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고 ego
물리학에서는 질량을 가진 모든 존재는 다음과 같은 법칙을 가진다고 합니다. 첫째 <만유인력의 법칙>, 둘째 <관성의 법칙>, 셋째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현대 과학에서는 에너지가 곧 물질이고, 물질이 곧 에너지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바이브레이션vibration(진동)이 아주 빠르고 미세한 단계가 에너지의 차원이고, 바이브레이션이 느슨하고 성긴 단계가 물질의 차원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마음의 바탕인 생명 에너지도 곧 물질인 셈입니다. 그리하여 그 에너지의 흐름인 생각 자체도 하나의 에너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질과 에너지는 전달이 가능합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로 전달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 보도록 합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 <에고(마음)>에 대해서입니다. 이것을 알아야 비로소 우리의 본질도 선명히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대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 것일까요? 우리 인간에게 수많은 고통과 번뇌, 그리고 슬픔을 일으키고, 동시에 인간에게 엄청난 문명의 혜택을 누리게 해준, 칼날의 양면과 같은 인간의 마음이란 존재는 대체 그 구성 요소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이 사실을 분명히 안다면 그렇게 오랜 세월 우리 인간이 겪어 왔던 모든 전쟁과 투쟁, 불화와 질투, 오해 등으로부터 영원히 해방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우리 인간의 <마음>이라는 것에 대해서 철저히 파헤쳐 들어가 보도록 할까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우리의 마음은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거울이 없으면 그림자도 존재할 수 없듯이, 마음이라는 것도 우리가 살아 있지 않으면, 즉 우리에게 생명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습니다. 생명이라는 하얀 종이 위에 경험(과거)이라는 것이 하나 둘씩 쌓여서 마음이라는 것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마음속에는 갖가지 것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오감을 통해 들어온 수많은 경험과 지식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거울과 우리 인간의 마음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거울은 어떤 대상을 비출 때 그 대상만이 거울 속에 비쳐지고 그 외의 것은 사라집니다. 그리고 또 다른 것을 비추면 그 전의 대상은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마음은 다릅니다. 우리의 마음은 대상을 비추면 그 대상이 마음속에 기억으로 들어와 저장됩니다. 그리하여 다른 대상을 비출 때도 그 전에 들어왔던 대상은 사라지지 않고 마음속의 어딘가에 계속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아직 ‘나(에고)’라는 관념이 시작되기 전의 아주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린애들은 친구와 놀다가 싸우더라도 그 다음날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재미있게 같이 놉니다. 그러나 어른들은 누구와 싸우고 나서 그 다음날에 그 사람을 또 만났을 때는 피해 버리거나 매우 기분나빠합니다.
그렇다면 어린애와 어른의 이런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어린애의 경우는 어제의 경험(과거)이 현재의 순간에 개입하지 않아서 순수하게 대상을 바라볼 수 있었지만(이것은 거울과 같은 상태), 어른의 경우는 지금 현재의 순간에 대상을 바라보는 순간, 과거의 경험이 현재에 끼어들어 대상을 순수하게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선입견이라는 게 전부 이와 같습니다.
사실 지금 눈앞의 그 사람은 어제와 다르게 이미 변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이 어제 잠자리에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운 마음으로 당신을 만나려고 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과거에 얽매여 현재의 진실을 바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옛날에 어떤 서양 영화를 봤는데, 내용이 아주 인상 깊었던 기억이 납니다.
패션모델인 여주인공이 어느 날 길을 가다가 횡단보도를 지나기 위해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아이가, 저쪽에서 차가 달려오는데 갑자기 횡단보도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대로 놔두면 차가 아이를 칠 위험한 순간이었습니다. 그 때 이 여자가 뛰어들면서 아이를 밀쳐냈습니다. 간발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이 여자가 차에 치여 버렸습니다.
