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의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 말고 내가 준비한 게 딱 하나 있긴하다. 전 날 이마트가서 커플 티 하나 산 거. 엄마는 살이 없으니 분홍색 나는 살이 많으니 붉은 색 면티를 하나씩 샀다. 제주도 가서 커플티를 쨘~내 놓고 \"이런데선 원래 커플티를 입는 거예요~\"했더니 엄마도 쨘~ 내놓은 게 있었다. 하얀 면장갑이었다. 엄마는 72세의 노인이지만 자기관리에 있어 철저한 분이시다. 저녁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절대 음식을 드시지 않으며 저녁시간 꼭 한 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시고 살이 찌지 않게 주의하신다. 뿐만 아니라 늘 선크림을 챙겨 바르시고 햇빛속으로 나갈 때는 모자에 양산까지 철저히 챙겨 엄마는 곱고 하얀 피부를 가지고 계셔 늘 \'참 고우세요~\"소리를 듣는다. 엄마의 이론대로라면 엄마가 스스로의 건강관리를 하셔야 더 나이들어 자식들에게 짐이되지 않는다는 거다. 엄마와 달리 나는 그런 덴 무신경하다. 아무렇게나 대충 산다. 선크림 정도야 바르지만 엄마처럼 여름햇빛 속을 긴 팔옷을 챙겨입고 나가거나 맛있는 거 먹고 싶은데 늦은 시간이라고 바라만 보지 않는다. 운동도 그냥 기분 내키면 집 앞 학교 운동장 한 번 돌거나 앞 산에 가끔 올라가지 엄마처럼 달력에 동그라미 치고 출석체크 할 정도는 아니다. 엄마는 이런 나의 몸관리에 대한 무신경함을 잘 아시기에 자주 나에게 전화를 하셔서 말씀하신다. \"운동 자주해서 살찌지 않도록 해라, 햇볓에 나갈 때 그을리지 않게 조심해라\" 예전부터도 나만보면 하시던 그 잔소리는 내가 강사가 되고부터는 더 심해졌다. \"남의 앞에서 강의를 하는 사람이 얼굴색이 그게 뭐냐. 거무티티.. 꼭 모자쓰고 다니고 양산챙겨라. 그리고 뱃살도 있으면 안된다. 자기 몸 관리도 못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를 가르치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이쯤 되면 나도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나도 모르게 말대꾸가 나온다. \"엄마. 요샌 선탠이라고 돈주고도 일부러 검게 그을려요. 그리고 걱정마세요. 내가요. 탤런트도 아니고 배우도 아니고요.그냥 떠들어대는 강사쟎아요. 연예인은 하얀 피부에 날씬한 몸매가 생명이겠지만 저는요 그냥 말만 조잘조잘 잘 대면 돼요. 그리고 사람들은요. 하얀 피부에 연역한 몸매를 가진 아줌마가 \"여러분~~자녀교육은~~이렇게 해야 한답니다~~\"부드럽고 우아한 목소리로 말하는 거보다 나처럼 두리뭉실한 몸매를 가진, 피부도 거무티티한 만만한 아줌마가 기차화통 삶이먹은 듯한 우렁찬 목소리로 \"자녀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반드시 일기지도를 시작하세요! 너무나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지도요령을 잘 모르시면 제가 쓴 책을 꼭!! 사보세요! 제목 길게 적을 거도 없어요. 그냥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서\'댓글일기\'를 주소창에 치세요!!\" 이렇게 씩씩하게 말하면요. 사람들이 안사면 안될거 처럼 느낀다니까요!\" 피부색이 검는 강사가 말해야 책이 잘 팔린다고 말하면 엄마는 잠시 순진하게(?) 가만 계신다. 그러다 잠잠해지면 또 모자써라 양산 써라 하신다. 난 엄마의 그 검은피부 기피증에 대한 사연을 잘 알고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와 엄마는 바닷가에서 온갖 더운바람 찬 바람 다 마시며 뜨거운 햇빛 속에서 생선말리는 일을 하셨고 식수를 제외하고는 요금을 내지않는 센물인 펌프물을 많이 이용하다보니 피부에는 아주 치명적인 환경이셨다. 그 때부터 하얀 피부의 여성은 검게 그을리셨던 엄마의 마음 속 동경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번엔 모자도 양산도 모자라 흰 면장갑까지 챙겨와 끼라 하시니 지나치다 싶어 \"엄마, 얼굴도 팔도 아니고 장갑은 너무 심한 거 아니예요?\"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그건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소신있게 말씀하신다. \"아니다. 넌 강의 끝나고 사람들이 책 들고 와서 싸인해 달라고 하니까 손등도 하얘야 할 필요가 있다. 싸인하는 거 지켜보면서 속으론 강사의 손등이 너무 검다고 흉본다\" 완전 KO패다. 싸인을 할 때 남들이 내 손 색깔을 본다고 흰장갑을 끼라는 엄마에게 대응할 말은 더 이상 없다. 그래서 이틀 내내 여름날씨 같았던 제주여행동안 내 두 손은 장갑속에 싸여 있느라 무지 고생했다. 어차피 효도관광 온 거 엄마뜻에 따라 드리는게 도리이다 싶어 흰 장갑끼고 제주를 돌아다녔다. 슬쩍 쓸쩍 엄마몰래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봤는데 선그라스 모자 양산 쓴 여자는 봤어도 장갑낀 여자는 못봤다. 덕분에 지금 내 손등을 보니 여행갔다온 손 같지않고 뽀얗다(?) 겉 모양만 생각하는 커플티 사온 딸과 속피부를 생각하는 장갑 사온 엄마는 그 생각 깊이부터 다르다. 어른들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