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하나씩 사기도 하고, 얻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세어 보니 70종이 넘었다.
요즘은 자식 자랑이 아니고 꽃 자랑을 한다.
아무나 만나면 차 한 잔 하자며 초대를 한다.
믿는 구석이 있어서. 호호.
보고 또 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꽃나무와 얘기를 한다.
그래도 질리지 않는다.
정 붙일 자식들은 타향에 있어서
손쉬운 대상으로 꽃나무를 향한 정이 그칠 줄 모른다.
애완용 개나 새는 시끄럽고 털 빠진다며 남편이 못 기르게 한다. 미워.
일주일마다 변화되어 가는 꽃나무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 둔다.
젊어 애들을 기를 때는 이런 마음이 없었다.
꽃보다 고운 자식들만 눈에 보였고
사느라 바빠서였다.
어느 날 손자라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
공부하는 딸에게 손자를 안아 보고 싶다고 전화 했다.
남자 친구도 안 만드는데 우물에서 숭늉 찾는다고
기다리라 하여 둘이 배꼽 빠지게 웃었다.
그래도 난 사위보다 손자가 급하다. 하하.
스파트 필름이 꽃을 피우기까지
매일 지켜보는데 꼭 산통을 겪는 것처럼 보였다.
힘들어 하는 것이 느껴져서 하루는
직접 꽃잎을 들추어 주고 싶을 정도였다.
반면에 하루가 다르게 쑥쑥 크는 게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른 알록 카시아를 보며,
딸 아들을 포함한 모든 젊은이들이
그렇게 씩씩하게 세상을 힘차게 살아갔으면 하였다.
후후. 그런데 소나무는 나를 닮았는지
너무 느리게 자란다. 내 작은 키를 왜 닮으려 하는지.
산호수는 오지게 자라는데.
조용히 잎을 펼치고 있는 벤자민만이 어른스럽다.
아, 나도 꽃처럼 싱싱하게 살고픈 데
고장 난 기계음처럼 귀는 울고.
팔다리어깨 무릎 몸 나이를 올리니.
가고 오지 않는 청춘을 꽃나무에서 찾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