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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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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가 없던 결혼기념일


BY 꿈과같이 2008-12-15

 

 

집을 나설 때까지는 무심한 듯, 담담하게 거리로 나온다.

낯익은 거리, 아파트 앞의 상가와 도로들이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을만치 익숙한데

그 친근한 풍경들을 보며 갑자기 목울대가 울컥하며 눈물이 치솟는다.

세상은 이렇게 너무나 여전한데,

아무 것도 달라진 것 없이 똑같은 일상들을 살아가고들 있는데

나 혼자만 큰 구렁텅이로 떠밀려서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이 익숙한 풍경들 속에 이제 몇달 후면 내 모습은 아웃이 되어

어느 낯설고 초라한 곳에서 서성이고 있을 것이다.

울지 않기로, 더 이상은 울지 말기로,

담대하게 상황을 이겨 나가기로 다짐했었는데

복병처럼 눈물이 습격해와 나를 흔들어 놓고 만다.....

 

남편은 결혼 기념일이며 생일을 꼭 챙기는 사람이다.

결혼 초, 몇번 카드를 건넨 것이 전부인 나에 비해

그는 한 번도 결혼 기념일과 생일 카드를 잊은 적이 없다.

처음에는 꽃다발도 한아름 함께 안겨 주더니

어느 순간인가부터 슬그머니 꽃다발은 자취를 감췄지만

카드만큼은 한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비교적 다정다감한 성격인데다가 범생이 기질까지 살짝 얹혀진 관계로

그는 두가지 연례행사를 칼같이 지켰었다.

그랬던 그가 결혼해서 처음으로 올해 결혼 기념일 카드를 생략했다.

\'형부 글은 진솔하고 담백해서 사람 마음을 움직이게 한다\' 는 평을 듣던 남편의 카드.

솔직하고 , 구체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서 때로는 아이처럼 순진한 웃음을 유발시키곤 했었는데

올해는 그런 카드를 못 받았다.

남편을 그렇게 만든, 결혼 20주년에 맞은 파산.

좌절이라기엔 단어가 너무 작다.

절망이라고 하기에는 살아가야 할 날들이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순간순간 솟구쳐 오르는 눈물이 우리의 현재인 것이다.

 

결혼해서 20년.

17평 아파트의 전세에서 시작했었지만 겁나는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을 정도로 자신만만했었고 두려울 게 없었던 시절이었다.

낡은 포니 승용차는 에어컨이 없어서 여름이면 창을 열고 달려도

얼굴은 벌겋게 익고 온 몸이 뜨끈뜨끈 삶아져있곤 했었다.

그래도 젊음과 희망은 우리를 점령하지 못했었고

우린 갓 잡아올린 생선처럼 늘 싱싱한 비늘을 뽐내며 힘차게 펄떡거렸었다.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고, 여행을 다니고,,,

젊은 그들은 조금씩 나이를 먹어 갔지만 연륜에 맞게 우리는 성장했고

우리는 누구에게나 행복한 가정의 전형으로 인정되었다.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뉴욕여행을 갔을 때 찍은 사진이 액자에 담아져 있다.

유엔 빌딩 앞에서 지금보다 훨씬 젊은 남편과 나, 그리고 아직은 어린 딸 아이가 함빡 웃고 있다.

10년 전의 행복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기만 한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절대적 불행이 너무나 어이가 없다.

 

산이 높았던 만큼 골도 깊은 것은 당연한 이치라 생각하면서도

내가 치뤄내야 할 현실의 벽들이 너무나 생경하고 당혹스러워 주저 앉고만 싶다.

아니 어린애처럼 발버둥 치며 엉엉 울고만 싶다.

그러나 아무도 없을 때만 울 수 있는 자유가 허용된다.

나는 아이가 아닌 어른이므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되는 엄마이므로....

너무나 아프고, 고통스러운데 울음마저 꿀꺽꿀꺽 삼켜야 하는 것이 정말 힘이 든다.

이 터널이 언제쯤 끝이 날까.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더더욱 가슴이 죄어들어 온다.

무엇에라도 위로 받고 싶다.

너무나 슬프고, 너무나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