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10회
물결에 흐르는 배처럼
살 것 같다. 팔에 매달린 주사기를 빼고 혹처럼 따라 붙던 기계를 떼어내니 날아갈 것만 같다. ‘어디, 날아 봐야지.’ 정말 팔을 양쪽으로 벌려 양껏 뻗고는, 비행기 놀이를 하듯 고갯짓을 해 본다. 히히. 내가 암환자라는 것도 잠시 잊고 구석구석을 돌아다닌다. ‘아하~. 나는 72병동의 539호에 누었었구먼.’ ‘오호라. 이쪽은 남자들 전용 병실이구.’ 구경거리가 많다.
지금 내 뒤에선 그이가 경호(?) 중이다. 것도 싫다. 나 혼자 자유롭고 싶다. 돌아서서 어린아이처럼 남편의 배를 두 손으로 밀어 병실로 밀어 넣는다. 흐흐흐. 좋다. 자유가 좋다. 적어도 2차 항암이 3주 뒤에 시작 될 예정이라 하니 그 3주간은 자유인이다.
승강기 맞은편에 아주 낯익은 여인네가 섰다. 놀라 돌아보니 대형 거울 속에 갇힌 내 몰골이다. 나도 몰라보는 저 몰골은 뭐람. 얼굴과 환자복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머리가 이상하다. 아무래도 내 머리가 이상하다. 아~항. 난 지금 막 항암을 끝냈지?! 옆구리를 누르며 병실로 급히 뛴다. 남편이 병실 문 밖에서 나를 기다리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마주 온다.
“가만 있어봐.”
“왜 그래?”
“글세. 가만 있어 봐요.”
수건과 비누를 챙겨서 샤워실로 가기는 갔는데, 허리가 구부러지질 않는다. 아하. 또 잊었구나. 옆구리에 관이 꽂힌 것을……. 샤워실 문에 섰을 남편을 부른다. 남편이 분무기를 들어주어도 머리를 감지 못하겠다. 머리 감기를 포기하고 내 침대에 올라앉아 머리에 빗질을 한다. 세상에~. 이렇게 되리라는 예측을 왜 못했을꼬. 이를 어째. 빗질을 할수록 머리는 자꾸만 빠진다. 나만은 이렇게 되지 말아야 하는데, 이렇게 되어버린 것만 같다. 그런데 왜 아무도 이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을까. 나만 모르고 있은 겨? 아무 말도 못하고 창 밖 스산한 하늘만 노려본다. 울 듯 한 내 기분을 읽고 남편이 나무란다. 시방 그게 뭐 그리 중요하냐는 투로 말한다.
“다시 날 텐데 뭘 그래.”
시무룩한 기분으로 막내 딸아이에게 전화를 건다.
“모자가 필요해.”
영악한 딸년은 두 말도 하기 전에 알아듣는다. 그러니까 애들은 변해가는 내 머리 스타일을 의식했던 모양이다. 저녁 퇴근길에 털실로 뜬 모자가……. 막내딸은 요리조리 씌우면서 내 기분을 맞추느라고 눈이 반짝거린다.
“오우~예. 이쁘다아~.”
‘이쁜 사람 다 죽었지.’ 속으로 투덜거리며,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인다. 갑자기 내 집엘 가고 싶다. 공연한 심통이리라. 퇴원을 해도 좋으련만, 한 이틀 지켜보자 하는데 남편도 동조를 한다.
아차차. 갑자기 출근하던 복지관 생각이 이제야 난다. 그러고 보니 내가 여러 날 무단결근을 한 셈이다. 나는 여러 군데의 복지관에서 아주 잘 나가는 강사다. 보수도 없는 봉사 직이지만, 제법 인기가 있는 선생님이다(ㅎ~). D복지관과 Y복지관과 J복지관에서는 한글반을 맡아 가르치고, D복지관의 다른 교실에서는 초급반이긴 하지만 영어도 가르친다. S노인대학과 N노인대학에선 ‘21세기를 살아가는 노인들의 자세’라는 제목으로 강의를 했다. 또 최근에는 여성부 사이트에서 콜이 있어, 적은 보수이긴 하지만 필진으로 활동을 시작했는데…….
각 복지관에서는 잠깐 병원에 다니러 간 것으로 알고 있을 게다. 이제 모두 손을 놓아야 한다. 전화를 걸어 정리를 하는데, 왈칵 눈물이 나려 한다. 눈가 볼라 싶어서 고개를 들어 눈 가를 말린다. 그 중에도 정작 필진으로 활동하는 곳은 놓치기가 아깝다. 고료는 적지만 내 글을 필요로 손을 내 미는 곳이 있다는 데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가졌었는가. 이제야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재미를 붙였는데……. 좀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할까? ‘꿩 대신 닭’이라 했던가. 대학교수의 꿈이 작게나마 복지관 강사로 이루어지고 있는 참인데. 어디, 가는 데까지 가 보리라. 남편은 자꾸만 다 그만 두라 하면서도 동전을 내어준다. 병원 로비에서 글이 끝날 때까지 그이가 지켜 서서 넣어주는 동전으로, 컴을 열고 글을 써서 사이트에 올린다. 아직은 살아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남편이 측은한 마음이 드는지, 아이들에게 하듯 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엷게 웃는다. 내가 생각해도 참 못 말리는 만석이다.주말이 끼어서 월요일 아침에 퇴원 준비를 서두른다. 그이와 아이들이 머리를 대고 입을 모아, 나를 큰딸 네로 몰아갈 모양이다. 엄마가 혼자 집에 있으면 모두가 걱정스러운 일이어서, 큰딸이 3주간 휴가를 냈다 한다. 그러다가 지장이 있을라 싶어서, 그도 미안하고 송구스럽다. 내 뜻으로야 내 집에 있는 것만 못하겠지만, 모두의 마음이 그렇다 하니 어쩌겠는가. 뭘 잘했다고 개선장군마냥, 나는 시방 사위의 최신 벤즈에 실려 방베동 큰딸 네로 가는 중이다. 남편은 며칠 전에 가려던 천안으로 오늘 아침에야 떠났다. 같이 사는 큰아들은 회사가 바빠서 제 누나에게 나를 맡기고 출근을 했다. 나는 갈 곳 없는 늙은이처럼 사위와 딸에게 인계된 채, 그렇게 끌려가는 기분이다. 점점 멀어지는 내 집 방향에 시선이 가자 서글픈 생각이 든다. 입원 26일만이고 식도암 선고 17일만의 퇴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