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4회
사람이 되어가네
폐는 약물로 말린다니 세상 참 좋구먼. 무통주사 통을 제거한다. 많이 맞아서 좋을 게 없다는 게다. 그럼 참아 봐야지. 그런데 아이구야~. 그도 쉽지 않네. 간간히 오는 통증에 참지를 못하고 간호사를 호출해서, 남편의 곱지 않은 시선받기를 서 너 차례. 어쩌겠는가. 남편의 곱지 않은 시선보다 우선의 고통이 더 급한 것을……. 그래도 시간이 흐르니 신음소리는 죽이겠다. 오늘만 참자. 참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수술 부위와 어깻죽지의 통증을 잊기 위해서 운동을 더 열심히 해 보자. 그런데 그도 참 어렵다. 맘대로 안 되네. 통증은 통증이고 운동은 운동인가 보다. 수술부위와 성치 않은 갈빗대의 통증이 겹쳐서 오면 그야말로 환장을 할 지경이다.
건너편의 폐암환자는 매일 파티를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러 자매를 두기도 했거니와 병문안을 오는 사람도 많아서, 그들이 들고 들어오는 과일이며 음료수가 지천이다. 침대마다 나누어 주고 먹느라고 입이 분주하다. 나는 아직 금식이지만 고단위 영양제가 주사 되는지 시장기는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먹는 일이 즐거운 사람들이 부럽다. 왜 담배도 안 피우는 내가 폐암이냐고 울부짖는 환우에게, 잘 나오지도 않는 목청으로 그녀를 위로 한다. 오지랖도 넓은 척, 그래도 당신은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끼어 본다. 아니나 다를까 그이가 공연한 걱정이라고 나무란다. 먹는 사람들은 쳐다보지도 말라고.
수술 사흘 만에 소변 줄을 제거하니 내 성지(聖地)(?)가 한결 자유롭다. 소변을 볼 때마다 따끔거리기는 하지만 그도 잠시다. 한결 걸음이 가볍다. 이만만 해도 살 것 같다. 행거에도 소변 통이 하나 없어졌으니 보기에도 좀 나아 보인다. 나보다 일찍 수술을 끝내고 누워있는 다른 침상의 환우가 제 주치의를 조른다.
“저이는 나보다 늦게 수술했는데…….”
“그럼 저 환자분을 다시……. 아주머니는 아직 안 돼요!”
허허. 무슨 벼락 맞을 소리를……. 그게 무슨 좋은 거라고 다시?
닷새 만에 코에 연결된 줄을 제거했다. 휴~. 정말 살만하다. 가늘기는 해도 속으로는 목구멍을 지났는지, 목이 이만저만 괴로운 게 아니었다. 목은 아마 며칠 걸려야 통증이 없어지려나 보다. 하나하나 관이 제거 될 때마다 앞길이 보이는 듯하다. 이 처참한 몰골을 부러워하는 환우가 있으니 딱하다. 속으로 절대로 나를 부러워 말라고 외친다. 그렇지. 나를 부러워하다니…… 쯔쯔쯔. 얼마나 고통스러워서 이랴. 옆구리의 관만 제거하면 저 구정물 통도 떼어 버리겠구먼 서두……. 한결 의기가 양양해서 오랜만에 그이를 내 침대에 누이고 혼자 복도를 걷는다. 서너 바퀴를 돌아 병실에 돌아와 보니, 그이가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며 깊은 잠에 빠져 있다. 미안한 마음에 웃으며 병실의 사람들을 돌아보니 고맙게도 손을 저으며 그냥 좀 재우라고……. 그이의 고생을 동정하는 모양이다. 딱하지.
코 줄을 제거하고 저녁에 물을 좀 마셔보라 한다. 오~잉?! 내가 입으로 뭘 먹어? 개과천선(改過遷善)이란 이런 때 하는 말이던가? 정말로 물이 흘러 들어갈지 걱정이다. 넘어 간다.오~ 주여! 눈물이 난다. 이게 얼마만의 일인가. 사래가 들려서 폐로 넘어가면 폐렴이 걱정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아니나 달라. 물을 넘기다가 기침을 하면 그이와 아이들의 얼굴이 나보다 더 사색(死色)이 된다. 이러다가 물도 더는 먹지 못하게 되는 거 아녀? 조심을 하자 하니 더 사래가 든다. 젠~장. 망할 놈의…….
