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1,205

1등 하겠다는데.....


BY 바다새 2008-12-13

 

“오늘 시험 몇 점 맞을 거야?”

“백점!”

“몇 등 할 거야?”

“1등 할 거예요!”

 


어디서 들었는지 허공을 바라보며 아들은 무의미하게 대답합니다.

엄마랑 눈 맞추는 연습이 조금은 부족한 모양입니다.

초등학교 삼학년 마무리 짓는 기말고사 날입니다.

가슴 벌렁거리며 등 떠밀어 보낸 학교에서 삼년을 버텨냈습니다.


 

입학식 그날이 어제 일만 같습니다.

장애아동을 겪어보지 않은 선생님으로부터 숱하게 매를 맞았지요.

체벌이면 해결될 줄 알았는지,

어느 날은 몽둥이로 엉덩이만 열다섯 대를 맞았다고 합니다.

밤마다 경기하듯 울어대는 아이를 보듬어 안으며,

과연 그대로 일반학교에 머물게 해야 하는지 갈등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꽃샘추위가 극성을 부리던 봄날.

학교복도에서 아이를 기다리다 창문으로 교실 안을 들여다보게 되었죠.

칠판 틀 꼭대기에 낯익은 실내화 한 켤레가 얹혀있더군요.

나중에 안 사실인즉,

발장난치는 아들을 혼내주려고 실내화를 벗겨버렸다는 것입니다.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양말만 신고 내내 발이 시렸을 아들.

가슴이 미어져 내렸습니다.

그 후로도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아들의 첫 학교생활은 극기훈련만 같았습니다.


 

포기하고 싶어졌습니다.

인지학습을 지도하시는 전문가선생님을 찾아가 자문을 구했지요.

차라리 다른 학교로 옮기면 어떻겠느냐고.

그분은 차분히 설명하셨습니다.

 

“oo가 견뎌내야 합니다. 그래야 일반학교에 뜻을 두고 있는 oo의 후배들이 편해집니다.

어머니! 힘들겠지만 버텨주세요. 장애아들의 미래를 위해서요.”

내 아들 하나 건사하기에도 피가 마를 지경인데,

더 많은 장애아들을 위해 투사가 되어 달라는 군요.


 

나는 그렇게 강직한 어미가 되지 못합니다.

작은 상처에도 훌쩍이는 아니, 대성통곡을 일삼는 물러터진 아낙이건만.


장애인들의 인권보호를 외치며 청와대나 지방관청 앞에서 대담하게 시위를 할 줄도 모릅니다.

영화나 다큐프로그램에 나오는 누구네 엄마들처럼 마라톤이나 수영을 시킬 인내력도 없는 여자입니다.

그런 나에게,

아들과 함께 학교 문턱을 낮추는 일을 하라니.


 

고민 끝에 내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담임선생님을 제 편으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무조건 신뢰하고 감사히 여겼으며 학교일을 적극적으로 도왔지요.

일학년 2학기에 들어서면서 차츰 아들의 상태를 이해하는 선생님이 되어가더군요.

처음부터 작정하고 엄한 교수법을 적용하려 든 것은 아니겠지요.

장애아를 다뤄보지 않은 경험미숙에서 온 결과였다고 여겨집니다.


 

핑계 같으나 아들이 입학하는 그 순간부터 단 한 줄의 글을 쓸 수 없었습니다.

감상에 젖는 일도,

계절변화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도,

등교 후 있어지는 시간적인 여유로움을 만끽하는 것도,

전부 사치스러움으로 생각되었습니다.


 

과연 일등을 하긴 합니다.

거꾸로 일등이지요.

우리 집은 일등 투성이랍니다.

딸아이는 앞에서 일등, 아들은 뒤에서 일등이지요.

 

 


발달장애1급.

이것이 아들의 또 다른 일등이름입니다.

대견스런 자식들은 일등만 잘 하는데,

저는 언제쯤 일등엄마가 될 런지요.


 

잠꼬대처럼 기말고사 일등 했다는 말을 중얼대다 잠든 아들을 바라봅니다.

꿈속에서도 시험지를 받아들고 있을지.


 

겨울밤은 깊어만 가는데,

못나빠진 어미는 잠이 오질 않고

독백으로 중얼대자니 얼빠진 여자 같을 것이고

그래서 뼈대도 없는 얘기만 중얼대다 갑니다.

