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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칙폭폭


BY 바늘 2009-08-24

입추 지나 말복도 지나 소슬한 바람 부는 언덕에 앉아 점점 누렇게 익어가는 넓은 논에  튼실한 알곡을 미리 앞서 희망으로 바라봅니다.

 

아직은 낮으로 30도를 넘나드는 더위가 곁에 있지만 저녁 퇴근 무렵 선들 부는 바람에서 가을 냄새가  묻어납니다.

 

굽이굽이 어렵사리 열여섯 고개, 장에 내다 팔 누런 소도 없고 조상이 물려준 기름진 전답도 없었지만

시련의 골짜기 넘어 딸에 이어 아들 녀석 대학 4학년 2학기 등록금까지 졸업 후 빚으로 남는 학자금 대출

하나 없이 열여섯 번째 거금의 대학 등록금까지 완납하고 보니

 

밥 안 먹어도 너무 배부른 엄마 여기 있습니다.

 

돌아보니 꿈만 같습니다.

 

허허벌판  걱정으로 한숨 쉬던 날이 바로 어제 일 같은데 이제 딸에 이어 아들아이 졸업 전

4학년 2학기 등록금까지 내고 보니 새삼 보람이란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아이 등록금으로 오백만 원을 준비해 두었는데 사백구십 만 원이 나와 공돈으로 십만 원이

생겼습니다.

 

퇴근길 아들과 딸을 불러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간만에 스테이크를 먹었습니다.

 

마침 요일별 할인이 있어 공돈 십만원은 식사를 하고도 남았습니다.

 

두 아이 공부 가르치는 세월 속에  제가 많이 늙었습니다.

 

이렇게 앉아 이곳에 글을 올리는데 노안이 와서 자꾸 글이 어른거려 실눈을 뜨게 됩니다

 

마냥 청춘인 줄 알았는데...

 

이번주 주말에 직장 생활하는 딸이 친구와 괌으로 여름휴가를 떠난다네요

 

그런데 여행은 딸아이가 가는데 제가 참 기분이 좋습니다.

 

점점 어수선 혼란의 세월을 뒤로하고 안정된 가정으로 자리 메김 해 가는 징조(?)라는

생각이 들어서랍니다.

 

희망하는 대로 아들 녀석도 좋은 곳에 취직되어

멋진 삶을 꾸려나갔음 싶네요

 

근면!!! 

 

성실!!!

 

학교 급훈에 자주 등장하던 낯익은 단어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지금의 나와  아이들 곁에 늘 함께했던 삶의 지표였고 실천사항이었나 봅니다.

 

지난 온 날들이 꿈만 같습니다.

 

어둠의 터널을 지나 기차는 밝은 태양 속에 푸른 초원을 향하여 신나게 달려갑니다

 

칙칙폭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