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제6회
나, 많이 미안해요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그 소리가 커졌다가 작아지고 다시 커졌다가 작아지고 다시 커진다. 어두운 터널 저쪽에서 사람들이 이리로 무리지어 걸어오는 모양이다.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고 누운 사람 주위로, 좀 전에 걸어온 사람들이 하나 둘 둥그렇게 모여든다. 사고를 당하고 누운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내가 깜짝 놀라 눈을 뜨려하지만 눈이 자꾸만 감긴다. 내 아이들이 소리친다.
“엄마!”
“엄마!”
“괜찮아요?”
“엄마. 안 아파요.”
남편은 아이들 뒤편에서 아주 짜~ㄴ한 눈으로 내 시선을 받아들이고 섰던 것으로 기억 된다. 나는 지금 막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중이다.
두리번두리번. 나는 분명히 살아 있다. 바로 전에 산소마스크 같은 것을 쓰고 하나 둘을 세었는데……. 금방 깨어난 것 같은데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자꾸만 눈꺼풀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 외에는 아무런 변화를 느낄 수가 없다. 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아무 걱정도 없이 편안하게. 허나 그도 잠시. 곧 간호사의 몰인정한 손바닥이 내 가엾은 볼타구니를 세차게 두드린다.
“아줌마. 잠 깨세요. 주무시면 안 돼요. 아줌마!”
아이들은 식사를 하러 가고 남편만 나를 지키고 섰다. 에구~. 가엾은 영감 쯔쯔쯔. 그러고 보니 잠시가 아니었나보다.
“괜찮아?”
남편이 내 배에 가볍게 손을 얹으며 묻는다. 그제서야 내려다보니 내 배통에 아니. 왼쪽 옆구리에 고무관이 꽂혀 있다. 으~. 징그러운……. 못된 식도 때문에 애꿎은 내 배통이 고생을 하는구먼. 평생 햇볕 한 번 받아보지 못한 내 하얀 뱃살은, 주인을 잘 못 만난 탓에 지금 이런 몰골이 되었구먼.
간호사가 다시 들어와 내 옆구리에 얌전히 꽂혀있는 관을 가리키며 호통을 치듯,
“이거 빠지면 큰일 나요. 다시 해야 되니까 조심하세요.”한다. 내가 생각해도 고무관이 빠지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주사기로 유동식을 넣는 작업은 남편이 전담한다. 뜨거운 물로 주사기와 대롱을 소독하고 량을 정확하게 주사하고……. 주사하기 전 ‧ 후로는 관의 길이 막히지 않게 물을 통관시키고. 에구. 남편도 못할 짓이다. 누워서 받아먹기도 편안치 않지만, 그래도 아이들보다는 남편이 이물 없다. 병실의 환자들도 모두 여자들이고 보호자도 대부분이 여자들이다. 그 속에서 키나 작은가 남들처럼 넉살이 좋은가. 누군가가 말을 걸지 않으면 며칠이라도 입을 열지 않는 양반이니 병실이 답답하겠다. 그래도 알량한 마누라 옆을 꼼짝도 않고 지키고 앉아 있다. 자영을 하는 사람이니 시간은 자유롭게 뺄 수 있다지만, 요사이로 더 길어진 목이며 늘어진 목주름이 관을 밖은 옆구리보다 내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12시에 퇴근을 해도 밥을 찾는 사람인데 요사이로 쭉 외식을 한다. 어느 때에는 외식이 싫어서 끼니를 건너 뛰기도 하는 모양이다.
참 딱한 사람들은 의료진이다. 관이 자리를 잘 잡았는가 촬영을 해 보자 하니 말이다. 그럴 양이면 애초에 자리를 잘 잡아서 꽂을 것이지. 이젠 관이 꽂혀 움직임도 수월치 않은 환자를 이리 오너라 저리 가거라 하니. 이건 <춘향전>의 ‘사랑가’도 아니니 춘향이처럼 갖고 놀자고 덤빌 처지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앞태를 보자 할 것도 아니고 뒤태를 보자 할 것도 아니다 싶어서 이런 와중에도 웃음이 나온다. 항암을 하여야 할 터이니 조사도 많고 검사도 많다. 돈 드는 일은 나중이고 우선은 가만히 누워서 받아먹기보다 지루하지 않아서 좋다.
이젠 아이들을 제 위치로 돌려보내야 한다. 제각각의 일터가 있는데 언제까지 어미에게 매달려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아이들도 어미 걱정을 하면서도 일터도 걱정일 게다. 무역회사 과장님은 회사로 출근을 해야 하고 일본어 강사님은 학원으로 출근을 해야 한다. 또 외국계 호텔에 나가는 큰딸은 출근도 하여야 하고 집에 있는 두 손녀딸들은 또 제 에미를 얼마나 기다릴꼬. 다들 출근을 하고 저녁 퇴근길에 다녀갈 것을 종용한다. 남편만 24시간을 병원에서 같이 하겠다고. 그래. 그게 나도 편하다. 남의 녹을 받는 아이들은 보내야 한다.
“엄마가 금방 어떻게 되는 거 아녀. 엄마 잘 이겨낼 겨~. 니들두 잘 챙겨 먹고 기운 내야 지. 엄마 병은 장기전이 될 거다. ”
이젠 내가 아이들을 위로하고 독려한다. 돌아서서 다시 보고 또 다시 돌아보는 아이들에게 소리없이 외친다.
\'나, 많이 미안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