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 798

이민수기-4


BY 낸시 2008-12-12

커튼가게를 접고 무엇을 해야하나, 남편과 나는 다시 동상이몽을 시작했지.

남편은 사람들이 그러는데, 주유소가 좋다더라, 세탁소가 좋다더라, 뷰티샵이 좋다더라, 도넛가게가 좋다더라...하는 사람이야.

그래, 다 좋은데...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데?...하고 물으면 화를 벌컥 내면서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래.

다른 사람이 뭐가 좋다더라가 뭐 중요해,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게 중요한 거지... 그러면 잘난체 한다고 비아냥 거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남편은 다시 자기가 알던 지인들과 연락을 시작했는데 난 달갑지 않았어.

남편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이 있거든.

돌 맞을 소리인 줄 알지만, 난 그 사람들이 남편과 친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남편이 갖고 있던 직함, 영사관의 이영사와 친하게 지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직함이 없어진 남편에게 그들이 예전의 친분을 보여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 어리석은 것 아닌가..

세월이 흐른 지금은 남편이 더 잘 느끼고 있겠지만, 그 때 남편은 설마 했나봐.

난 좀 둔해서 형광등 소리도 듣고, 모자란다 소리도 듣고, 주변에 관심 좀 갖고 살라는 충고도 듣고 살지만 예민한 남편보다 그런 것은 더 잘 느끼겠던데...

여자와 남자의 차이인지, 아니면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라 더 잘 보인 것인지...모르겠네.

 

남편은 이리저리 전화하면서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의 고견을 묻곤 하였지.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의 수 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는데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라서인지 내 듣기에 참신한 의견은 하나도 없더라고.

아는 사람은 알 꺼야.

한국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이 얼마나 많은지.

미국엔 더 많아.

거기에 울남편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 아닌 사람이 없어.

초등 때 부반장을 도맡아 하던 금순이에게 왕따 당한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난 그런 직함을 좋아하지 않아.

쓸데없이 그런 직함을 달고 사는 사람은 왠지 진실해 보이지가 않더라고.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의 고견에 귀가 솔깃한 남편과 열심히 싸웠어.

더 이상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물러서지 않았어.

뭐, 내가 타고난 고집쟁이이기도 했고.

남편은 내가 하자는 커튼가게를 하다 망했다고 생각이 들어 역시 양보하기 싫었을꺼야.

그거라면 나도 할 말이 많지만 지나간 일이니 따져서 뭐해.

가진 돈을 둘로 나누어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하자는 말도 나왔지만 둘이 힘을 합해도 어려운 판에 그것은 해보나마나 안될 거라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들은 아니었지.

이번엔 아들이 내편이라서 숫자에 밀린 남편이 졌어.

 

아들은 달라스는 싫고 자기가 사는 오스틴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그리 이사하자고 해.

다시 이삿짐을 꾸리기로 했지.

남편이랑 나는 둘 다 팔자에 역마살이 있다더니 결혼 기념일 수보다 이삿짐을 꾸린 수가 더 많아.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만 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달라스를 떠나는 것에 대해선 눈꼽 만큼의 미련도 없어.

처음부터 삭막한 환경도 싫고 바둑판에 성냥값 세워놓은 듯한 거리 풍경도 싫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나니 오만 정이 다 떨어졌거든.

신문에서 달라스가 범죄율이 제일 높은 도시라던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더라니까...

 

하지만 마음 한 켠이 불안하기도 했어.

남편과 의견 대립 중에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본 거야.

아들이 날이 퍼런 증오심을 제 아빠에게 품고 있더라고.

얼마나 서슬이 퍼런지 나까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아들과 같이 일하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어.

잘못했노라고 사과하기에 내 아들이니까... 심성이 고운 놈인데...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지.

 

 

