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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속의 집에서 늘 같이 사는 사람은


BY 이예향 2008-12-30

                                      내 가슴속의 집에서 늘 같이 사는 사람은

                                                                                                                                 이 예향

오늘도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나라로 먼 옛날에 가버린 나의 보배로운 사랑의 4명의 얼굴을 잊지를 않고 부르고 있지
한창 젊음의 불꽃을 피우는 나이인 스물 여섯이라는 청춘의 청년에 부모님과 이 동생들 4 명만을 이 땅에 남겨두고 천국에 일찍 간 헌원 오빠와 이 내 뱃속에서 열 달 있다가 세상에 얼굴을 내민지 3년 2달 십여일만에 세상 안녕을 한 딸 정은과 장애인 모임을 통해 만난 조인식 장로님과 나보다 한 살 더 먹은 서 순자 집사님 이 4명의 사랑하는 이들은 지금은 모두 다 영원한 나라 천국에 가고 이 땅에는 없지만 나는 늘 잊지 않고 오늘도 이 내 작은 가슴의 집에서만은 나와 늘 같이 살고 있는 나의 보배로운 사랑의 얼굴들이지

잊지를 못하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첫 번째의 사람은 스무 여섯 살에 세상을 일찍 떠난 헌원 나의 친오빠인데 오빠는 살아생전에 부모님께 불효라는 모습은 이 동생의 기억으로는 한번도 없이 어린이 때부터 학교 다닐 때도 고등학교 졸업을 한 후에 군 입대까지는 오빠 자신의 힘 닫는 데까지 부모님 일손을 거들며 이 동생들을 돌봐주다가 나라의 부름을 받아 군 입대를 해 3년간 군인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와서는 곧 바로 인천으로 가서 약 몇 달 동안 독학으로 공부를 해 은행공무원으로 처음으로 직장생활을 하기 시작을 했는데 아주 참 모범생으로 맡겨진 일에 충실히 힘을 다해 근무를 해 은행원이 된지 몇 달도 안 돼 오빠가 일하는 부서에서 주임으로 승진까지 하며 있는 힘을 다해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러나 오빠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다닌 직장생활은 만으로 일 년을 한 달 앞둔 1982년 10월 16일 새벽 한시가 넘어 오빠는 부모님과 우리 온 식구들은 비운의 비보를 알려주었지
그 당시엔 우리 마을은 전화가설이 안된 상태라 편지로나 연락을 주고받던 때였는데 1982년 10월 15일 밤에 부모님과 우리 동생들은 모두 꿈나라에서 살고 있는데 1982년 10월 16일 새벽 1시가 넘어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에 문을 열어보니 우체부 아저씨인지 누군지는 모르는 사람이 전보가 왔다해 내용을 받아 읽어보니 그 전보의 내용은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큰 힘을 복돋아 주던 부모님께는 큰 아들이 우리 동생들에게는 오빠 형이 매우 위독하다는 비보였는데 급보를 받아 보신 부모님은 한 밤중에 오빠가 있는 인천으로 급히 달려가셨으나 오빠는 이미 전날 밤 11시 넘어 부모님과 동생들을 비롯 가족들에게 세상살이 마지막 안녕의 인사도 못하고 구름을 타고 천국으로 가버렸다는 것이었지
효자 상을 몇 번이고 받았을 큰 아들을 잃은 부모님은 큰 아들의 시신만을 가지고 고향 땅으로 데려와 집에서 장례를 치루고 오빠를 산으로 데려가 땅에 묻고 지금까지도 늙으신 아빠께서는 해마다 가을 추석 때가 되면 헌원 오빠의 무덤에 가셔서 아들 헌원아 이 아비가 너의 더러운 것을 다 씻어낸다 하시며 무덤 주위에 있는 더러운 풀을 낫으로 깎아 내는 사초 일을 지금까지도 하고 계신 나의 아빠시지

