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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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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전성공


BY 그대향기 2009-04-25

 

며칠 전 남편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내 폰을 없앴기에 외부에서 오는 연락은 모두 남편 폰으로 오게 해 뒀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연락이 왔단다.

\'보고싶은 친구야....

 모월 모일 모시에 경주 보문단지 어디에서 만나자...\'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경주에서 가장 큰 학교여서

역사도 100 년이 더 지났고 학생수도 엄청났다.

졸업생들이 정재계에 진출해서 한자리씩을 하고

동기생들도 한다~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졸업하고 35 년만에 처음 동창회에 참석하던 날의 설레임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러 가던 그 날 보다 더 했던 것 같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누구는 누구랑 결혼했다던데 같이 올라나?

누구는 갑부가 됐다던데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내 짝꿍 남자애는 국내 대기업의 부장이라더니 올까나?

.........................

 

숱한 상상과 기대감으로 호텔에 준비된 동창회 첫 모임에 갔던 날.

순간순간 스치는 안면은 긴가? 민가???

호...옥...시????

얘~~!!

나야...나 6반의 그 ㅇㅇㅇ.

어머머머머...

웬일이니?

등짝을 두드리고 두 손을 맞잡고 호들갑스럽게 이름을 확인하던 날

남자애들은 완전 아저씨들이고

여자애들도 중년의 나잇살로 제법 연륜이 느껴졌었다.

 

눈가에 언뜻언뜻 보이는 속일 수 없는 자잘한 주름살이며

맞잡은 두손의 탄력 떨어진 촉감이며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하는 흰머리 카락들 하며

남자애들의 대머리가 낯설기만 하던 그날.

35 년의 지난 세월은 함박 웃음으로 일순간에 날아가고

우리가 느끼고 보는 것은 또 추억하는 것들은 모두 코흘리개 초등학생들.

고무줄 끊어먹던 개구쟁이며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는 걸 놓치고 바지에 오줌을 싼 찌질이들이며

남의 도시락에 계란후라이를 훔쳐 먹던 그런 개구쟁이들이었다.

 

그러고 한해 두해....

벌써 4회째.

동창회 모임에는 꼭 오는 애들만 오는게 신기할 지경이다.

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들인데 하루쯤 와서 얼굴 익히고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해맑은 그날들을 추억해 보는 것도 좋으련만

보고픈 아이들은 어디쯤 살고 있는지....

 

올해도 연락을 받고 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

옷 장 문을 열고 입고 갈 옷을 고르는데....

온통 겨울 두꺼운 옷들이고 얇고 하늘하늘한 가벼운 옷이 없....다.

작어져서 못 입는 옷이나 커서 안 입는 옷들을 받아 입다 보니

옷이 전부 다는 아니지만 짝짝이들이다.

웃도리가 근사하면 밑에 스커트나 바지가 안 맞고

바지가 그럴싸 하면 웃도리가 아니다.

이것 저것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가 에라~~~~이

장날에 나가서 하나 사고 말거얍~~!!

 

그리하여 지난 장날 잠자리 날개를 하나 장만하고

밤에 그 옷으로 갈아 입고 거실을 왔다리 갔다리......

어깨선이 조금 흘러 내리는 스타일에 박쥐날개처럼

활짝 펴면 엄청난 날개가 나오고 내리면 얌전하고 하늘하늘 야샤시~~~

어깨가 약간 드러난 자태로 남편 앞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멀뚱하게 티비를 보던 남편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당신 그 옷 어디서 났는데?

 그 옷 혹시  .....입고 밖에 나갈건 아니지?\"

\" 왜 아냐...동창회 때 입고 갈건데???

 멋있잖아~~날개 봐 봐..꼭 내 마음 같이 활짝~~인데...\"

남편은 눈동자에 힘이 풀리는지 그냥 피시식....웃는다.

\" 그렇게 입고 갈 옷이 없어?

 저번에 부산에서 사 입은 옷 입고 가지??

 점잖고 좋던데??\"

\" 아..그 옷은 겨울 순모라서 안돼.

 계절이 초여름인데 그 옷을 어찌 입고 가...

 그냥 이렇게 입고 바지만 까맣게 입고 갈래.\"

 

정말 요즘 입고 갈 적당한 옷이 없다.

일복이야 많지만...엄청나게.ㅎㅎㅎㅎ

정장을 하자니 핸드백이며 구두까지 신경이 쓰이고

그냥 캐쥬얼로 가자니 남편이 마다하고

할머니들이랑 살면서 온통 옷까지 늙은네 수준이니...원.

보다보다 남편이 그 옷을 입고 갈려면 차라리 하나 사 입으란다.

오...잉??????

참말로?

난 항상 옷 파는 가게 안에서는 주눅이 들고만다.

메이커랍시고 생긴 옷은 으...악...가격표의 동그라미가 도대체 몇개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동그라미에 경기가 일어날 지경이다.

매번 옷 매장에서는 만져보고 두리번 거리다가 나오기 일쑤다.

그런 나를 알기에 남편이 카드를 주면서 알아서 사 입으라고 했고

그래도 난 그냥 나오곤했다.

이 가격이면 우리애들 뭐도 해 주고 남편 뭐도 해 줄 돈인데....

그 계산이 앞서다 보니 제대로 된 한벌 정장은 내 손으로 장만을 안 했다.

부산의 잘 아는 분들이 한두벌씩 철따라 사 보내 주시고

일부러라도 작다니 크다니 하시면서 갖다 주신다.

그러구러 참 많은 세월을 살았다.

 

이젠 그리 살지 않아도 되련만

아직은 막내가 대학을 마쳐야 하고 둘째는 또....

남편은 허리띠를 졸라매라 하다가 내 얼굴이 일그러지면

\"알았어 알았어..당신 기본 문화생활은 지켜줄께.

 울상 좀 짓지 말아요. 남편 체면이 있지....

 당신이 기본적으로 하는 문화생활은 지켜줄께.

 막내 대학 마칠 때 까지만 경제를 살립시다~~허허허허허...\"

그러는 남편 앞에서 내가 무슨 옷 타령이며 용돈타령을 할꼬...

벗고 사는 것도 아닌데....ㅎㅎㅎㅎ

어쨌든 동창회 덕분에 옷 한벌은 벌었다~~

 

리틀~~

아무것도 필요없다~~

엄마 동창회 간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