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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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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수기-4


BY 낸시 2008-12-12

커튼가게를 접고 무엇을 해야하나, 남편과 나는 다시 동상이몽을 시작했지.

남편은 사람들이 그러는데, 주유소가 좋다더라, 세탁소가 좋다더라, 뷰티샵이 좋다더라, 도넛가게가 좋다더라...하는 사람이야.

그래, 다 좋은데...당신이 하고 싶은 일이 뭔데?...하고 물으면 화를 벌컥 내면서 그런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래.

다른 사람이 뭐가 좋다더라가 뭐 중요해, 내가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그게 중요한 거지... 그러면 잘난체 한다고 비아냥 거려.

아무리 생각해도 내 생각에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인데...

 

남편은 다시 자기가 알던 지인들과 연락을 시작했는데 난 달갑지 않았어.

남편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이 있거든.

돌 맞을 소리인 줄 알지만, 난 그 사람들이 남편과 친하게 지낸 것이 아니라, 남편이 갖고 있던 직함, 영사관의 이영사와 친하게 지낸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 직함이 없어진 남편에게 그들이 예전의 친분을 보여 줄 것이라고 기대하면 어리석은 것 아닌가..

세월이 흐른 지금은 남편이 더 잘 느끼고 있겠지만, 그 때 남편은 설마 했나봐.

난 좀 둔해서 형광등 소리도 듣고, 모자란다 소리도 듣고, 주변에 관심 좀 갖고 살라는 충고도 듣고 살지만 예민한 남편보다 그런 것은 더 잘 느끼겠던데...

여자와 남자의 차이인지, 아니면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이라 더 잘 보인 것인지...모르겠네.

 

남편은 이리저리 전화하면서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의 고견을 묻곤 하였지.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의 수 만큼 다양한 의견들이 있었는데 모두 나이 든 사람들이라서인지 내 듣기에 참신한 의견은 하나도 없더라고.

아는 사람은 알 꺼야.

한국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이 얼마나 많은지.

미국엔 더 많아.

거기에 울남편과 친분이 있는 사람은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 아닌 사람이 없어.

초등 때 부반장을 도맡아 하던 금순이에게 왕따 당한 기억 때문인지 몰라도 난 그런 직함을 좋아하지 않아.

쓸데없이 그런 직함을 달고 사는 사람은 왠지 진실해 보이지가 않더라고.

 

회장님, 사장님, 선배님의 고견에 귀가 솔깃한 남편과 열심히 싸웠어.

더 이상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할 여유가 없다고 판단한 나는 물러서지 않았어.

뭐, 내가 타고난 고집쟁이이기도 했고.

남편은 내가 하자는 커튼가게를 하다 망했다고 생각이 들어 역시 양보하기 싫었을꺼야.

그거라면 나도 할 말이 많지만 지나간 일이니 따져서 뭐해.

가진 돈을 둘로 나누어 각자가 원하는 일을 하자는 말도 나왔지만 둘이 힘을 합해도 어려운 판에 그것은 해보나마나 안될 거라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들은 아니었지.

이번엔 아들이 내편이라서 숫자에 밀린 남편이 졌어.

 

아들은 달라스는 싫고 자기가 사는 오스틴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그리 이사하자고 해.

다시 이삿짐을 꾸리기로 했지.

남편이랑 나는 둘 다 팔자에 역마살이 있다더니 결혼 기념일 수보다 이삿짐을 꾸린 수가 더 많아.

나이가 나이인지라 그만 한 곳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달라스를 떠나는 것에 대해선 눈꼽 만큼의 미련도 없어.

처음부터 삭막한 환경도 싫고 바둑판에 성냥값 세워놓은 듯한 거리 풍경도 싫었는데,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나니 오만 정이 다 떨어졌거든.

신문에서 달라스가 범죄율이 제일 높은 도시라던데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더라니까...

 

하지만 마음 한 켠이 불안하기도 했어.

남편과 의견 대립 중에 보고 싶지 않은 것을 본 거야.

아들이 날이 퍼런 증오심을 제 아빠에게 품고 있더라고.

얼마나 서슬이 퍼런지 나까지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아들과 같이 일하는 것을 망설이기도 했어.

잘못했노라고 사과하기에 내 아들이니까... 심성이 고운 놈인데...하면서 불안한 마음을 애써 눌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