 

 


님들, 편한 밤.........되십시오.

 


  

  



등록
  • 바다새 2008-12-14
    그럴수 있을지요....아픔의 깊이가 깊을수록 차마 내놓는일이 두렵습니다.
    맘 내키는 대로 써볼랍니다^^
  • 살구꽃 2008-12-13
    몇년전에 님의글을 본 기억이 아련히 납니다.맘고생 많이 하셨겠네요.물론 앞으로도 계속해야할..학교보내놓고도 얼마나 맘이 불안했을가나 짐작해봅니다.
    그래도 도중에 포기하지않고..장하시네요.저도 억척스럽고 강한엄마가 아니라서 의지력도 약하고..근데 바다새님은 해내셨잖아요.앞으로도 아드님 잘해내리라 믿어요..그래서 그동안 아컴에 안오셨던거군요..이젠 맘의 여유를 좀 가지시고 속상한일 등등 자주 올려주시겠네요..앞으로도 좋은일만...
  • 바다새 2008-12-14
    영광입니다~! 님께 고정 닉네임을 선물하게 되어 정말 기뻐요. 같은 아픔을 지닌 어미의 심정으로 읽어주셨을테죠? 아들은 열손가락중 유독 아픈 제 손가락입니다. 그때 그때마다 사는 얘기, 느낀얘기들 편하게 올릴게요...부족한 제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도 아들이 행복한 것에만 눈높이를 맞추고 산답니다. 시선님..화이팅~!!!
  • 시선 2008-12-13
    제 눈물샘을 자극하네요. 아컴에 7년동안 드나들었지만 글도 댓글도 거의 올리지않은 그저 눈팅만하던 마흔중반의 아지맵니더. 소심한 이성격에 처음으로 고정닉을 가지고 님의 글에 댓글을 달았었네요. 그랬었군요 님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기에 처음 님의 글을 접했을때 저의 시선을 확 끌어댕겼군요. 님 잘 될거에요. 희망을 가지세요. 저도 힘들지만 잊어버릴려고 노력하거든요 지금 눈앞에 웃음을 잃지 않는 딸아이의 모습만봐요. 앞으로 닥칠일을 미리 걱정하지 않기로 했어요. 다 잘 될거에요 다~~
  • 바다새 2008-12-14
    오월님~! 그런말씀 마세요...세상은 공평할겁니다. 어느 누구에게나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난이 주어졌으리라 믿어요. 다만 저는 제 분량의 짐을 지고 갈 뿐입니다. 오월님에게도 님 체구에 맞는 부피가 있겠지요? 우리 함께 열심히 살자구요.
  • 오월 2008-12-13
    바다새님 죄송합니다 이글을 읽고 또 잊고 살겠지요 하지만 더 열심히 살고
    더 돌아보고 더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힘들다는 말도 안하고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바다새 2008-12-14
    학교 공개수업에 간 적이 있어요. 아들이 어눌한 행동으로 수업에 임합니다. 처음엔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이젠 당당해졌어요. 우리 아들은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사랑받을 권리가 있거든요. 울타리님과 저는 특별히 선택된 어머니 입니다. 장애자녀를 키울 능력있고 자격이 되기에 그런 어머니가 된 것일거예요. 우리는 힘겹지만, 님의 아드님과 제 아들은 행복하겠지요. 자부심 갖고 삽시다...긍정적으로~! 좋죠?
  • 울타리 2008-12-13
    님의글 읽어면서 눈앞이흐려 집니다 저 역시 장애아들을 키우는어미 이기에 지체장애3급 선적적 입니다 울 아들 나면서부터 한번도 정상적인 생활 해본적 없습니다
    울 아들 마음이얼마니 아플까요 자기잘못도 없는데 장애를 안고태어나 하늘나라 갈때 까지 장애를 지고 살아야 하니 이어미 가슴이 무너집니다 차라리 울 아들 대신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 힘내자구요 아이들을 위해서
  • 바다새 2008-12-14
    초록이님~! 닉네임이 참 맘에 듭니다. 저는 초록색을 제일 좋아합니다. 그래서 글 올릴때 글자색도 초록으로 정했죠. 초록은 싱그럽고, 뭔가 생동감을 느끼게 합니다. 님의 말씀처럼 자녀에겐 누구나 최선의 부모가 되겠지요. 노력하는 엄마 되겠습니다.
  • 초록이 2008-12-13
    바다새님,잘 읽었습니다 저도 자식문제앞에서는 물러터진 엄마라 눈이 시큰거림을 어쩔수 없군요..근처에 비슷한 엄마가 있어요 상황이 같은지 좀 나은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바다새님처럼 열심히 아이학교생활에 참가합니다 학예회든 운동회든 공부든 늘 적극적인 관심으로 나서지요 반아이들 대부분 그아이를 좋아하고 이해합니다 생활고로 오전엔 따로 직장을 나가는데.. 진짜 좋은 엄마지요 바다새님 우리모두는 평범해서 투사가 되기엔 너무 미약할진 몰라도 단지 우리아이에게 최선을 다할순 있지요 지금 하시는 것처럼요
    정말 장하세요..날마다 기쁜 일만 생기시길 빌어요
  • 바다새 2008-12-14
    낸시님께는 늘 인생의 연륜을 느끼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지혜로운 어머니가 되고 싶은데 저는 많이 부족합니다. 아들이 더디 컸으면 좋겠는데...어느새 덩치가 산만해 졌네요^^ 엎어줄 수 없음이 안타깝네요. 덩치만큼 생각도 크게 해달라고 잠들때마다 기도합니다.
  • 낸시 2008-12-13
    아이들이 다 자라 같이 살고 있지 않은 지금, 자식이 뭘까...가끔 생각해 보기도 하지요. 자식은 내가 사는 동안 외로움을 덜어주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제일 크지요. 그런데 잘 난 녀석은 내 도움이 많이 필요 없어요. 그 만큼 날 외롭게 하지요. 바다새님 아들을 바라볼 때 힘드실 줄 알지만 그래도 그 아들과 공유하는 시간이 더 많지요? 울딸은 저 바쁘다고 전화도 잘 하지 않고, 귀찮다고 내가 전화해도 잘 받지도 않아요. 씁쓸하지요. 아이들이 자라고 나니 힘들었던 시간들마저 함께했던 시간들이 소중한 것이었구나...하고 느낍니다. 우리도 누구 못지 않게 힘든 시기를 보낸 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 바다새 2008-12-14
    웬걸요... 일등하려면 아직도 까마득한 엄마입니다. 선물님의 닉네임을 보노라면, 제 아들생각이 더욱 절실해집니다. 아들이 제게 선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지 얼마되지 않거든요. 힘겹던 날들엔, 죗값이라 여겼지요. 부끄럽군요.....이렇게라도 아컴에서 뵐 수 있어서 행복해요. 예전 에세이방으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곧 오겠죠?
  • 선물 2008-12-14
    궁금하지만 여쭤보지 못했던..그랬었군요. 바다새님, 못나빠진 어미라는 님이 제겐 일등으로 보입니다.
  • 은미 2012-07-02
    가슴저미는 이야기들 속에 엄마의 강한힘과 의지가.. 제게는 세상..어느것보다 빛나 보입니다
    네..그래요..처음이..지독스레 어렵지요

