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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력범죄와 아동 성범죄자들의 처벌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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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412


BY 菁 2009-01-20

한동안 선을 안 봤다.

그 아이한테 질려서,  까스만 사람을 질식 시키는 것이 아니다.

때론, 사람이 사람한테 유해 까스가 돼더라는.

얄상한 턱선과 고상한 눈매로, 나를 봐줘도, 하나도 달갑지 않었다.

둬번이던, 서너번이던,  더 만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슬슬 운전대를 돌려가며,  어떤 커피숍을 가리키며,  에스프레소 커피가 기가 막힌다고 했던 아이.

기막히는 커피는 됐고,  달큰한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마치, 제가 오빠라도 되는 냥 굴었다.

그럴수록 더 아이처럼 보였다.

만나보면 볼 수록 아이처럼 보였고,  내가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아서, 피곤하기부터 했다.

어느날, 심각하게  털어놨지.

\"  내가 동생이 많아서 그런가?  자꾸 동생으로 보여서...  난, 결혼을 해야 하겠는데...  \"

\"  나랑 결혼하면 돼지.  \"

쉽기도 하다.

동생하고 결혼하는 누나 봤냐?   누나하고 결혼하고 싶냐?

말을 못 알아 듣는 아이에게 짜증이 났다.

\"  그만 만났으면 해요.  \"

\"  아니...  더 만나봐도 될텐데...  \"

그 아이는,  그야말로 곱게 자랐는지 손가락이 피아노 건반위에 놓이거나,

하얀종이 위에 스륵스륵 그림이나 그릴 손처럼 보였다.

절대로,  내가 힘들때 나를 대신해서, 못을 박거나,  전선을 주물럭 거릴 순 없는 손였다.

그 아이가 기가 막힌다고 말하던, 커피를 혼자 가서 마셔봤다.

모르겠더라.   향은 좋은데, 기가 막히는 맛은 모르겠더라.

그런 차이는 내게 감당하기 어려운 차이였다.

그 아이가 기막 힌 커피맛에 빠져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나는 못을 박아야 할 것이고,

그 아이가 음악을 듣는 동안에도 나는, 형광등을 갈테지 싶었으니깐.

딱 끊기가 어려웠다.

전화가 열심히 왔다.

핸드폰이 있었다면, 핸드폰을 죽여 버리고 싶을 만큼.

회사로까지 전화가 왔는데,  나중엔  퇴사를 했다고... 그러라고 거짓말까지 해야 했다.

싫다는데!   대한민국에서 싫다는데!   그만 좀 하지!

나중엔 전화벨만 울리면, 공포영화에 나오는 인형이 떠올랐다.

처키라고...  그 인형이 생각나서 몸서릴 쳤었다.

끝이 없진 않더라.

싫다는데 어쩌겠나?  전화는 오지 않았고,  내가 없다는 나의 거짓말도 끝났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한 선은 다시는 보기 싫어졌다.

그리해서,

엄마는, 선보라고 하면, 선을 보고 오면, 인상이 짜그러드는, 나한테 지쳤고,

나는, 충분히 독립 해 나가서 살아도 될 자식이 쌀을 축내며 비비고 있다는 기분이 들때마다,

비참하게 상한 맘이 들 정도로 집과 멀어져 있었다.   지쳐도 있었고.

그러던 어느날 선을 보게 됐다.

뭐, 이젠 설레임은 커녕,  엉터리로 나가서, 다시는 중매한다고 나서고 싶은 사람이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두 건이 겹쳐 있다는 엄마의 말에 화도 안 났다.

까짓 두 건이면 어떻고, 열두 건이면 어떠랴?

그냥, 맥없이 앉아 있다가,

\"연봉이 한... 1억은 돼시죠?  아파트는, 37평 이시구요?  \"

다양한 헛소리나 푹푹 하다가, 오면 그만이다 싶었다.

그러면,  다시는 선은 안 봐도 될테지 싶었으니까.

머리카락은, 만족스러웠다.    엉클어지고, 뻗고, 가수 전인권처럼...이 보다 좋을 수 없었다.

코트 속엔 티셔츠를 입고, 화장은 왜 하나?   지겨워 죽겠는데.

그러고, 선보러 가는 딸에게 엄마는,  좋은 말을 안 했었다.

엄마들이 흔히 잘 하는 말을 했던 것 같다.

\"  년아!  네, 맘대로 해라!  너같은 딸년, 꼭! 낳아서 키워봐라!  \"

그 웬수스런 뒷모습을 다급하게 남기려고 하다보니,

안경을 두고 왔다.

물론, 콘텍트 렌즈를 끼고, 눈화장까지 했었지만, 미쳤다고 그 고생을 선보자고 할까?

한 남자가 뚜레뚜레 들어 오는데, 보여야지.

일어서서 고개를 갸웃거리니 다가 오더라만은.

이런저런 뻔한 대화는 오고 갔다 만은...  또, 볼일 없을 것이지 싶었다.

전화를 한다고 했지만, 하시든 마시든 였다.

훗날 남편은, 내가 자신한테 홀딱 반한 나머지, 벌떡 일어서서 눈을 휘둥그레 떳다나?

남편들은, 제 멋대로 만족 하는 것을 즐기나 보다.

두 건이 겹치니, 연예인이라도 된 듯 급하게 뛰어야 했다.

그래야, 커피라도 한잔 더 마시지.  싶은 야비한 마음까지 품고서.

재수가 좋으면, 저녁이라도 얻어 먹을 수 있겠지만,  전인권같은 머리카락으론 어림도 없다는, 예감에

웃기까지 하면서, 거의 반쯤 미쳤었나 보다. 선이 지겨워서...

두번째 장소로 가니, 계약 위반한 연예인처럼 당해야 했다.

시간이 얼만큼 지난지 알기나 하냐면서, 커피값을 치르라나?

대식구가 몰려 와서는...  선 보려던 남자는, 누군지도 모를 상황에서, 커피값을 운운하는데,

역해서, 벌떡 일어서서, 머슴처럼 꾸벅 인사하고, 나오면서 커피값을 다 갑아줬다.

그렇다고 가면 어쩌냐는 말들도 무시 하면서, 이쯤 했으면, 다시는 누굴 소개한다고 나서진 않겠지 싶어,

속이 다 후련했다.

엄마는, 어떻더냐고 물었다.

어떻기는...  전쟁였지.

그러곤 두번 자고,  전화가 왔다.

그러곤 두번 다시 선을 안 봐도 될듯 싶은 안정감이 느껴졌다.

그러곤 두달쯤 지나서 결혼을 했다.

그러곤 두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다.

그러곤 두달에 한번씩... 떠올려 본다.

그땐 터널였던 순간들을...

그땐 내가 터널밖의 빛처럼 환해서 바라보고 싶어지는 사람였는데...

그땐 그 색깔이 잘  어울렸고, 거침없이 걸쳤는데...

 

지금은 그냥 떠올릴 뿐이다.

남편이 바쁘면, 세탁기 밑에 거울을 넣고, 기어이 고쳐 쓰면서, 깨닫는다.

내가 이럴 줄 알고... 영악한 늑대들이 나를 잡으려 애를 썼던 거구나...

난,  내가  잘난 줄 알았단다.

늑대들아!

어찌됐건, 수고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