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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제28회)우울증과 대인기피증2


BY 만석 2009-08-30

 

1부 제27회


우울증과 대인기피증 2


  아, 뭐니 뭐니 해도 제일 시급한 건 아이들의 결혼 문제다. 35살의 큰아들도 적은 나이는 아니고, 32살의 막내 딸아이도 결혼적령기를 훌쩍 넘긴 나이다. 29살의 막내아들도 꽉 잔 결혼 적령기지. 어서 결혼을 해야 한다고 재촉을 하면,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큰아들은 아직 이르다고만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을 하고 싶다며 경상도 규수를 집으로 데리고 왔었다. 그런데 때를 맞추어 내가 입원을 하게 됐던 거였다. 아가씨는 병원으로 병문안도 다녀가곤 했다. 막내아들도 애인이 있으니 문제는 막내 딸아이인데, 보아하니 사귀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아무튼 우선은 제 오라비를 보내고 볼 일이다. 이제는 마음이 급해져서 여차하면 막내딸아이를 젖히고 막내아들을 먼저 보내야 한다. 내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런데 결혼이라는 게 내 사정에 따라서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사돈 될 댁의 사정도 감안을 해야 하고, 나도 사실은 아직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35살이나 된 아들의 준비는 제 스스로가 했으면 좋으련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모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그렇다 하드라도 부모가 담당해야 할 몫은 따로 있는 법이다. 다행인 것은 며느리 감들이 착해 보이고 순종적(順從的)이어서, 일은 쉽게 진행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아들을 둔 모든 부모의 마음이 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사실 내 아들들은 어느 모로 보나 사돈댁이 될 분들이 호감을 갖게 하기에는 충분할 테니까 말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내 아들들이 좋다는 그녀들이라면 구태여 딴지를 걸 이유는 없다.


  사실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이다. 내가 몹쓸 병을 얻지 않았다 하더라도, 상대가 있으니 결혼은 미루지 말아야 할 판이었다. 아무튼 사돈 될 댁에 운이나 띄워 보내야겠다. 막내아들의 그녀 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문다. 아직 결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논도 없었는데, 나는 누워서 벌써부터 고부갈등까지를 걱정한다. 이러면 어쩌지? 저러면 어쩌나?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손자를 볼 꿈도 꾸어본다. 내가 손자를 보기는 할 수 있으려나? 아프기 전에도 욕심을 부려, 내 손자 대학교 가는 것까지 보고 싶다지 않았던가. 나도 내 시어머님처럼 그 아이 대학 첫 등록금은 내 손으로 내 주고 싶었는데…….


  어느 새 해가 졌나보다. 꼭 꼭 다져놓았던 커튼 색깔이 진해졌다. 밝은 빛이 싫어서 나는 집안의 모든 커튼을 쳐놓고 누어있었다. 대문이며 현관문까지도 아니, 창문까지도 비틀어 잠궈 놓은 채로다. 물론 불도 켜지 않은 채……. 아마 이웃에서는 여름휴가쯤 떠난 줄 알  게다. 그렇다면 더 없이 바라던 바이다. 나는 지금 누구라도 찾아오는 게 싫거든. 누구에게도 내 병을 알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 아니지. 교회에서 알았고 내 다섯 시누이들이 알았고 사촌 시동생내외가 다녀갔으니, 이미 소문은 파다하게 났겠구먼. 교회에서는 모여앉아서 내 이야기를 할 것이고, 다섯 시누이들은 한 입씩만 옮겨도 열이나 되는 귀에 들어갔겠다. 사촌 동서는 항상 내게 대해서는 경쟁을 하는 눈치였는데, 이젠 대놓고 쾌재를 부르겠지.


  배가 고프다. 죽을 두 손으로 바쳐 들자 왈칵 눈물이 난다. 누가 뭐랬기에……. 아니,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먹고 살겠다고 죽 그릇을 바쳐 든 꼴이 너무 서럽다. 눈물은 쉬지 않고 줄줄 흐르는데, 그래도 죽은 입으로 들어간다. 아직은 굶어 죽지는 않겠구먼. 핸드폰이 운다. 그이의 전화다. 눈물을 흠치고 전화를 받는데 어쩌자고 ‘엉~ 엉~’ 소리를 내! 아마 총알택시나 탔나보다. 남편이 곧 들이닥친다. 무슨 사단이나 난 줄 알았던 모양이다. 그이가 화를 낸다. 아무 일도 아닌데 적잖게 놀란 것이 원통한 모양일까. 말없이 양쪽 허리에 두 손을 얹고 서서, 그래도 꾸역꾸역 죽을 퍼 넣는 마누라를 내려다보다가 휭 하니 나가버린다. 대문 소리가 나는 걸 보니 밖으로 나간 세로구먼.


  한참 뒤에 돌아온 남편은 적당하게 술에 취해 있었다.

  “어쩔까. 내가 어떻게 해 줄까?”

  “…….”

  “큰애 집에 갈래? 오라는데…….”
  큰딸과는 벌써 상의를 한 모양이다. 언제는 오라 하지를 않아서 못 간 겨?!

  “싫어.”
  “근데 왜 울어? 나보고 어쩌라구.”

  “뭘 어째 달랬어?”

  그동안 울고 싶었던 눈물이 눈물샘을 채우고 넘치는가 보다. 자꾸만 눈물이 난다.

  “왜 그래. 수술도 잘 되고 이제 잘 챙겨먹고 몸 관리만 잘 하라는데.”

  “…….”

  “그래. 실컷 울어라. 실컷 울어. 맘껏 울어!”  

  정말 실컷 울었다. 큰아들이 들어오지 않았으면, 나는 아마 아직도 울고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