그 순간 그 장면을 본 사람 중의 한 여자가 그 자리에서 또 쓰러졌습니다. 그 여자는 바로 그 아이의 어머니였습니다. 사람들이 웅성웅성 하는 가운데 병원의 앰뷸런스가 와서 그 두 여자를 싣고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에 실려 간 두 여자를 살펴본 의사는 두 여자가 모두 죽었음을 확인했습니다. 아니, 그 아이의 어머니는 완전히 죽고, 모델 아가씨는 뇌만 살아 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에서는 긴급회의를 열고 의논하여 한 가지 결론을 내렸습니다.
“아이 엄마의 몸은 아무런 손상이 없고 모델의 몸은 엉망이 되었으니 모델의 살아 있는 뇌를 아이 엄마 몸에 이식합시다.”
드디어 이식수술에 들어갔습니다. 조마조마한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얼마 뒤, 수술이 성공리에 끝났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그 여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아직 침대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며칠 뒤, 그녀가 의식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모습을 거울에 비춰본 순간, 그녀는 “악!” 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습니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예전의 자신의 몸이 아니라, 어느 중년 여인의 뚱뚱한 몸이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미쳐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아는 사람이 찾아와도 그녀는 알아보는데 남들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혼란스러웠습니다. 모든 게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습니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그녀가 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은 바로 그녀의 과거의 경험의 집합체인 ‘나(에고)’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날씬한 몸매를 아직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몸이 자신이라고 알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몸이라는 것은 항상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날씬함이 영원한 실체는 아닙니다. 얼굴이야 수술을 하면 다른 모습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이고, 몸이야 시간이 흐르면서 뚱뚱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녀는 예전의 자신의 모습이 영원히 변치 않는 실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혼란을 겪었던 것입니다.
우리 몸은 우리의 본질이 아닙니다. 만약 그녀가 거울을 보는 순간에 기억을 상실했다면 거울 속에 비치는 모습이 원래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고통을 느끼는 것은 그녀의 기억, 곧 과거의 경험의 집합체인 ‘나(에고)’인 것입니다. 거울 속의 그림자가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그것은 순수현재입니다. 그것을 잊지 마십시오.
진실은 실존밖에 없습니다. 지금 그녀 앞에 놓여 있는 거울 속의 모습만이 현실이요 진실인 것입니다.
우리가 거리를 걷다 보면 가로수들이 허리가 뚝 잘려 서 있는 모습을 가끔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무들이 다음해 봄이 되면 새로운 가지가 나오면서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 사람들이 나무처럼 그렇게 팔다리가 잘렸다고 한다면 과연 제대로 싱싱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절망에 빠져 살아가거나 자살해 버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같은 생명을 가진 존재로서, 나무는 싱싱하게 살아가고, 사람은 절망하거나 자살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은 말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나무하고 사람하고 어떻게 똑같아!”
아닙니다. 생명을 가진 존재는 모두 똑같습니다. 겉모습은 비록 서로 다르지만. 그렇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나무는 과거라는 기억을 갖지 않고 항상 현재의 순간순간을 살아가지만, 사람은 과거의 자신의 모습을 참된 모습인 양 생각하고 그 기억으로 현재의 자신의 모습을 보니 절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이나 기억은 자라면서 생겨난 것입니다. 그것은 그림자요 허상입니다. 허상을 믿으면 항상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 허상은 항상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허상인지 분명히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팔다리가 없는 사람들만이 사는 나라에 팔다리가 없는 아이로 태어났다면 과연 그 아이가 팔다리가 없다고 절망할까요? 물론 아닐 것입니다. 당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은 바로 과거의 경험인 기억에 불과한 것입니다.
생명만을 믿고 사십시오! 팔다리가 잘렸더라도 우리의 생명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 생명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그 외의 것은 모두 허상입니다. 그 허상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살아 있는 것은 순수현재뿐입니다. 생명은 끊임없는 흐름입니다. 잠시도 멈추지 않습니다. 그것은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희랍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들어갈 수 없다.”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처음의 그 물은 이미 흘러가 버린 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간들의 삶은 알고 보면 대부분 죽은 과거로써 현재의 살아 있는 삶을 끊임없이 망쳐 가고 있는 것이라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은 바로 경험의 집합체, 곧 기억이요 죽어 버린 과거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에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 <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