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남편의 휴대폰으로 문자가 왔다.
내 폰을 없앴기에 외부에서 오는 연락은 모두 남편 폰으로 오게 해 뒀다.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연락이 왔단다.
\'보고싶은 친구야....
모월 모일 모시에 경주 보문단지 어디에서 만나자...\'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경주에서 가장 큰 학교여서
역사도 100 년이 더 지났고 학생수도 엄청났다.
졸업생들이 정재계에 진출해서 한자리씩을 하고
동기생들도 한다~하는 친구들도 꽤 있다고 들었다.
졸업하고 35 년만에 처음 동창회에 참석하던 날의 설레임은
초등학교에 처음 입학하러 가던 그 날 보다 더 했던 것 같다.
다들 어떻게 변했을까?
누구는 누구랑 결혼했다던데 같이 올라나?
누구는 갑부가 됐다던데 어떤 모습으로 나올까?
내 짝꿍 남자애는 국내 대기업의 부장이라더니 올까나?
.........................
숱한 상상과 기대감으로 호텔에 준비된 동창회 첫 모임에 갔던 날.
순간순간 스치는 안면은 긴가? 민가???
호...옥...시????
얘~~!!
나야...나 6반의 그 ㅇㅇㅇ.
어머머머머...
웬일이니?
등짝을 두드리고 두 손을 맞잡고 호들갑스럽게 이름을 확인하던 날
남자애들은 완전 아저씨들이고
여자애들도 중년의 나잇살로 제법 연륜이 느껴졌었다.
눈가에 언뜻언뜻 보이는 속일 수 없는 자잘한 주름살이며
맞잡은 두손의 탄력 떨어진 촉감이며
희끗희끗 보이기 시작하는 흰머리 카락들 하며
남자애들의 대머리가 낯설기만 하던 그날.
35 년의 지난 세월은 함박 웃음으로 일순간에 날아가고
우리가 느끼고 보는 것은 또 추억하는 것들은 모두 코흘리개 초등학생들.
고무줄 끊어먹던 개구쟁이며
수업시간에 화장실 가는 걸 놓치고 바지에 오줌을 싼 찌질이들이며
남의 도시락에 계란후라이를 훔쳐 먹던 그런 개구쟁이들이었다.
그러고 한해 두해....
벌써 4회째.
동창회 모임에는 꼭 오는 애들만 오는게 신기할 지경이다.
다 고만고만한 살림살이들인데 하루쯤 와서 얼굴 익히고
어린시절로 돌아가서 해맑은 그날들을 추억해 보는 것도 좋으련만
보고픈 아이들은 어디쯤 살고 있는지....
올해도 연락을 받고 동창 모임에 가기 위해
옷 장 문을 열고 입고 갈 옷을 고르는데....
온통 겨울 두꺼운 옷들이고 얇고 하늘하늘한 가벼운 옷이 없....다.
작어져서 못 입는 옷이나 커서 안 입는 옷들을 받아 입다 보니
옷이 전부 다는 아니지만 짝짝이들이다.
웃도리가 근사하면 밑에 스커트나 바지가 안 맞고
바지가 그럴싸 하면 웃도리가 아니다.
이것 저것 입었다 벗었다를 반복하다가 에라~~~~이
장날에 나가서 하나 사고 말거얍~~!!
그리하여 지난 장날 잠자리 날개를 하나 장만하고
밤에 그 옷으로 갈아 입고 거실을 왔다리 갔다리......
어깨선이 조금 흘러 내리는 스타일에 박쥐날개처럼
활짝 펴면 엄청난 날개가 나오고 내리면 얌전하고 하늘하늘 야샤시~~~
어깨가 약간 드러난 자태로 남편 앞으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멀뚱하게 티비를 보던 남편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당신 그 옷 어디서 났는데?
그 옷 혹시 .....입고 밖에 나갈건 아니지?\"
\" 왜 아냐...동창회 때 입고 갈건데???
멋있잖아~~날개 봐 봐..꼭 내 마음 같이 활짝~~인데...\"
남편은 눈동자에 힘이 풀리는지 그냥 피시식....웃는다.
\" 그렇게 입고 갈 옷이 없어?
저번에 부산에서 사 입은 옷 입고 가지??
점잖고 좋던데??\"
\" 아..그 옷은 겨울 순모라서 안돼.
계절이 초여름인데 그 옷을 어찌 입고 가...
그냥 이렇게 입고 바지만 까맣게 입고 갈래.\"
정말 요즘 입고 갈 적당한 옷이 없다.
일복이야 많지만...엄청나게.ㅎㅎㅎㅎ
정장을 하자니 핸드백이며 구두까지 신경이 쓰이고
그냥 캐쥬얼로 가자니 남편이 마다하고
할머니들이랑 살면서 온통 옷까지 늙은네 수준이니...원.
보다보다 남편이 그 옷을 입고 갈려면 차라리 하나 사 입으란다.
오...잉??????
참말로?
난 항상 옷 파는 가게 안에서는 주눅이 들고만다.
메이커랍시고 생긴 옷은 으...악...가격표의 동그라미가 도대체 몇개야?
일 십 백 천 만 십만......
동그라미에 경기가 일어날 지경이다.
매번 옷 매장에서는 만져보고 두리번 거리다가 나오기 일쑤다.
그런 나를 알기에 남편이 카드를 주면서 알아서 사 입으라고 했고
그래도 난 그냥 나오곤했다.
이 가격이면 우리애들 뭐도 해 주고 남편 뭐도 해 줄 돈인데....
그 계산이 앞서다 보니 제대로 된 한벌 정장은 내 손으로 장만을 안 했다.
부산의 잘 아는 분들이 한두벌씩 철따라 사 보내 주시고
일부러라도 작다니 크다니 하시면서 갖다 주신다.
그러구러 참 많은 세월을 살았다.
이젠 그리 살지 않아도 되련만
아직은 막내가 대학을 마쳐야 하고 둘째는 또....
남편은 허리띠를 졸라매라 하다가 내 얼굴이 일그러지면
\"알았어 알았어..당신 기본 문화생활은 지켜줄께.
울상 좀 짓지 말아요. 남편 체면이 있지....
당신이 기본적으로 하는 문화생활은 지켜줄께.
막내 대학 마칠 때 까지만 경제를 살립시다~~허허허허허...\"
그러는 남편 앞에서 내가 무슨 옷 타령이며 용돈타령을 할꼬...
벗고 사는 것도 아닌데....ㅎㅎㅎㅎ
어쨌든 동창회 덕분에 옷 한벌은 벌었다~~
리틀~~
아무것도 필요없다~~
엄마 동창회 간다~~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