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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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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4>사랑, 결혼하면 끝일까?


BY 이영미 2009-08-05

실제상황 2- 포기라는 단어를 통해 얻은 행복?

 

중학교 동창 중 대학 2학년 때 결혼한 친구가 있었다. 열렬한 연애를 하여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너무 사랑하여 더 이상 떨어져 살 수 없다던 두 사람. 대학을 졸업하고 5년 만에 만나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결혼 8년. 그동안 세월이 나에게 준 것이 있다면 포기라는 단어야. 그걸 깨닫는 데는 2년이면 충분하더라고. 열렬히 사랑했지. 그 사람도 나도. 나는 그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랑했지만 그 사람은 아니었어. 그 사람은 늘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거든. 그 사람이 뭐래는 지 알어? 자기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 그저 남자일 뿐이라는 거지. 한 여자의 남편도 아니고 두 아이의 아버지도 아닌 그저 남자. 그래서 자기는 언제든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고. 결혼반지 기억나지? 다들 엄청난 크기에 놀랐던 내 다이아몬드 반지. 하지만 그 반지가 지금은 누구의 손에 끼워져 있을지 몰라.”

행복하다고 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니 행복하다던 친구. 행복이라는 단어가 적절하게 쓰였는지 의문이지만 그 친구는 자신은 행복하다고 말했었다.

두 아이를 잘 키우는 것이, 그리고 직장 일로 사회적인 성공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남은 것 같다고. 그리고 많은 세월이 흘렀다. 이제는 40대 중반이 된 친구. 일찍 얻은 두 아이는 모두 독립하여 자신들의 길을 가고 있고 자신도 대학원을 가고 박사 과정을 밟고 유학을 다녀와 자신이 목표한 사회적인 성공까지 이룬 친구. 그런데 이제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 20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과 행복했던 시간은 기억에도 없다고. 그래도 함께 산 이유는 이혼이라는 것이 두려워서, 그리고 아이들 때문이었다고.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왜 그 때 그것을 행복이라고 표현했었을까? 그 남자에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순간 마음이 가벼웠어. 나는 그걸 행복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야. 기대하는 것이 없으니 상처받을 일도 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그건 그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여자인 나 스스로에 대한 포기였던 거야. 사랑? 그건 젊은 시절의 열정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그런 건 사그러지는 거라고. 그런데 그거 아니야. 사랑은 한 때의 감정이 아니라 두 사람이 키워가야 하는 감정이라는 것을 우리는 몰랐던 거야. 그 사람은 자꾸만 다른 곳에서 순간순간의 불꽃같은 사랑만 쫓고 나는 그런 그의 뒷모습만 바라보며 그를 미워하고 원망하기만 했고. 그러다가 포기해버렸고.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면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던 거야. 그 사람? 여전히 불나비 같이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을 찾아다니고 있지. 제대로 사랑을 할 줄 모르기는 나나 그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야. 사랑은 저절로 생겨나지만 그걸 가꾸고 키울 줄 모르면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우린 여전히 같은 집에서 살아. 그렇지만 사랑이라는 것을 모르지. 서로를 향한 사랑을. 그 사람이나 나나 잘 차려 입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부부 동반 모임에도 가지. 서로에게 아주 매너 있게 행동하지. 남들 보기에는 아주 존중하며 잘 살아가는 부부로 보일 거야. 상처 주는 말도 하지 않아. 그건 관심도 없다는 말과 같아. 상처를 주고 그 상처를 서로 핥아주고 보듬어 주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나 가능한 일이야. 우린 그저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타인일 뿐이야.”   

 

* 여기 연재하는 이야기들은 이야기 주인의 허락을 받은 것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