잊지를 못하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두 번째의 사람은 내 여식인데 이 불편한 손발을 가진 내가 아이를 어떻게 낳아서 잘 기를까 하며 결혼을 한지 1년 두 달 후에 딸아이를 낳았는데 임신을 하고 있을 때는 엄마는 소아마비 아빠는 뇌성마비를 가진 부모인데 이런 엄마 아빠 모두가 장애 몸이라서 혹시나 이 부모의 장애 체구를 닮아서 아이가 태어나지 않을까하고 마음으로는 걱정을 하면서 부디 사지가 정상으로 건강한 아이로 세상에 나오길 기도하며 열 달동안 내 뱃속에서 키우다가 아이는 1989년 11월에 예쁘고 건전한 몸으로 세상에 얼굴을 내보여 많은 분들의 사랑을 받으며 첫 돌을 잘 보내고 두 번째 돌을 3일을 앞두기까지는 감기병도 오는 둥 마는 둥 하며 아이는 그리 심하게 큰 아픔이 없이 엄마 아멘 등의 말을 해대며 마을 사람들이나 외가나 교회 등 외출해서 사람들을 만나면 낯가림이 없이 품에 안기기도 잘하고 빠이빠이로 안녕의 인사를 사람들이 하면 애도 손으로 빠이빠이로 인사 등도 하며 재롱도 귀엽게 잘 부리며 하루하루를 잘 커오던 아이였는데 아이는 자신의 두 번째 생일을 3일 앞두고서는 전날까지는 밥도 잘 먹고 잘 놀다가 밤이 되어 이 엄마의 자장가 노래 소리를 들어가며 고요한 꿈나라로 갔는데 다음 날 아침 8시가 돼도 안 깨기에 어린 애니 늦잠을 자는가 보다하고 이 엄마 아빠는 태평하게 아이가 깨길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이는 아침 10시가 다 되어가도 안 일어나고 있었는데 그 당시 우리 집은 시골 산골 마을에서 구멍가게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기에 동네 아줌마가 물건을 사러 우리 집에 오시더니 아이는 어디 있냐 하시기에 애는 아직까지 자고 있다니까 그 아줌마는 자고 있는 아이를 보더니 자고 있는 게 아니라 자는 경기병에 걸린 거라 해 지금은 119응급차가 있었지만 그 당시엔 구급차가 없어 이 어미 아비의 장애 몸으로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도 못가 남의 손을 빌려 이웃 마을의 침쟁이에게로 가서 침을 맞아 봐도 아이는 안 깨어나 논산 백제 병원과 대전 충남대학 큰 병원으로 옮겨가서 8달 동안 입원을 해 숨을 쉬는 호흡수술 3번 등등을 하며 온 힘을 다해 애가 깨어나길 많은 분들의 기도와 병원 의사들이 치료를 해도 애는 영영 못 깨어나고 세상살이를 3년 2달 만에 구름을 타고 예수님 나라로 간 나의 딸 정은 아이인데 아이의 장례는 교회서 치루고 아이를 묻는 무덤을 이 엄마 아빠는 못 가게 해 아이와는 교회서 마지막으로 세상 인사를 하고 아이가 세상을 떠난지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이의 무덤이 어딘지 몰라 한번도 가보지도 못하고 있는데 애가 살았을 때 이 엄마의 젖꼭지 한번도 못 물어보고 우유로 먹고 모성애도 모르고 자라오다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마친 딸인데 그 모두가 역부족한 이 엄마가 일찍 딸을 죽게 한 것이지

잊지를 못하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세 번째의 사람은 조인식 장로님인데 충남 부여에는 1980년대 어느 해인가에 신앙적인 모임으로 사랑의 울타리라는 장애인 신우회 모임이 창설이 됐지
지금은 사랑의 울타리가 충남 장애인 밀알회로 바뀌었지만 1980년대에 당시에 만들어진 사랑의 울타리 장애인 신우회는 장애의 체구를 가진 이들은 정회원이고 정상의 몸을 가진 이들은 후원회원으로 회원가입이 되었는데 그 중에 전북 김제에 사시는 조인식 이라는 교회 장로님 한분이 후원 회원으로 계셨는데 그 조인식 장로님은 우리 많은 장애우들에게 친 아빠처럼 어떤 때는 친 아빠보다 더 아주 우리들을 사랑으로 물질 등등으로 감싸주시는 분으로 나는 그 조인식 장로님을 내 마음으로는 나의 양 아빠로 부르며 만날 때마다 사랑의 품안에 안기곤 하기도 했었고 내가 결혼을 할 땐 나의 친부모님은 너보다 더 심한 장애 몸을 가진 사람하고 왜 고생을 사서 살아가려고 혼인을 하려느냐며 결혼을 극구 반대를 하셨지만 나는 내 고집대로 부모님과 가족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뇌성마비 장애인과 결혼을 하게 됐는데 내가 결혼식을 올릴 때 결혼 못하게 하신 내 친부모님도 동생들도 내 일가친척들은 한사람도 없이 나는 외롭게 예식을 올려야 했는데 여자 신부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아빠 손을 잡고 입장을 해야 되는데 나의 친 아빠가 안 오시어 내 맘으로는 양 아빠로 의지하고 만나고 있는 조인식 장로님의 손을 잡고 입장을 한다니까 내 맘으로 모시고 있는 양 아빠이신 조인식 장로님은 쾌히 내 의향을 들어주셔서 신부 입장을 할 때 나의 친 아빠의 손을 대신해 양 아빠의 손을 잡고 나는 신부입장을 해 예식을 올리고 결혼 생활을 하기 시작을 했고 조인식 양 아빠는 내 결혼을 한 후에도 계속적으로 후원 도우미 사랑의 보호사로 살아가시다가 몇 년 전에 주님나라로 가신 너무도 보고프고 그리운 조인식 나의 양 아빠

