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래기국을 끓였습니다.
김을 굽고, 김장김치를 꼭지만 자르고 큰 접시에 담고,
시원한 동치미를 한 공기 담았습니다.
옛날, 47,8여년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릴 때, 궁핍한 살림살이에 엄마는 겨울이면 시래국을 많이 끓였던것 같아요.
위로 오빠가 셋, 언니가 둘, 그리고 막내인 나. 엄마.
아버지는 2살때 돌아가셨죠.
7식구가 둥근 상에 빙 둘러앉아 겨울, 저녁밥을 먹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따뜻한 겨울 저녁이었습니다.
엄마는 한 장도 없이
김을 구워 우리들에게 두 장씩 나누어 주죠.
숟가락이 차가워 거꾸로 국그릇에 담가 따뜻해지면
옷에 쓱쓱 닦아 밥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김을 왜 안 먹는지도 모르면서........
김을 손으로 잘라 상밑에 숨겨두고 따끈한 밥위에 김치를 올리고
김을 덮어 입이 미어져라 먹었었죠.
목이 메이면 시래기국을 후후 떠먹으며 남의 김이 얼마나 남았는지
서로 눈치를 봅니다.
둘째 오빠가 조금 유별나서 자기 김을 게눈 감추듯이 다먹고 항상 내 김을 뺏아 먹었죠.
연년생인 세째오빠가 내 편을 드는 바람에 밥상에서 다툼이 일어나고...
큰언니 보다 야무진 작은 언니가 군기를 잡으면 금새 또 조용해 지곤 했답니다.
얼음이 둥둥 떠있는 동치미국물을 이가 시려도 후루룩 마시며 무를 아삭아삭
베어 먹던 그 시절.
그립습니다.
남편과 둘이서 그 옛날을 회상하며 따끈한 밥위에 김치를 얹고 김을 싸서
한입가득 우물거리며 시래국을 떠 먹었는데 엄마가 끓여주었던
그 시래기국 맛이 아니었습니다. 그때는 참 구수했었던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큰언니는 지금은 씨래기국을 절대로 안 먹는다네요.
질리도록 먹어서래요.
나는 가끔씩 시래기국을 먹고싶어 하는걸 보니
시래기국을 질리도록 먹지는 않았나 봅니다.
아, 우리 아들,딸도 오랜 세월뒤에 엄마가 해주었던 음식을 그리워 하는
\'유년의 따뜻한 기억\'이 있어야 할텐데... 딱히 맛있게 해주었던 음식이 생각나지않는군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저녁밥을 먹던 그 식구들은 다 어디로 갔을 까요.
큰언니, 오빠, 나만 남았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둘째오빠, 세째오빠. 작은 언니, 다 돌아가셨습니다.
올케와의 사이가 서먹해지는 바람에 한 명있는 오빠마저 왕래가 뜸하다보니
엄마같은 큰언니만 가끔씩 전화도 하고 우리집에 다녀갑니다.
그 옛날의 따뜻했던 겨울이 그리워지는 저녁나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