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대견하기만 하던 아들이었다.
하지만, 사춘기란 복병을 만난 후, 외양은 아들인데 그 속에 들어있는 영혼은 내 아이의 것이 아닌 양 놀랍게 변해갔다.
엄마에겐 그런 변화를 드러내는데 주저함이 없었지만 아빠에겐 적잖은 어려움을 느껴선지 많이 감추며 자제했다.
그래도 한 지붕 아래서 한 솥밥을 먹는 식구인지라 감춤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던 아들이 조금씩 자기주장, 자기 고집을 보이기 시작하자 남편은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지 그것을 용납하지 못했다.
당연히 부자간의 골이 깊어졌다.
아들에게 아버지는 무엇이든 강요하고 억누르는 존재였고 착한 아들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반항하는 쪽을 택했다.
싫어요, 하거나 왜요, 하는 대꾸는 남편을 아주 날카롭게 만들었다.
때로는 회초리를 들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아이를 교육시킬 시기는 이미 지난 듯 했다.
아슬아슬 줄타기 하듯 부자간의 미묘한 대립은 한동안 극에 달했다.
머리 길이라든지 핸드폰 사용이라든지 하는 이 시대의 갈등요소를 남편과 아이도 무난히 극복하질 못했다.
아들은 나쁜 아들이고 싶진 않았지만 그러기 위해서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많아진다면 좀 나쁜 아들이 되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사수하는 쪽을 택한 것 같았다.
엄마와 아내의 자리에서 나는 아내의 입장에 설 때가 많았다.
아빠 말을 거역하는 아들을 보는 것은 참 난감하고 서글픈 일이었다.
아들로 인해 남편이 초라해지는 것 같아서 아들이 더 괘씸했고 남편이 가엾고 안타까웠다.
자신의 편이 아니란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아들은 엄마가 아빠보다 더 싫어졌다.
자신은 어쩔 수 없이 나쁜 아들이 되었지만 엄마가 이 시대에 걸맞는 좀 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면 자신과 아빠의 관계도 잘 조정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은 어쩌면 남편도 갖고 있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 힘듦은 그저 내 몫일 테지.
아들에게 아빠는 극복해야 할 대상이었지만 그러면서도 긍정하고 사랑하는 존재였기에 이따금씩 건네지는 따스한 온기가 눈물겹도록 고맙고 좋기도 했다.
갈등과 마찰은 계속되고 있지만 하나하나 겪어나가면서 남편도 나름대로의 해답을 찾아가는 듯 보였다.
아버지란 산을 극복하고 넘지 못한 남자는 성인이 되어서 제대로 설 힘을 갖지 못한다는 내 귀띔에도 귀 기울이는 눈치다.
언젠가는 치러내야 할 과정이라면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려는 마음으로 생각을 바꾸며 많이 노력하는 남편을 느낄 수 있었다.
남편은 얼마 전 아들이 친구 집에서 자고 오는 문제로 또 한 번의 갈등을 겪으며 마음에 상처를 입었다. 친구 집에서 자는 것을 어릴 때부터 허락했던 것이 잘못이었을까, 아들은 친구 집에 가서 자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고등학생 아들이 나가 자는 것은 어릴 때와는 달리 여러 가지로 조심스럽고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자고 오지 말았으면 좋겠지만 최종 결정은 스스로 하라는 아빠의 말에 아들은 안 가겠다고 하면서도 머뭇머뭇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미련을 가진 모습을 보였고 결국은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던 남편이 그냥 가라고 하자 죄송합니다 하면서 친구의 집으로 향했던 것이다.
자식들이 가족 생각하는 맘이 영 없어, 혼잣말 하며 담배를 물고 베란다로 향하는 남편의 어깨는 축 처져 있었다. 그렇잖아도 이런저런 생각들로 우울해하며 가슴 답답증에 걸려 연신 공원으로 내달리던 요즘의 남편이었다.
그날 저녁 미사를 갔다.
성 바오로 출판사에서 각종 미디어물을 소개하려고 신부님, 수사님들이 오셨다.
강론을 하시던 신부님이 성가를 한곡 불러 주셨는데 뭔지 모르게 가슴 뭉클한 것이 위로가 되며 눈물이 절로 나왔다.
여기저기 앉아 계시던 신자 분들의 손이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아, 참 아픈 사람들이 많구나.
미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남편은 치유의 성가가 실린 CD를 한 장 구입했다.
그런 뒤, 내게 차 열쇠를 주며 먼저 주차장으로 가 있으라고 했다.
언제나 남편은 성모동산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늦게 내려온다.
하지만, 이 날은 우리 부부만 간 미사라서 나도 내려가지 않고 뒤에 서서 기도를 드렸다.
내가 먼저 내려간 것으로 알았던 남편이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여보, 뒤에서 남편을 불렀다.
못 들었는지 남편은 더 빨리 타닥타닥 내려갔다.
차를 타며 남편을 보았다.
화가 잔뜩 난 것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란 것을 곧 알게 되었다.
남편은 울고 있었다.
내게 들키는 것이 정말 싫었던 것이다.
난 끝까지 모른 척, 못 본 척 했다.
자기 전에 남편이 나를 불렀다.
가까이 갔더니 나를 안고 토닥거려준다.
그러면서 잘 자, 한다.
다음날 아침, 아들이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했다.
새달이 되고 이제 열흘 지났는데 벌써 알인지 별인지가 없다는 것이다.
잔소리 하지 않고 그냥 빌려 주었다.
아들은 일찍 나간 아빠가 자신에게 문자를 보냈다고 했다.
<사랑하는 아들아, 오늘 하루도 열심히 보내라.>
아들이 내 핸드폰으로 아빠에게 보낸 문자를 보았다.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열심히 할게요. 아빠, 힘 내세요>
부딪힘은 아직도 산처럼 우리를 기다리겠지만 한 고개를 넘으면서 내 가슴은 따뜻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