자율학습을 하면 다른 친구들도 같이 열심히 하게 될 거라고

남아서 공부하면 안되겠냐고 제안하셨고

딸은 저녁늦게 오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늦둥이 막내동생을 돌봐야 한다고 솔직히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너무 미안해 졌습니다.

남들은 학원에 과외에 바쁜 저녁시간에 혼자 공부해 좋은 성적을 얻어내는 것만해도 고마운데

일하러 간다고 동생 돌보라는 엄마를 선생님이 얼마나 한심하게 볼까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서면 생기는 집안 일은 예외없이 그 날도 그득한데 그 날 따라 몸살기가 좀 있어  

큰 마음을 먹고 협회를 통해 도우미 아주머니 한 분을 소개 받았습니다.

알뜰하신 부모님과 살 땐 일곱식구에 직장 일까지 했어도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지만

내 몸은 내가 돌봐야 한다, 이젠 나도 지혜롭게(?)살아야 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소개받은 우리 아주머니.

첫 인상이 선했습니다.

나보다 연세도 많은 분이어서 일을 부탁하면서도 조심스러워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집 보시다시피 그렇게 깔끔하지 않으니 너무 무리해서 일하시지는 말고

적당히 몸 돌봐 가시면서 해주세요.\"

 

일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으로 느껴지는 진실을 발견하고

귀공이 보모로 적당할 듯 하다 싶어 말을 꺼냈습니다.

 

\"혹시...저녁에 시간 있으세요?

저희 집에 5살짜리 어린 꼬마가 하나 있는데 유치원에 갔다오면 오후시간부터

저녁에 아이 아빠 올때까지 돌봐주시는 일을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고정직을 얻었다는 즐거움 때문인지 순간 아주머니의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돌보아야 할 가족이 없어 시간은 많으시다며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물으셨습니다.

나는 드디어 큰 딸 야간 자율 학습 시킬 수 있겠다 싶어 상기된 얼굴로 말했습니다.

 

\"할 일은 별로 없어요~ 집 안일은 저도 잘 하니까 신경 안쓰셔도 되구요~

그냥 우리 아가 유치원에서 올 시간쯤 오셔서 돌봐주시다가 아이 아빠 오면 아이 맡기고 가시면 돼요~

아이는 얌전한 편이니 힘드시지는 않을 거예요~ 부탁이라면 동화책 하루에 두 권 정도만 읽어주시면 돼요~\"

 

그 말을 하는데 아주머니 얼굴이 갑자기 어두워 졌습니다.

그리고 ...슬픈 목소리로 말씀 하셨습니다.

\"아...안되겠네요...전 책을 못읽거든요...\"

 

가슴이 철렁하면서 막 아팠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이모뻘 되는 아주머니에게

조카처럼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아~ 그러세요? 걱정 마세요~ 동화책은요~ 우리집 아가가 잘 읽어요~

그 아이 책 읽을 때 옆에서 손을 잡고 어머 잘 읽는다~~너무 재밌다~~이렇게 말씀만 해주시면 돼요~\"

 

귀공이를 일찍 책을 읽을 줄 알게 해놓은 게 너무도 잘했다고

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안경도 안쓰고 할머니도 아니었지만

오래 전부터 내 마음속에서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있는 상징적 인물이었던 안경 할머니는

우리 아주머니로 모습을 바꾸어 그렇게 우리 가족곁으로 다가왔습니다......(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