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시험 몇 점 맞을 거야?”
“백점!”
“몇 등 할 거야?”
“1등 할 거예요!”
어디서 들었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아들은 무의미하게 대답합니다.
엄마랑 눈 맞추는 연습이 조금은 부족한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삼학년 마무리 짓는 기말고사 날입니다.
가슴 벌렁거리며 등 떠밀어 보낸 학교에서 삼년을 버텨냈습니다.
입학식 그날이 어제 일만 같습니다.
장애아동을 겪어보지 않은 선생님으로부터 숱하게 매를 맞았지요.
체벌이면 해결될 줄 알았는지,
어느 날은 몽둥이로 엉덩이만 열다섯 대를 맞았다고 합니다.
밤마다 경기하듯 울어대는 아이를 보듬어 안으며,
과연 그대로 일반학교에 머물게 해야 하는지 갈등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봄날.
학교복도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창문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죠.
칠판 틀 꼭대기에 낯익은 실내화 한 켤레가 얹혀있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즉,
발장난치는 아들을 혼내주려고 실내화를 벗겨버렸다는 것입니다.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양말만 신고 내내 발이 시렸을 아들.
가슴이 미어져 내렸습니다.
그 후로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아들의 첫 학교생활은 극기훈련만 같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인지학습을 지도하시는 전문가선생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지요.
차라리 다른 학교로 옮기면 어떻겠느냐고.
그분은 차분히 설명하셨습니다.
“oo가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학교에 뜻을 두고 있는 oo의 후배들이 편해집니다.
어머니! 힘들겠지만 버텨주세요. 장애아들의 미래를 위해서요.”
내 아들 하나 건사하기에도 피가 마를 지경인데,
더 많은 장애아들을 위해 투사가 되어 달라는 군요.
나는 그렇게 강직한 어미가 되지 못합니다.
작은 상처에도 훌쩍이는 아니, 대성통곡을 일삼는 물러터진 아낙이건만.
장애인들의 인권보호를 외치며 청와대나 지방관청 앞에서 대담하게 시위를 할 줄도 모릅니다.
영화나 다큐프로그램에 나오는 누구네 엄마들처럼 마라톤이나 수영을 시킬 인내력도 없는 여자입니다.
그런 나에게,
아들과 함께 학교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라니.
고민 끝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담임선생님을 제 편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무조건 신뢰하고 감사히 여겼으며 학교일을 적극적으로 도왔지요.
일학년 2학기에 들어서면서 차츰 아들의 상태를 이해하는 선생님이 되어가더군요.
처음부터 작정하고 엄한 교수법을 적용하려 든 것은 아니겠지요.
장애아를 다뤄보지 않은 경험미숙에서 온 결과였다고 여겨집니다.
핑계 같으나 아들이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단 한 줄의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감상에 젖는 일도,
계절변화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등교 후 있어지는 시간적인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도,
전부 사치스러움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과연 일등을 하긴 합니다.
거꾸로 일등이지요.
우리 집은 일등 투성이랍니다.
딸아이는 앞에서 일등, 아들은 뒤에서 일등이지요.
발달장애1급.
이것이 아들의 또 다른 일등이름입니다.
대견스런 자식들은 일등만 잘 하는데,
저는 언제쯤 일등엄마가 될 런지요.
잠꼬대처럼 기말고사 일등 했다는 말을 중얼대다 잠든 아들을 바라봅니다.
꿈속에서도 시험지를 받아들고 있을지.
겨울밤은 깊어만 가는데,
못나빠진 어미는 잠이 오질 않고
독백으로 중얼대자니 얼빠진 여자 같을 것이고
그래서 뼈대도 없는 얘기만 중얼대다 갑니다.
님들, 편한 밤.........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