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의 나는 눈물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슬픈 영화를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핑 도는 적도 있긴 했지만
책을 보며 눈물을 쏟았다던가, 슬픈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흘렸다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스물에 만난 첫사랑과 5년만에 이별을 하게 되었을 때도 난 울지 않았다.
\'깔끔하게 정리하자, 비틀거리는 모습을 보이지 말자\' 이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는지, 그렇게까지 냉정과 이성을 가장했었어야 했는지
오히려 안쓰럽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 정도로 감정 절제에 집착하는 스타일이었다.
첫사랑이었던 남자와 헤어질 때, 예기치 못했던 운명의 장난질에 휘둘려 아직 미숙하고 여린 우리의 감성이 현실을 극복해내지 못하고 헤어질 수밖에 없었을 때, 그 사람이 내 친구에게 전화해서 했다는 말.
\'XX씨, **를 잘 부탁합니다. 강한 척하지만 약한 애라는 거, 아시죠..\'
그가 내 친구에게 결별을 알렸다는 사실보다, 나를 강하지 않은 약한 사람이라고 얘기했다는 게 더 놀라웠었다.
내가? 내가 약한 사람이라고?
한번도 의심해 본 적 없는 나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 순간이었다.
스물 여덟에 결혼을 하고, 결혼 초에는 서로를 조율하느라 많이 삐꺽거리기도 했다.
남편도 나도 자아가 강한 사람들이라 한번 부딪히면 상당히 강도 있게 갈등이 조성되었었다.
그러나 아무리 부부싸움을 해도 난 한번도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눈물이 여자의 무기라는 말도 있는데 한번도 내 무기는 세상 밖에 나와 본 적 없이 안에서 녹슬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내 눈물샘이 살짝 느슨해져 가는 게 느껴졌다.
TV나 책을 읽다가 느닷없이 눈물이 핑 도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곤 했다.
그래도, 그래도 나는 여전히 눈물이 별로 많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불과 두달 전까지도.
지금의 나는 평생 내가 흘렸던 눈물의 몇십배를 흘리고 있다.
하루에도 몇번씩 울컥 눈물이 쏟아져 감당이 안 된다.
아무도 없을 때는 그냥 나오는대로 눈물을 쏟아낸다. 침대에 엎어져 소리내어 통곡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편이 있거나 동생이 와 있을 때는 몰래 수습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이제쯤이면 마를 때가 된 것도 같은데 아직도 순간순간 복병처럼 나타나 나를 무너 트린다.
한참을 울고 난 뒤 얼굴을 씻어내고 거울을 보면 거울 속의 내가 너무 낯설다.
물기가 남아 있는 눈자위가, 얼굴 가득 덮여 있는 그늘이, 내가 아닌 타인처럼 느껴진다.
내가 이렇게까지 약한 사람이었나...내가 너무 싫고 화가 난다.
그러나 어쩌랴. 이것이 나인 것을. 당당하고 담대하게 시련과 마주 서지 못하고 그저 무너져 내려 좌절하고 울기만 하는 것이 내 참 모습인 것을....
이렇게 한 꺼번에 울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내게 눈물을 허락하지 않으셨던가....
매일 밤 잠자리에 누워서는 기도를 한다.
하나님, 내일은 더 이상 울지 않게 해 주세요. 정말이지 이젠 그만 울고 싶어요.
저, 힘내서 씩씩하게 이 파도를 넘게 해 주세요.
제발, 제발, 그만 울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