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23회
갈수록 태산이로세
막내아들이 출국을 한단다. 토요일에 입원실로 옮긴 걸 봤으니, 이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몇 번이고 돌아보고 또 돌아보던 막내아들이 병실을 나선다. 제 아비를 빼어 닮은 녀석은 내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나서지만, 아마 로비에선 눈물을 보였을 것임을 나는 잘 안다. 막내의 그녀가 잘 달래주겠지 싶다. 다른 아이들도 이젠 회사로 학원으로 호텔로(큰딸아이가 외국인 호텔에 근무한다)……. 이제 이 문제 덩어리 마누라는 오롯이 그이의 몫이다. 그이는 작으나마 자영업을 하니, 사무실을 좀 비우고 직원과 전화로 일을 처리해도 된다. 몸은 힘이 들겠지. 병실의 간병인들은 며칠만이라도 간병인을 두라고 한다. 식도암 수술 환자는 상처가 많아서, 환자를 드다르기가 수월치 않다는 이유다. 가족들은 인정상 가혹한 운동을 시키지 못한다는 이유도 단다. 경험이 많은 간병인은 준의사의 자질을 갖고 있긴 하다. 체험에서 오는 노련함이 보호자의 그것과는 다르다. 그녀들의 조언이 그르지는 않겠으나 그이가 마다한다. 나도 사실은 썩 내키지 않는다. 간병인을 두고 신경을 쓰느니…….
그이가 자꾸만 운동을 종용한다. 먹을 것도 안 주고 운동을? 이 몰골로? 어디, 당신이 원하신다니 내려서 보기나 하자. 아이구우우우우~. 이건 병실에 있던 환우들과 보호자들이 합창으로 지르는 비명소리다. 내가 침대에서 내려서다가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이가 옆에서 겨드랑이를 잡지 않았으면, 몸에 박힌 관들이 요절이 날 뻔했다. 어랍쇼?! 왼쪽다리에 감각이 없다. 버티고 설 수가 없다. 왼쪽다리가 공중에서 덜렁거린다. 묘하다. 분명히 달려있기는 한데 제 혼자 놀고 있다. 비상벨을 울리자 간호사가 뛰어오고 뒤이어 주치의가 달려온다. 단 번에 무통주사가 문제라고 찾아낸다. 즉시 무통주사를 바꾸고 척추에 대형 주사를 꽂는 모양이다. 서서히 다리의 체온이 돌아오고, 바짝 얼었던 그이와 막내 딸아이의 혈색도 돌아왔다. 후유증으로 평생을 그 모양으로 고생하는 환우가 있다고 중풍환우의 간병인이 말한다. 참 다행이다 싶어서 나는 또 내 사랑하는 하나님께 눈물을 찔끔거리며 감사한다.
운동도 좋지만 이 많은 관을 꽂고, 이 험상궂은 구정물통을 매달고 복도를 걸으라고? 얼마나 운동을 하느냐에 회복의 속도가 달렸다 하니, 남편이 나를 가만히 놔 둘 턱이 없지. 밀고 다니는 이동용 행거에 무통주사를 디룽디룽 매달고 구정물통을 두 개나 올려놓으니, 얼기설기 얽혀진 여섯 개의 관과 함께 가히 볼만하다. 또 약물 팩은 하나 둘이냐는 말씀이야. 쯔쯔쯔. 구경거리겠다. 그이는 옆에서 행거를 잡아주기도 하고, 복도의 코너에서는 행거를 돌려주기도 하며 충실한 보디가드(?) 노릇을 한다. 그이도 못할 짓이다. 그런데도 그이는 조금의 여유도 주지 않고, 좀 전의 그이와는 다르게 혹독한 운동을 요구한다. 다행인 것은 복도에 나를 닮은 환우가 제법 많아서, 부끄러울 건 없다는 점이다. 아니, 나보다 더 위중한 환자도 눈에 띈다. 불현듯 내 친정의 조카 벌 되는 아이 생각이 난다.
그 아이는 촌수로는 내게 조카 벌이지만, 나와는 다섯 살 밖에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 조카는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서 다리를 전다. 어느 날 그 조카가 나와 나란히 길을 걷다가, 다리를 절면서 앞서 가는 한 청년을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
“고모. 저런 사람을 보면 내가 어떤 생각을 할 것 같아요?”
“…….”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 같죠? 그런데 ‘그 꼴로 왜 사냐? 죽어버리지.’ 싶어요.”
나는 살고 나를 닮은 꼴 적은 이들은 그 꼴로 사는 게 한심하다는 말이겠다. 사람의 마음이란 다 같은가 보다. 움푹 꺼진 눈으로 휠체어에 앉아 신음하는 환우를 보면 나도……. 못 된 게 사람 마음이라고 나를 나무란다. 저 환자가 얼마나 살고 싶은가를 왜 모르느냐는 말이지.
내가 위중한 수술을 받기는 한 모양이다. 수술 다음 날은 12시, 16시, 20시, 22시에 X-ray 촬영을 한다. 별 이상은 없는 모양이나 슬그머니 겁이 난다. 다음 날부터는 아침마다 체중을 달고 수술 부위에 치료를 한다. 세상에~! 식도 절제술을 받았으니 한 뼘이나 되는 복부의 칼자국은 그렇다 치자. 그런데 애매한 내 등판은 왜 이리 찢었을꼬. 등판의 오른쪽 날갯죽지에서 시작 된 칼자국은 척추까지 원을 그리며 내려오다가, 다시 유턴을 해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해서 내 거룩한(?) 유방 아래로 바짝 파고들더니 명치를 약 5cm 남기고 멈췄다. 오~라. 그래서 내가 눕지를 못하는구먼. 가만 있자. 내 오른쪽 갈비뼈는 또 왜 이래? 이런 이런. 갈빗대를 두 대나 고의로 작살을 냈다 한다. 무통주사를 맞으니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지만 분명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러 저런 이유로 나는 등을 어디에도 의지하지도 못하고, 꼬박 앉아서 잠을 청한다. 아니, 아예 잠다운 잠을 자지 못하겠다. 편한 잠이나 좀 잤으면 좋겠다. 주치의가 들어와서 상처를 치료할 때마다, 나보다 보는 이들이 더 애처로워한다.
밥은 아직 금식이고 약도 매달린 관을 통해서 주입하니 한 가지 고통은 잠자리다. 사람이 잠을 자지 못한다는 게 얼마나 큰 고통인가를 알겠구먼. 자고 싶을 때 잘 수 있다는 게 큰 복이었다는 말씀이야. 더욱이 수술 시에 장시간 힘겨운 자세로 있었던 피로가 겹쳐서 어깻죽지가 천근이다. 머리까지도 팔이 들리지를 않는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하니 볼 불기에도 문제가 생겼다. 하나 반씩 올라가던 공을, 저녁에는 겨우 하나 밖에 띄우지를 못한다. 죽을 맛이다. 그런데도 운동과 재활치료는 멈추지를 않는다. 결국 매일 아침 찍는 X-ray 상에서 이상기운이 발견됐다고 한다. 허허. 폐에 물이 찼다네. 폐에 물이 찼다고? 그래서 어쩌라고? 쪽박으로 퍼 낼 수도 없을 것이고 어쩌라고……. 그래서 공이 더 높이 올라가지 못했을까? 드디어 걱정하던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렇게 만신창이가 된 몸통의 기능이 온전할 리가 없겠지 싶다. 제기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