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를 보았다
상영되기 전부터 \'워낭소리\'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뜻도 모르면서 왠지 단어에서 정겨움이 묻어나서다
사전을 찾아보니 워낭이란 소 목에 다는 방울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는 더 끌렸다
그러나 상영되고 나서 매스컴의 주목을 받자 그 마음이 주춤해졌다
까찰힌 성격 탓인가
유명세를 타면 거기 탑승하기 싫음은,,,,
그래 보기를 포기했는데 본 것이다
어느 마음 답답한 날, 펑펑 울기라도 하면 마음이 편안해지지 싶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난 평들이 한결같이
감동적이다,,,, 보면서 울었다,,, 등등
인간의 깊은 내면을 건드려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으로 일관되어 있기 때문에 보고 싶어졌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감동 받아 마구 울고 나면 답답한 속이 좀 뚫릴거야
일부러 좌석도 주변에 남들이 없는 곳으로 부탁해서 만반의 준비를 하고 관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앤딩 부분이 올라가도록
대체 어느 부분이 감동적이라는 건지
그래서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저 부아가 날 뿐이었다
죽은 소를 애도(?)하며 회상하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회상의 첫장면으로
수의사가 소의 입안과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상태를 점검한다
소 나이 40 넘으면 사람 나이 100살 넘은 것이라며 앞으로 1년 정도 살지 않을까 싶다 한다
이런 진단을 시작으로 소의 힘들고 고단한 삶은 이어진다
어느 날 일어나지 못하여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게 될 때까지,
그런 상태가 되어서야 머리와 몸을 잇는 코뚜레와 멍에의 굵은 줄을 낫으로 끊어준다
얼핏 들은 평중에 할아버지와 소의 우정이라 했는데,
내가 뭔가를 놓친 게 아니라면 그것은 아닌 듯하다
그저 보고 난 느낌은 인간의 이기적인 잔인성이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부분은
추석을 맞아 집에 다니러 온
일곱인가 아홉인가 헷갈린다 하여간 많은 자식들이
소 외양간 옆에서 밥을 먹으며 나누는 소리이다
자신들 학비 대준 고마움은 알지만 이제 그만 팔라 한다
그래야 아버지도 일 안 한다고,,,,
식물도 사람들 하는 말 알아듣고 성장에 영향이 있다는데 하물며 그 오랜 세월 동고동락한 소야 어떻겠는가 말이다
그래 자식들은 또 그렇다치자
할아버진 좀 달라야 할 것 아닌가
헌데 그 소, 팔겠다고 우시장에 데리고 나간다
백만원 주겠다는 사람이 있자 그 가격에 어림없다며 오백은 받아야 되겠다 한다
아마 오백 주는 사람 있으면 팔았지 싶다,,,, ㅎㅎ
(이 부분은 할아버지의 뜻이 아니었겠지 싶다 연출이었다면 왜 이 장면이 필요했는지 정말 궁금타)
감동을 받아 눈물이 난 게 아니라 부아가 치밀어서
소의 고단한 충직함이 가슴 아파서 눈물이 나려 했다
감정을 순화시키려 갔다가
거금(이런 경우 거금이다) 칠천원 날리고 승질 나고 괜히 봤다는 후회감만이 가득한 채 영화관을 나왔다
영화관 밖의 햇살은 눈부셨다
그 햇살 속을 천천히 걷노라니 다른 생각이 슬며시 든다
어쩜 사람들은 그 우직한 충성, 마지막 순간까지 주인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바치는 소에 감동한 것이 아닐까
자기는 타인에게 절대 그러한 사람이 되지 못하면서
그런 무언가가 자기에겐 존재했음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혹,,, 감독은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에서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
그래서 \'아낌없이 주는 소\'를 만든 게 아닐까
그런 쪽으로 방향을 틀자 이해 못할 것도 아니군 하는 생각이 든다
내 이런 생각,,, 너무 유별난가???
허나 이렇게 라도 해야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으니,,,,
뭐 꼭 이해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