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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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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섭섭


BY 그대향기 2009-09-13

 

 

맑디 맑은 가을 하늘이 아까울 정도다.

하루 하루 세월이 지난다는게 회색 겨울을 맞이 해야 한다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이 고운 가을 빛을 어딘가에 꼬옥~붙들어 두고 싶다.

낮에 날으는 잠자리의 군무도 뜸..해 졌고

매~앰~매~앰~매~앰~....

지치지도 않고 온 종일을 울어대던 매미소리도 최후의 합창을 멈추질 않는다.

 

밤에는 귀또리들이 귀또르륵귀또르륵.....

창 가에서 가을이 깊어감을 알려준다.

감나무에 가지가 찢어 질 듯 매 달린 감들이

제법 붉은 빛을 안고 익어가고

대추는 그 새 많이도 익었다.

벌레 먹은 대추들은 설 익어서 벌써 떨어져 마당가에 널비하고

과꽃이 화려한 얼굴로 가을 하늘을 올려다 보며 폈다.

 

며칠 동안을 둘째의 출국 준비로 바빴었고

금요일에 막상 인천공항에서 떠나 보내고 나니

온 집안을 폭탄 맞은 집처럼 어질러 놓은 물건들을 정리하면서는

오히려 얼마나 홀가분한지....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겨주느라 부산이며 대구를 오가며 분주했던게

인천을 하루만에 왕복하는 일까지 겹치니 피로가 한꺼번에 몰아서 온 건가

공항 갔다 온 다음날에는 거실에 널부러져 한참을 잤었다.

 

공항을 자주 가는 사람도 아니고

아이가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데 어슬픈 부모에 경험없는 딸이

동분서주...우왕좌왕 할게 뻔~하다면서 어떤 분이 그 모든 업무를 대행해 주셨다.

그 넓은 공항을 안방처럼 구석구석 훤하게 꿰고 계시던 분인데

우리 가족의 점심까지 책임져 주시면서 화물까지 오버 된 무게는

애교작전으로 무마시켜서 통과하게 해 주시고..ㅎㅎㅎ

김해 공항으로는 외국손님들을 자주 배웅해 봐서 익숙한데

인천공항은 처음이라 그  공항이 왜 그리도 넓고 크게 보이던지.

자칫하다가는 가족들을 잃어버릴 것만 같고 휴대전화가 없었더라면

내가 그 넓은 공항에서 미아가 될 두려움이 다 생길 지경이었다.

 

딸은 거수경례가지 하고 룰루랄라~~신나게 들어갔고

큰 딸은 김해 공항에서 울면서 보냈는데 둘째는 나도 안 울었고

물론 남편도 딸도 아무도 안 울었다.

웃으면서 떠나 보내고 그 먼 길을 되짚어 내려 오면서

가을비가 조금씩 내리는 밤길에서는 내내 잠만 잤다.

후련하기도 하고....좀은 섭섭하기도 한 것 같고

잘 할까?

음식이나 잠자리는 편할까?

홈스테이를 하는 집 주인은 좋은 사람들일까?

같이 있다는 일본 여학생들은 어떨까?

그 나라 공항에서 제 짐은 무사히 다 잘 찾을까?

덤벙꾼인데 돈은 잘 간수하고 갈런지....

....................

 

가만히 잠을 청하며 눈은 감았지만

오만가지 생각들이 둔한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만으로 열아홉살 밖에는 안 된 아인데...

노트북과 속옷은 새로 장만해서 보냈지만  다른 옷들이랑 준비물은

그냥 집에 있던 것들을 보냈기에 큰 돈은 안 들었고

가서  집세 내고 알바하면  겨우겨우 견딜만한 경비만 들고 나갔다.

처음 종잣돈도 제 스스로 만든 아이였으니 믿거니 하고 따로 더 주지도 않았고

우리가 근무하는 곳에서 얼마간 장학금이 나왔고 할머니들의 성의까지 합해서

제법 서너달은 견딜만한 경비가 예상치 않게 마련되었기에

훨씬 가볍게 떠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돈이 넉넉해서 떠나는 공부도 아니었기에

둘째는 너무 고마워하면서 씩씩하게 떠났다.

두려움도...낯선 곳에서의 어려움도 예측하기 힘들지만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기 위해서 떠난 둘째는 잘 도착했고

홈스테이하는 집이 아주 좋다는  전화 목소리가 또랑또랑했다.

세상 참~~편리하다.

밤 비행기로 날아가고 그 이튿날에 잘 도착했으니 걱정마시라는

전화 목소리를 듣게 하다니...

일이 바빠서 잘 가고 있겠지...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벌써 카나다까지  다 갔고 묵을 집에까지 당도했단다.ㅎㅎㅎ

 

나라 밖으로는 한번도 나갈 기회가 없었던 내겐

모든게 신나고 신기하기만 하다.

제일 먼 곳을 날아간게 제주도니 말해 뭐하겠는가만은

걸어서는 가지도 못할 거리의 외국을 잠만 자고 나니 다 날아갔다니....

통통 튀는 둘째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나니 아닌 척 하고 있었던 걱정이

한 순간에 다 내려오는 기분이라 그런지 어깨가 추..욱..쳐진다.

피로감이 밀려 왔다.

거실 바닥에  널부러져 한참을 자고 나니 할머니들 저녁할 시간이었다.

무거운 몸을 일으켜 할머니들 저녁을 해 드리고

어질러 놓은 딸아이 방과 아들의 방을 들여다 보며 혀를 끌끌 찼지만

밤 늦은 시간(새벽 2시)까지 다 정리를 하면서 시원..섭섭..하다는 느낌에

기분 좋은 피로감에 늦은  밤 잠을 청했다.

엄마의 미니홈피에 홈스테이 하는 주인 집 동갑내기 딸하고

시내 길을 익히러 간다고 벌써 편지를 적어 놓았네~`ㅎㅎ

 

부럽구나 둘째야....

그 도전정신이.

그 두려움 없는 젊음이.

그 무한한 에너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