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수기-12 식당이 문을 열다.
드디어 식당이 문을 열었다.
아들과의 약속이 난 정원관리를 아들은 식당관리를 맡기로 했었다.
메뉴를 만들고 음식 만들기만 일하는 사람들에게 가르쳐주면 된다기에 그렇게 하려고 햐였다.
사실 아들이 모든 일을 맡아서 하였고 남편이나 난 그저 꽃밭 만드는 일에만 신경을 써왔었다.
건강에 좋은 음식을 저렴한 값에 빠르게 제공한다가 우리가 내세운 영업전략이었다.
그러기위해 맥도널드처럼 주문을 먼저 받고 일회용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는 방법을 택했다.
전화로 주문을 받아 배달을 해주는 것도 하기로 하였다.
빠른 서비스를 위해 미리 조리된 음식을 따뜻하게 보관하였다 주문과 동시에 그릇 하나에 담아내기만 하면 되도록 하였다.
그러기위해 주로 찜요리가 많았다.
갈비찜, 돼지갈비찜, 닭찜…카레..등.
건강한 음식은 질도 중요하지만 양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일인분의 양이 많지 않도록 하였다.
양이 큰 사람을 위해 식전이나 식후에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메뉴도 있었다.
미처 예상치 못했던 문제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찜요리는 시간이 지나면 고기가 퍽퍽해졌다.
고기와 같이 들어간 야채는 너무 물켜져 모양도 예쁘지 않았다.
일회용 그릇에 담아주는 것은 비용 부담이 크고 손님들도 자원을 낭비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많았다.
처음이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손님 수에 비해 종업원 수가 많으니 인건비가 부담스러웠다.
많은 양의 찜요리를 배달할 그릇을 찾아내는 일도 실패하였다.
경험이 없어 종업원 관리도 문제가 많았다.
……
그 외에도 수없이 많은 문제에 부딪쳤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누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가가 불분명했다.
아들은 자신에게 나는 내게 주도권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아들이 식당관리를 나는 정원관리를 맡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아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 동의할 수 없었고 우리 가정의 생계가 걸린 문제여서 맡겨두고 지켜보기엔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 없었다.
내가 나서 상관하기 시작했다.
성미 급한 남편도 한 몫을 했다.
식당이 문을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실패한 것이라고 날마다 화를 내고 있었다.
종업원이 보거나 말거나 손님이 있거나 말거나 화를 내었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소위 전문가들을 동원하여 건강에 좋은 음식을 누가 먹느냐… 주방장 없는 식당이 어디있느냐…메뉴가 그리 간단해서 장사가 되겠느냐…등등 날 비웃었다.
가족의 불화를 일하는 사람들은 교묘하게 이용한다.
아들이 보이지 않으면 식탁에 엎드려 잠자는 사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