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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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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너희들도 화이팅이다


BY 동해바다 2009-01-21




마른 흙냄새가 폴폴 풍긴다.
\'쏴아아아\'
그간 목말랐을 풀잎들, 흠뻑 물을 주었다. 물 머금은 흙에서 나무에서 풍겨나오는 배고픈 냄새들,
주인없음을 아는지 전등불조차 희미한 불빛아래 외투를 껴입은 채 수도꼭지에 감아놓은 호스 
풀어 작은 화단에 분분 마다 물배를 불려 주었다. 

참 오랫동안 나의 정성으로 잘도 커 왔던 화초들이었다.
나의 놀이터요 위안이며 삶의 윤활제 역할을 톡톡히 했던 초록식물들, 이제 누렇게 떡잎되어 빛 바랜 
색깔로 이 한 겨울 겨우 버텨나가고 있다.
산이면 산, 들이면 들, 보이는대로 흙이 좋으면 남편과 함께 열심히 퍼다 날라 부엽토 마사토 상토를 
적절히 섞어 정성스럽게 돌보고 가꿔나갔던, 내가 올인했던 초록정원이었는데 아무도 없는 빈집 안에서 
저들만의 속삭임으로 생명을 지켜나가고 있다.  

작은화분 앞에 쭈그리고 앉아 분수의 세기를 약하게 하고 살살 뿌려준다. 한달에 한번 정도 물을  주어도
잘 자라는 다육식물 벨루스가 제일 건강한 모습으로 그리고 제일 많은 화분으로 베란다를 장식하고 있다.
오월이면 화려한 꽃색으로 피어날 벨루스, 3,000원 하나로 몇십개를 분양했는지 지금도 10여개가 남아
오월을 기다리고 있다. 작년 6월, 분양해서 나누어 준 지인이 꽃 피었다며 서울에서 일하고 있는 내게 폰으로 
사진찍어 전송해 주었다. 정작 내집 벨루스는 봐주는 이 없이 홀로 피었다 지고 말았을 터였다.

 
 

새끼치고 분양하고 점점 불려나가던 화초들에 대한 미련을 남기지 않고 그 정 많이 떼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심야로, 또는 늦은 밤 도착하여 바삐 나의 휴일을 보내고 나면 솔직히 자세히 들여다 볼 여력조차 남아있지
않다보니 점점 관심도는 줄어들수밖에 없었다. 계절상 꽃의 휴면기이기에 더욱 더....
값비싼 화분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귀한 화초들도 아닌데 뭐그리 연연할까만 풀처럼 자라고 있는 잡란
하나라도 20여년을 함께 했고 화분하나 하나마다 탄생과 성장의 이야기가 담아있다.

노란 허브꽃 일색이던 란타나가 내키보다 더 크게 자라 진한 향을 베란다 그득 꾸민 적도 있었고

 

꽃잔디 바람타고 집안으로 들어와 코를 벌름거리고 나를 다시 밖으로 불러내던 날들....

 

비오는 날이면 풀잎 끝에 매달린 빗방울을 카메라에 담으려 이리재고 저리재던 나의 코믹스런 움직임들..

 
 

이런 모든 것들이 생활근거지를 서울로 옮기면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하루 이틀도 아닌 많은 날을 지인에게 맡겨 두는 것도 예삿일이 아님을 알기에  종국엔 내가 포기하는 것만이
내 마음을 편하게 만드는 일이라 여기고 일에 몰두하였다.

내 정성을 거둔 지 7개월~~
어젯 밤 이곳 삼척에 도착하여 그래도 살아남은 화초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굶주려 죽을 것 같았던 푸른식물들의 생명력은 강했다. 
마삭은 마삭대로 줄기뻗어 자라는듯 보였고 비실대던 가랑코에도 이 겨울 꽃망울을 머금고 있다.
앙증맞은 보랏빛종이 수없이  매달려 있는 무스카리는 생명력이 강해 기대를 버리지 않았고 
버베나 파라솔도 볼품없이 죽어가는 듯 보여 싹둑 잘라준 것이 좀더 튼실한 가지로 거듭나 새록새록
푸른 잎을 내보내고 있었다.

 

내가 없으면 없는대로 자라주고 있는 고마움, 듬뿍 물을 줌으로 그 고마움을 대신한다.

윤기나는 초록으로의 거듭남이 무리인줄 알면서도 떼어버렸던 미련이 스멀스멀 장난걸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돼\' 호되게 나를 다잡으면서 나는 내일 아침 서울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그래도 잘 자라 주거라.....
** 작년에 찍어 둔 사진들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