잊지를 못하고 있는 나의 사랑하는 네 번째의 사람은 서 순자 여성 집사님인데 1980년대 창설된 사랑의 울타리 장애인 신우회에서 나와 같이 정회원이던 내 나이보다 한 살을 더 먹은 척추장애 몸을 가진 서 순자 집사님으로 나는 친언니가 없어 언니가 있는 친구들이 많이 부러워하고 있었는데 비록 아무런 핏줄은 아니어도 그 서 순자 집사님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고 순진한 사람으로 사랑의 울타리를 통해 나는 그 서 순자 집사를 처음 만나서 내 마음의 고통을 서 순자 집사님에게 하소연을 토해내면 서 순자 집사님은 주님께 기도하며 아픔을 잘 이겨내고 살으라고 미소 띈 말로 내 맘을 달래어주곤 하던 서 순자 집사님이었는데 그 서 순자 집사님은 지금까지 살아도 50대 초기의 젊은 나인데도 불구하고 서른 살 초기의 한참 젊은 인생의 나이로 하나님께서는 서 순자 집사님의 힘든 세상살이를 그만 마치게 하시고 하나님 품안으로 일찍 데려가시는 관계로 아직까지는 서 순자 집사님의 순한 남편과 착한 아들은 믿음 안에서 나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

이 사랑하는 4명의 사람 호칭을 내가 만들어 부르기도 하는데 조인식 장로님을 “경애하는 아빠”, 헌원 오빠를 “최고멋쟁이 오빠”, 서 순자 집사님을 “행복만끽 언니”, 딸 정은이를 “예쁜 복덩이” 라고 네 사람의 닉네임을 만들어 매일 부르기도 하며 마음으로 만나고 있지
오늘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이 내 가슴에서만은 늘 살고 있는 최고멋쟁이 헌원 오빠와 예쁜복덩이 딸 정은과 경애하는 아빠 조인식 장로님과 행복만끽 언니 서 순자 집사님 이 네 사람과 나는 매일 아침마다도 낮에도 밤에도 하늘을 바라보며 매일 아침에는 간밤은 잘 지냈고 오늘도 즐거이 살아가자고 아침인사를 하고 있고, 낮에는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좋게 잘 되어 승리로 잘 살게 해달라고 낮에도 하늘을 쳐다보며 인사를 나누곤 하고 있고, 밤이 되어서는 오늘도 무사고로 보호해 줌에 감사하고 강건함으로 기쁨으로 내일을 맞게 해달라고 하늘을 바라보며 잊지 못하는 4명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음으로 매일의 만남을 나는 하고 있는데 잊질 못하는 4명의 사람과의 대화의 시작은 매일 새벽 4시에 잠자리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교회로 가서 찬양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아바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4명의 사랑하는 얼굴들과 인사를 나누기를 하고 있지

