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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15회) 포기하는 삶


BY 만석 2009-08-02

 

1부 제15회

포기하고 싶은 삶

 결국 시원한 소리를 듣지 못하고 퇴원을 했다. 2차 항암이 제대로 된 것인지……. 아니면 주사료를 받고라도 제대로 채워 줄 것을 요구했으나, 그건 아니란다. 집으로 퇴원을 했다. 119의 엠브런스로 집을 떠난 지 거의 두 달만의 귀가다. 2차 항암을 하는 동안 큰 딸아이 네가 이사를 했다. 참 아이러니 한 일이다. 평 수는 좀 적어서 방이 셋인데 집값은 훨씬 높은 가격을 치렀다고. 학군이 문제라고 한다. 지금도 딸아이는 그 일을 두고 많이 미안해 한다. 방이 셋이라서 엄마를 집으로 가게 만들었다고. 그러나 내가 병이 선고되기 전에 이미 이사할 계약은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니 그건 아니다. 아이들을 한 방으로 모으겠다고 하나 내겐 편안한 일은 아니다.


  한창 더운 날씨에도 집안은 냉랭하고 썰렁하다. 찬바람도 인다. 남편이 주차장에 차를 넣으러 갔기 때문에 혼자 현관을 들어선다. 울컥! 옳거니. 목젖을 치밀고 올라오는 격한 울음을 누르지 못한다. 현관에 돌아앉아 겨우 신발을 벗어놓고 울음이 터진다. 꺼~이, 꺼~이. 내 집에 들어서니 삭신도 감정도 함몰되는가 보다. 핸드폰도 따라 운다. 누구라도 지금은 싫다. 지금은 이대로 혼자이고 싶다.

  “어떻게 해. 나, 어떻게 해~에~에~에.” 누가 듣고 답하랴. 오히려 이웃에서 들을까 걱정이다. 소리는 죽였으나 흐르는 눈물은 곧 강을 이루겠다. 한참이 지난 뒤 대문 여닫는 소리가 난다. 남편이겠지. 그제야 어린아이처럼 두 손바닥으로 뺨을 쓸어내리고 엉금엉금 기어 안방으로 든다. 아들이 안방에 누울 자리를 마련해 놓고 출근을 한 모양이다.


  며칠 뒤에 두 딸을 대동하고 외래로 담당교수와 면담을 했다. 이런. 이런. 원 식도 수술은 뒤로 하고 계속 항암치료를 하겠다는 소견이다. 물론 열어봐야 정확하겠지만, 대동맥이 지나는 길이라 위험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기존의 식도는 항암으로 치료하고, 항암치료 뒤 환자의 상태를 봐가면서 1차 수술로 식도에 남은 암을 제거한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2차로 우회 식도를 재건해야겠다고 한다. 지금 생각하면 내 담당의사는 살아 있는 동안 먹을 수 있게 한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딱 뿌러지는 표현은 없었으나 살아서 숨을 쉬는 동안만……. 우리가 무슨 의학적 지식으로 반문이나 하겠는가. 교수가 하라는 대로 CT실과 초음파내시경실에 몸을 내어주고, 정해주는 대로 재입원 날짜를 받았다. 병원 문을 나온 뒤 아니, 교수실을 나오면서부터 우리 중에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항암은 몇 차까지 일 지도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한 번의 항암을 하는 데에 사흘이 걸리고 몸을 추스르는 데에는 3주를 요한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 동안은 항암을 하다가 간다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식도 재건수술은 받아보지도 못할 수도 있다. 식구들은 우왕좌왕하며 고생을 하다가 결국은 환자를 놓칠 것이리라. 돈은 돈 대로 들 것이고……. 누구라고 조용히 있다가 그냥 죽으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땐 환자가 나서야 한다. 그러니까 내가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그런데 왜 치료 방법이 바뀌었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혹시 2차 항암의 가칭 ‘의료사고’ 때문일까? 우리는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따지고 들었다고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것일까? 그래서 괘씸죄가 성립 됐다는 말씀이야? 말도 안 된다. 그렇다고 환자의 생명을 담보로 감정을 내 세워? 그건 아니겠지 하는 마음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내 머리는 빠르게 회전 중이다. 그래? 아니겠지? 그래? 아니겠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내 몸을 맡겨? 마음먹고 메스 한 번만 휘두르면 끝나는 생명인 것을……. 그래도 살 수 있는 데까지는 살아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착찹하다. 그냥 죽어 줘? 누구를 위해서야? 이젠 눈물도 나지 않는다. 억울하지도 않다. 누구를 원망해 볼 심사도 없다. 그저 멍청해 있을 뿐이다. 며칠이라는 단서를 달아서 도우미를 썼지만, 그녀도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게 거추장스럽다. 오늘까지 일당을 계산해 주었더니, 빨아놓은 방석을 끼우고 저녁에 가겠다고 한다. 더는 말도 하기 싫어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나, 이러다가 스스로 그냥 가고 싶어지는 거 아닐까?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