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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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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BY 바다새 2008-12-16

 

 

 

“나야!”

“네에? 누구세요?”

단박에 알아들을 것이라 믿었는데 아니었다.

“야! 나라니까.”

“누구지?......빨리 안 떠오르네.”

이쯤부터 내 목소리는 한 옥타브 높아지고 있었다.

“정말 모르겠어? 나란 말이야”

“아하! 너였구나. 미안, 오랜만이라서....”

 


 

하긴 근 이 년 만에 하는 통화였다.

친구 집엔 흔한 발신번호표시 서비스조차 되지 않는 전화기인가보다.

그래도 그렇지 어찌 내 목소리를 잊는단 말인가.

어느덧 이십년 지기가 되는 사이인걸.

목감기 앓고 있는 내 탓이겠지.

애꿎은 발신번호표시 안 되는 전화기 탓만 몇 분 동안 해댔다.

차마 사는 것이 힘겨웠노라 쏟아내지 않았다.

어렵게 마련한 아파트를 남편 사업자금으로 처분했다는 이야기도,

이사한 곳이 변두리 주택전세였던 기억도 까맣게 잊은 척 해주었다.

계절안부를 시작으로 아이들이야기만 했다.

 


 


벨소리만으로 전화기 건너편 사람을 짐작해 보던 몇 초간의 두근거림.

막연한 그리움이기도 했던 시절이 있었다.

 


남편과 나의 전화 첫 연결 음은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다.

휴대전화벨소리가 울리는 화면 속으로 번호와 익살스러운 표정의 사진이 먼저 떠오른다.

가뜩이나 애교 없는 나의 퉁명스런 대답이 건너간다.

“왜요?” 이거나 “응....어.....” 일 뿐이다.

 

발신자들의 저장된 번호가 미리 떠오르니 ‘여보세요?’라는 말조차 불필요하다.

상대를 먼저 알아차리고 재빠르게 용건으로 들어간다.

무엇이 그리 급한 걸까.

 


전화벨소리 저만치 있을 사람에 대한 기대로 머리 갸우뚱거리며,

수화기속 바리톤 남자음성에

가끔은 아스라한 첫사랑목소리 한번 떠올려볼 순간조차 허락되지 않는,

호기심이나 애틋함 따위는 애초에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매사 발등에 불 떨어져 헉헉대는 생활이다.

 


 

우리네 삶에는 덮개가 사라져버렸다.

망사라도 살포시 얹어두어 최소한의 거리를 두던 일마저 귀찮아지고 말았다.

전부 까발려져야하고 가까운 사이니 비밀조차 없어야한다며 상대를 채근한다.

적당한 거리와 간격 두고 각각의 사고를 존중함이 서로간의 관계를 결속시킬 텐데.

 


 

얘기가 거창해졌지만,

배려 섞인 궁금함이 있어서 아름다운 것들 또한 많았던 시절이

그립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발신자표시 되지 않는 전화에 ‘나야!’를 외쳤을 때,

거듭거듭 핏대 세운 목소리 알아차리지 못할 누군가에게도,

끝내 기다려주는 여유를 지닌 사람이 나였으면 한다.

  

 

군더더기 붙인 설명 없이 ‘나야!’라는 단 한마디만으로

나를 반겨 알아주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이 아닌 예전엔 참 많이도 했었는데.......,

 


이젠 나도 숱한 누군가의 ‘나야!’가 되어있으려나?

 

 

 


 

 


                                                             2008년 12월 16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