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21.
내가 젊었을 때 나는 항상 며느리고 어머니는 어머니일거라 생각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고 내 아들이 자라면서
어머니의 자리는 머지않아 나에게도 올 자리라는 걸 느끼게 되었고
어머니의 모든 행동에 나를 대입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어머니가 나를 호되게 야단하실 때도 서운함보다 공손히 야단맞고 있는 며느리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 아들이 옆에서 보고 있는 걸 알고 있기에.
야단 맞고 있는 내 곁에서 날 변호하기보다 어머니 편을 들고있는 남편이 야속하지도 않았다.
내가 훗날 며느리를 야단칠 때 우리아들도 내 남편처럼 가만 있겠지..그 생각을 했다.
전엔 부모님으로만 보였는데
이젠 가끔 내 부모님이 아이들을 키우는 선배님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아주 많이 부럽기도 하다.
남편과 시동생 그리고 손위 시누이 이렇게 삼남매를 두신 부모님은 생각하면 참 존경스럽다.
어쩜 모두 그렇게 효성스런 아들 딸들을 두셨는지.
나에겐 고약하고 몰인정한 남편은 부모님께는 지극정성이다.
시동생도 그렇다. 동서까지 너무 착한 며느리다.
손윗 시누이도 효녀다. 아주버님도 똑 같다.
삼 남매집 어디로 가나 항상 형제들은 부모님께 안 방을 드린다.
집안에 가장 어른이 머물러야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부부들은 모두 베개들고 작은 방으로 이동한다.
아버님은 그게 기쁘신가보다
어느 집에 가나 안방에서 주무신다고 기분 좋다고 자랑처럼 말씀하셨다.
우리 집에서도 당연 아버님은 왕이고 어머니는 왕비시다.
모시고 살았던 세월이 길어서 익숙하다.
같이 살았을 때도 늘 안방을 쓰셨고
부모님 시골 가신 후 우리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도 부모님이 오시면 우리 부부는 작은 방으로 이동했다.
언제가 부모님 모시고 사는 친구들과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친구들은 우리집이 참 이상하다고 했다.
살고 있는 집에 다니러 오셨을 때 안방을 내드리는 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집집마다 다르구나..그 생각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집을 사서 이사를 간 후부턴
왠일인지 부모님은 더 이상에 안방에서 주무시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젠 우리 부부가 거기서 자야 한다고 하시고 작은 방으로 가셨다.
집을 사면 그런 건가..했다.
마음은 편하지 않았지만 부모님이 극구 주장하셔서 그렇게 했다.
설을 지내시러 며칠 전 부모님이 오셨다.
이번에도 작은 방으로 가시겠다는 걸 이번엔 내가 안된다고 우겼다.
아버님도 어머니도 너무 연로해 보여 마음이 아팠다.
우리 집에서 제일 넓고 쾌적한 안방에 모셔야 내 마음이 편안할 거 같았다.
처음엔 마다 하시더니 내 말 한마디에 안방으로 자릴 잡으셨다.
\"어머니. 제가 컴퓨터를 밤 늦게 써야 하는데 안 방엔 컴퓨터가 없어서 불편해서 그래요...\"
며느리 편의봐주는 셈치고 안방 쓰시라 했더니 기분좋게 안방 침대 곁에 가방을 내려 놓으셨다.
\"난 우리 애들집 어디로 가나 애들이 안방 내준다우~\"
우리 아버님의 즐거운 소리에 이젠 힘이 있으시겠지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두 분이 그냥 우리 집 안방에서 오래오래 우리랑 같이 사시면 좋겠다...
이번 추석에도 작은 방에서 주무시겠다는 걸
안방엔 컴퓨터 없어서 안된다고 핑계를 댔더니 수긍하셨습니다.
내 년 설날에도 추석에도 이런 일이 또 일어나겠지요.
안방엔 계속 컴퓨터를 두지 말아야 겠어요.
부모님 편히 주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