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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그거 별거 아녀~! (12회) 울고 싶어라


BY 만석 2009-07-30

 

1부 제12회


울고 싶어라


  넓은 공간에서 누구랄 것도 없이 친절한 식구들에 싸여 맘껏 행복하다. 네 시간마다 먹이를 주입하는 일은 딸아이가 맡아 한다. 관을 꽂은 부위를 소독하는 일도 하루에 한 번씩 딸아이가 수고를 한다. 손녀 딸아이들의 재롱도 자주 나를 웃게 만들곤 한다. 딸의 주문에 따라 사위는 내게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퇴근을 한다. 소독약이며 반창고며 거즈 등등…….


  다만 나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은 방바닥이다. 아니, 방바닥에 널려 있는 머리카락이다. 진드기로러를 굴려도 또 굴려도 머리카락은 쉴 새 없이 날린다. 거실이며 주방이며 화장실 할 것 없이 내 머리카락이 널려 있다. 자연히 내 방에서 만의 생활이 시작된다. 백설공주의 서모인 양 거울을 들여다보며 묻는다. 내 머리가 정말 원상(原狀)으로 복원(復原) 되겠느냐고.

이제 더는 빠질 머리숱도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바닥엔 머리카락이 즐비하다. 그래서 항암환우가 머리를 밀어버리는구먼. 이해는 되지만 난 머리를 밀기는 싫다. 비에 젖은 우리 집 총재처럼 볼품은 없어도 박박 밀어버리기는 싫다.


  손녀 딸아이들이 ‘할머니 위로 공연’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가수를 자청하지만, 것도 한 두 번이다. 아주 어린 아기들이라면 일상의 하는 일이 재롱이겠지만, 내 손녀딸 아이들은 고등학생이고 중학생이다. 그래도 나야 열 번인들 싫겠냐마는, 아이들은 재탕(再湯)에 신명이 날 턱이 없지. 쉽지 않은 일은 또 있다. 내가 먹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잘 얻어먹지 못한다는 점이다. 그 좋아하는 생선 냄새를 피우는 것도 내게 못할 짓이고, 끼니마다 먹어도 좋다는 불고기도 냄새를 피우는 것이 조심스럽겠다. 나는 먹지 못해도 크는 아이들은 먹여야 하니, 아마 가끔 사위와 아이들만의 외식을 권하는 모양이다. 맘이 편치 않다.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아서 무서우리만치 새까만 베란다에 붙어 서서, 까마득한 맞은편의 불빛을 센다. 하나 둘 셋……. 그 짓도 곧 시들해지고 그 아파트 꼭대기로 붉은 기운이 솟는다. 먹이를 받아먹을 시간은 아직인데 출출해서 주방문을 연다. 저런. 잠귀가 밝은 사위가 먼저 눈을 떠서 제 댁을 깨우는 모양이다. 그냥 못 들은 척 해도 좋으련만……. 아이들의 말을 빌리자면, 딸 부부는 매일 밤 클럽엘 다녀왔다 한다. 그러나 내가 딸네 집에 온 뒤로 내외가 함께 클럽에 나가는 일은 없다. 가끔 사위가 혼자서 다녀오는 것 같다. 장모에게 처를 뺏기고는 혼자인 집이 재미가 없어서이겠다. 


  사흘 만에 남편이 온단다. 나도 반가운 걸 보니 은근히 기다렸던 모양이다. 어이구우~. 주변머리 하고는……. 머리는 빠지지 않았는데 그 주변머리는 어디로 갔을까. 지천에 과일인데 한 바구니 사 들고 오지…… 빈손이다. 내가 귀뜸을 하자 손녀 딸아이에게 뭐가 먹고 싶으냐고 묻는 꼴이다. 묻는 레퍼토리가 기가 막히게 웃긴다. 자장면? 만두? 탕수육? 걔들이 아직 어릴 적의 손녀딸로 보이나? 유난히도 자장면과 만두와 탕수육을 좋아하기는 했었지만, 그게 언제 적 이야기인가. 도대체 이 남자는 내가 거들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다. 내가 죽고 혼자 남으면 참 큰일이다. 어서 드레곤 호텔로 아이들을 몰고 가서, 저녁을 먹여 오라고 이른다.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제 외할아버지를 호위하고 나간다.


  혼자 남겨진 집에서 좀 울어나 볼까? 그동안은 듣는 귀가 많고 사방에서 살피는 눈이 적지 않아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다. 두 다리를 쭉 뻗고 앉아서 어~엉 어~엉 소리 내어 울고 싶다. 이게 뭐냐고. 내 꼴이 왜 이래야 하느냐고. 이제야 아이들 다 기르고 손을 털 참이었는데. 이제부터 내 삶을 찾겠다고 투자한 게 얼만데. 환갑이 다 된 나이에 어린아이들과 나란히 앉아 대학 수능시험 치르기는 쉬었나? 대학 합격의 기쁨은 얼마였고 4년 장학금 타며 과 수석, 차석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웠는가. 학사모를 쓰고 가운을 입고 졸업식을 할 때의 내 기분을 누가 나만큼 알기나 해? 그런데 지금은 눈물샘이 얼었는지 울음이 나오지 않는다. 복지관과 노인대학의 교사와 강사 자리를 내어 놓을 때, 목젖을 치밀고 오르는 서러움을 누르느라고 얼마나 애썼는데…….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려다가 변비로 볼 일을 못 보고 그냥 나온 기분이다. 눈물을 흠씬 쏟고 나면 시원할 것만 같은데……. 얼른 2차 항암이나 시작했으면 좋겠다. 이제 사흘이 지났으니 언제 보름 을 더 기다려. 난, 이렇게 잘 이겨 낼 자신이 있는데 말이지. 이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