    특수학교라해서 모든 시스템이 아이들에게 효과적이다라곤 할순 없어요
    그만큼 아직은 우리나라는 정착되지 못한 부분들이 많더군요~곳곳에..

    일반학교의 선생님들이라해서 모두가 같진 않을테죠~
    각각의 인품들이 다르다보니..

    원글 내용중에 울컥하며..(다혈질이라 꼭 이리 티를냅니다)치밀어 오르다..

    유뽕이의 엄마로써 예천님의 흔들리지않는 중심에 서계시는분이라 제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네..맞습니다 예천님 말데로 큰소명을 어깨에 왜 주셨겠어요?
    자격되니 주신거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앞부분에 유뽕이의 사진과 그림들을 먼저 보았어요
    놀라움의 표현법과 색채감각..확실히 탁월한 숨어있는 기법들이지않나 싶어요
    더우기...늠늠하며 귀티나는 이목구비하며..
    예천님의 큰사랑의 손길들이 사진인데도 마구..느껴졌답니다

    처음올려두신 글부터 거꾸로 읽어 오는 중입니다
    제가 4살때부터 어머니의 손을잡고 교회를 나갔는데
    범사에 감사하란 말씀이 어린나이에도 너무 듣기가 좋았어요

    예천님께서 바로..범사에감사를 실천하시며 사시는분입니다
    (ㅎㅎ제가 마음은 앞서고..글재주가 없는터라 이해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