잊지 못하는 4명의 보배롭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의 통화 시작을 하길 제일 먼저 세상 하직을 한 나의 친 핏줄인 최고 멋쟁이 헌원 오빠와의 만남으로 시작을 하는데 하늘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나의 최고 멋쟁이 헌원 오빠여 이 동생과 고향에 계신 아빠 엄마와 다른 동생들과 온 식구들에게 큰 아픔 없이 우리 자식들만을 위해 일평생을 고생해 오신 엄마 아빠께 무병장수하시게 해주고 나와 다른 동생들도 큰 고난이 없이 엄마 아빠 잘 모시며 아빠 엄마와 오래토록 늘 같이 살게 모든 면이 어려움이 없는 복을 내려달라고 최고 멋쟁이 헌원 오빠를 부르고 있고, 나의 예쁜 복덩이 딸 정은아 이 하늘아래에서 너 없이 살고 있는 이 엄마 아빠한테 정은 네가 없다고 술퍼만 하는 삶은 안하고 이 아빠 엄마가 큰 고생이 없이 부자로 잘 사는 이 엄마 아빠가 되게 해달라고 너무도 보고픈 딸 정은아 사랑한다하고 나의 예쁜 복덩이 딸 정은을 부르고 있고, 아 이 내 맘으로는 양 아빠로 모시고 있는 경애하는 아빠 조인식 장로님이시여 이 땅에서 사실 땐 정말로 온갖 힘과 정성을 다해 주님 나라에 가시기 전까지도 저를 위해 많은 우리 장애인들을 비롯해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심과 기도해주신 은혜 저는 영영 안 잊고 조인식 장로님이 아닌 나의 경애하는 아빠 장로님이라고 부르는 수양딸로 살고 있사오니 경애하는 아빠 장로님이시여 우리 다시 만나는 그 날까지 우리 예수 안에서 영원한 한 식구로 영영 살수가 있는 내 맘속에서 늘 영원히 같이 사는 아빠 장로님이 되어주세요 하고 조인식 장로님을 경애하는 아빠 장로님이라고 부르고 있고, 나를 친동생처럼 아낌없는 내 마음의 간호사가 되어준 서 순자 집사님 아니 그냥 집사님으로 부르기는 거북하니 언니 집사라고 부를께요 하며 행복만끽 순자 언니 집사님이여 천국 그 곳에서 내가 경애하는 아빠 조인식 장로님과 예쁜 복덩이 내 딸 정은이 하고 잘 있으리라 믿어지고요 나와는 비록 세상적으로는 한 자매가 못 되어도 언니 집사님이 이승에서 있을 때 나의 맘을 잘 이해 해주고 돌봐준 그 사랑은 안 잊고 늘 감사히 살고 있느니만큼 언니 집사님이 이 땅에 살았을 때 내가 잘못한 나의 약점 다 잊어주고 나의 장점만을 기억해 주길 바라며 언니 집사님이 선물로 남기고간 순둥이 원표는 언니 집사님의 기도속에 자기 아빠의 보호속에 잘 자라나서 홍순광 아빠와 잘 살아가고 있지요
행복 만끽 순자 언니 집사님이여 나도 언니 집사님처럼 많은 이에게 사랑을 베풀며 남은 세상 살고픈 맘이 간절하나 언니 집사님이 세상에 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나는 받기만 하고 있는데 이제부터는 이 가난을 벗고 모든 면이 부유해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사는 내가 되게 해 주오
행복 만끽 순자 언니 집사님이여 너무도 보고프오 하고 서순자 집사님을 교회 집사님이 아닌 행복 만끽 순자 언니 집사님이라고 매일 하늘을 쳐다보며 부르고 있지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늘 잊지를 못하고 있는 조인식아빠, 헌원오빠, 순자언니, 딸 정은 이4명의 애인들이 이 세상에서 나와 같이 살았을 때의 그 모습을 늘 그리며 사랑하는 최고 멋쟁이 헌원 오빠와 예쁜 복덩이 딸 정은과 경애하는 아빠 조인식 장로님과 행복만끽 언니 서 순자 집사님과 비록 몸은 하늘과 땅으로 헤어져 살고는 있지만 이 내 가슴과 눈으로는 항상 그려가며 매일 만나는 그들과 오늘도 나는 눈을 들어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보고픈 나의 경애하는 조인식 아빠 장로님이시여 나의 최고의 멋쟁이 헌원 오빠여 나의 행복 만끽 언니 순자 집사님이여 나의 예쁜 복덩이 딸 정은아 하며 4명의 이름을 불러가며 먼 훗날 우리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그 곳 천국에서도 이 땅에서도 우리 모두 다 같이 행복을 누리며 평안히 살아가요 하며 매일 만남을 마음으로 늘 하고 있고 이 내 가슴에 항상 같이 사는 최고 멋쟁이 헌원 오빠와 예쁜 복덩이 딸 정은과 경애하는 아빠 조인식 장로님과 행복 만끽 언니 서 순자 집사님 4명은 늘 내게로 와서 경애하는 아빠 조인식 장로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에겐 안 됨도 못함도 없이 다 잘하고 잘되니 정력을 다해 도전하라시며 내 등을 두들겨 주시며, 나의 최고의 멋쟁이 헌원 오빠는 내 동생 너는 모든 걸 꼭 다 잘 할거야 하며 내 두 손을 꼭 잡아주며, 나의 행복 만끽 언니 순자 집사님은 굳센 믿음만을 가지고 하면 다 잘 될거야 하며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나의 예쁜 복덩이 딸 정은이가는 엄마 힘을 내 하세요 엄마의 딸 나 정은이가 있잖아요 하며 이 엄마의 입슬에 뽀뽀를 해주는 등 내 가슴의 집에서 이 나의 소중한 4명의 사람들 하고는 내 마음으로 행복과 웃음으로 오늘도 천국과 이승을 오가며 만나고 있는 늘 언제나 같이 사는 4명의 사랑하는 얼굴들은 나의 보배로운 영원한 생명의 한 울타리 식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