등록
  • 낸시 2008-12-13
    님의 댓글을 읽고 문득 무지개빛 융단같은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 무지개빛 융단같은 삶은 안정되고 단조로운 삶은 분명 아닐거예요. 그쵸?
  • 헬레네 2008-12-12
    이민도 무지개빛 융단은 아니군요 그런데도 님의글은 평화롭고 온화합니다
  • 낸시 2008-12-13
    제가 쓰는 글을 기다려주시는 분이 있었다니 고마워요. 사실 요즘 글을 쓰면서 자꾸 횡설수설하는 것 같아 의기소침해졌었거든요. 님의 말씀에 힘을 얻어 좀 열심히 써봐야겠어요.
  • 패러글라이딩 2008-12-13
    들어올 때마다 님의 글을 기다리곤 하는 독자랍니다.
    지나온 이야기를 쓰시는 것이기에 독자로써 편안하게 읽고 갑니다.
  • 낸시 2008-12-13
    같은 한국이나 미국에서 다니는 것은 좀 덜한데 태평양을 건너 오가는 것은 마치 뿌리가 온통 뽑혀나가는 것 같은 느낌도 들지요. 꽃과 나무를 좋아하는 저는 내가 심은 꽃과 나무가 어찌되었을까...젖먹이를 떼놓고 온 어미처럼 오매불망 그리워하기도 하구요.
  • 초록이 2008-12-13
    저는 이사하는걸 싫어하지만 그래도 결혼후 열손가락 안짝으로 이사다닌거 같은데 ... 낸시님도 이사경력이 많으시네요^^ 좋은 주말 되세요
  • 낸시 2008-12-13
    마음이 따뜻한 울타리님 걱정해 주셔서 고마워요. 그런데 타지라고 더 힘들 것은 없어요. 사람사는 곳은 어디나 마찬가지랍니다. 힘 낼께요. 울타리님도 힘내세요. 우리 모두 화이팅.
  • 울타리 2008-12-13
    님을 글읽을때 마다 걱정이되요 타지에서 얼마니 고생하실까 그래도 한국이라면 덜하지않을까 싶어 님 힘내시구요 용기 백배 드립니다 회이팅
  • 낸시 2008-12-13
    꽃이나 채소 씨앗이 해가 묵으면 발아율이 떨어져요. 제가 그걸 불평했더니 무엇이든 잘 기른다고 소문 난 권사님이 쓰고 남은 씨앗은 냉동실에 넣어두래요. 자기 오빠가 비닐 하우스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하라고 했다고...시킨대로 했다가 해보니 정말 좋더라구요. 씨눈은 얼지 않나봐요. 염려말고 해 보세요. 스쳐가는 옛일 하나 ...알고 말고요. 지금은 사이가 좋지요?
  • 오월 2008-12-13
    낸시님 정말 꽃씨를 냉동실에 넣어도 꽃시가 살아 나는지요 도영언니와
    둘이 진지하게 나눈 이야긴데 언니는 난다 하드라 전 눈이 얼어죽어 절대
    안난다 그러며 나눈 대화거든요 다시한번 정답 부탁드려요.이민수기 ㅎㅎㅎ
    잘 읽었고요.날이 퍼런 증오심 이 대목에서 옛일 하나가 스쳐 가슴이 오그라
    들어요 아시죠? 뭔 이야긴지.....
  • 낸시 2008-12-13
    오래 전 나이아가라 폭포를 가려고 계획하던 우릴 보고 언니가 하던 말, 거기는 뭐하러 가니? 그냥 물 떨어지는 거야... 울언니 미국에서 오래 살았거든요. 형부가 발발이라 구경 많이 다니면서. 기가 막힌 내가 물었지요. 남들이 다 좋다는 나이아가라를 그렇게 말하는 언니는 그럼 가 본 중에 어디가 가장 좋았어? 엘로우 스톤 공원을 가 봐. 난 가 본 중에 거기가 제일 기억에 남고 볼 만하더라. 나이라가라도 가 보고 엘로우 스톤 공원도 가 보고, 언니 말에 고개 끄덕끄덕...텍사스는 사실 볼꺼리가 그리 많은 곳은 아니랍니다. 황량한 들판이 대부분이지요. 봄에 들꽃도 이쁘고, 제가 갔던 소나무 숲도 좋고, 제가 사는 곳엔 호수들도 많고 하긴 하지만 다른 곳과 비교하면 구경삼아 볼꺼리로는 권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정 붙이고 살 만한 곳이긴 해요. 겨울도 따뜻하고...혹시 와 주신다면 제가 식은 책임질 수 있지만...ㅎㅎ 볼꺼리가 더 많은 곳들을 알면서 이리 오세요...하기엔 좀 켕기네요. ㅎㅎ
  • 강원아줌마 2008-12-13
    낸시님 이민이야기 들으면서 가보지 못한 미국..텍사스 그리고 공원산책이야기 읽으면서 상상해봅니다.. 내년에는 우리부부가 시간이 많아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한 번 낸시님 사는 곳에 여행 가보고 싶네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