옳아. 요령이 생긴다. 물을 마실 때 공기와 동시에 넘기면 사단이 나는구먼. 쳇! 누구는 물도 마셔 보지 못한 줄 아는감. 나는 아주 의기가 양양해서 물 컵을 들고 복도를 활보한다. 누군가 내가 물을 마신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수술 뒤 1주일. 상처부위의 스테플(?)을, 하나 건너 하나씩 반절만 제거한다. 요사이는 의술이 좋아져서 실로 바느질을 하듯 상처를 꿰매지 않는다며, 일명 호지케이스라는 철제 스테플로 찍어놓았던 것들을 빼내는 일이다. 옆의 환우가 그 스템플을 제거 할 때에 어찌나 기암을 하던지 나는 잔뜩 겁을 먹었으나 별거 아니었다. 허긴. 마취는 했다손 치더라도 더 큰 수술도 끽 소리 없이 장장 6시간을 버텼지 않았던가. 하하하. 이쯤 참는 거야 식은 죽 먹기지. 한결 허리 펴기가 수월하다. 등판도 보이진 않지만 아마 그런 식으로 꿰맨 자리를 손 봤나 보다. 앉아서 자다 시피 하던 내 잠 자리가, 이젠 좀 편하게 침대 머리에 등을 기댈 수가 있겠다. 까짓! 한꺼번에 다 제거하지이~! 난 참을 수 있는데 말이다.
수술 열흘 만에 우측 옆구리의 관을 제거한다고 주치실에서 호출을 한다. 하나 둘 셋을 세며,
“힘주세요!”를 외친다. 우~와. ‘뻥’ 소리가 요란하다. 관을 빼는 여의사도 굉장한 힘으로 뽑는 모양이다. 이젠 하나 달렸던 구정물 통도 아듀~. 이로서 내 몸에 사슬같이 얽혔던 관은 모두 제거된 셈이다. 남은 관은 위에 박힌 먹이 길뿐이다. 먹이관이라고 내 맘대로 이름 지어 준 그 관은, 여차하는 불상사가 나면, 먹이를 넣어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달아 두는 듯. 먹이관은 이제 10cm 정도로 단장(?)을 했다. 아주 가뿐한 걸음으로 복도를 활보한다. 그래. 이쯤이 되어야 운동다운 운동을 하지. 내 침대에 그이를 누이고 나 혼자 운동을 나가는 일이 많아졌다. 수술 뒤의 열흘이 고비라고 했으니 이젠 고비를 넘겼나 싶다. 그리 생각하니 기분도 좋고 기운이 솟아난다. 복도에서 만나는 환우들이 말한다.
“우리 병동에서 아주머니가 여자 환자들 중에서 제일 운동을 열심히 하시네요.”
아~암. 그래야지.
미음이 나왔다. 1/4만 들라고 한다. 아이구. 다 먹으라고 해도 적은 것을……. 부족한 먹이에 구시렁대는 나에게 그이는 의사의 말을 잘 들어야 먹을 것을 준다고 농담을 한다. 미음을 넘기는 마누라가 신기한가 보다. 아니, 먹는 것만으로도 좋은가 보다.
저녁엔 죽이 나왔다. 아~항! 그래 죽이라도 돼야지 먹은 것 같지. 그런데 그것도 1/2씩 먹으라고. 그러니까 하루에 6번의 식사를 하라고 한다. 그런데 와 이리 맛이 없는고. 오~라. 이제 맛 투정을 하는 걸 보니 살아났구먼. 옆 자리의 간병인이 죽 집에서 사다 먹으라고 조언을 한다. 그거 좋은 생각인 걸?! 그이가 단숨에 뛰어가서 죽을 사서 들고 들어온다. 고마운지고. 병원에서 체크를 하니 죽 그릇은 말끔하게 비우고 빈 그릇을 내 보내야지. 점점 나아간다는 즐거움에 이젠 사람인가 싶다.
그런데 사단이 났다. 먹기는 먹는데 배설을 할 수가 없다. 변비로 고통스러워하는 이들이 신기하더니 내가 걸려들었다. 매일 아침에 찍는 X-ray상 변은 내 명치끝까지 찼다 한다. 부끄러운 곳을 들여대고 관장을 해도 멀건 물만 내놓는다.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하루에도 열 번의 관장을 자청했다. 아~. 변을 못 본다는 게 이런 거로구나. 내 장은 너무 오랫동안 비워두어서 시방은 자력으로 운동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손으로 장운동을 시키고 걷기 운동을 더 열심히 해서 장을 움직이라는 명(命)이 내렸다. 아무리 걸어도, 아무리 배를 주물러도 소용이 없다. 괴로워하는 어미를 보다 못한 큰아들이 달려들어서 내 아랫배를 긴 시간 문질렀다. 소용없다. 관장을 할 때마다 X-ray를 찍어대지만 허탕이다. 관장약을 밀어 넣고는 간호사가, 딸이, 나중에는 남편도 내 하수구를 밀어대지만 막무가내다. 야~~~~~~! 이건 수술의 통증보다 더 견디기가 힘이 든다. 아마 오래 걸릴 것이라고 의사도 간호사도 한결같이 이르는 말이다. 평생에 큰일을 보지 못해서 애써보기는 처음이다. 물리치료사가 장시간 아랫배 마사지를 해 보지만 듣지 않는다. 낭패다. 이래저래 식도암환자는 힘이 들게 돼 있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