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식집을 한지도 어느새 5년이 다되어 간다.
처음엔 고된 음식장사의 노동에 자리에 누우면 코를 골며 곯아 떨어지기 일쑤였었다.
한국에 있었을 땐, 때 마다 돌아오는 제사날이 셋째 며느리로 별로 할 일도 많지 않으면서도 가장 힘든 날이였는데
음식장사의 노동은 매일 매일이 제사날이였다.
차라리 제삿날이면 양반이기라도 하지, 정신없이 바쁜날은 얼이 빠지기 일쑤였던 것 같다.
그래도 그땐 미국에서의 생활이였고, 남들 다 그렇게 산다고 생각했고, 바쁜 나의 일상이 감사했었다.
요즘엔 미국에 불어닥친 불경기로 예전같이 몸이 힘들지도 않고, 예전에 바빠 정신없던 날들이 많이 줄어들어
오히려 바쁠때가 더 좋았는데 하는 생각을 절로 하며, 이 불경기가 빨리 잘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한 5년여 장사를 하다보니 어느새 손님들 손님들 한 분씩들이 단골아닌 분들이 없다.
어느날은 이분들 기도를 해 주자 싶어서 명단을 적어보니 한 200여 가족이 기억에 떠오른다.
단골로 등록이 안된 분들까지 하면 참 많이 숫자의 손님들이 우리가게를 다녀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한분 한분 떠올려 보다가 글로 옮겨보자 마음이 먹어졌다.
아주 매일 점심때 오시는 60대 초반의 백인 여자 손님이 있다.
거의 매일 오시는데, 아주 가끔 결근하실때가 있다.
그땐 웨이츄레스나 나나 궁금해 한다. 어디가 아프신가 하고,
그 분은 늘 같은 옷의 그린 칼라의 외투를 가을부터 다음해 봄까지 매일 입고 나타나신다.
우리가게는 점심은 화요일 부터 금요일까지만 장사를 하니깐 일주일에 네번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봄부터 가을무렵까지는 보라색 얇은 자켓을 입고 나타나신다.
그리곤 혼자 똑같은 메뉴를 시켜서 책을 보면서 식사를 한다.
똑같은 메뉴를 매일 먹는다는게 쉬운일이 아닐텐데, 의외로 미국사람들 중에는 그런사람들이 꽤 있다.
이 분이 드시는 음식은 치킨 테리야끼라고 하는 미국내에서는 아주 일반화된 일본 패스트푸드같은 개념의
메뉴이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몇군데의 테리야끼 식당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게로 오는 그 분이 참 고마울 따름이다.
한번은 단체손님 20여명이 예약이 있던 날이였는데, 테리야끼가 한 박스가 상해져 있는것을 그날 아침에 발견을 했다.
여분의 치킨으로는 손님받기도 어림도 없다 싶었는데, 다행히 그 단체손님들이 스시를 시키고 몇분만이 테리야끼를 주문하는 바람에 한 시름놓기는 했는데,
매일 오시는 이분것을 남겨놓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그래서 어찌 어찌 일인분을 남겨놓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반인분에 가까웠다.
그래서 사정얘기를 하고 가격을 반만 받았던 기억이 있다.
연초가 되면 그동안 와 주신게 고마워서 공짜로 제공한다.
말하자면 쿠폰이라고나 할까?
한번은 가격을 1달러를 올렸더니, 이 분이 막 화를 내시는거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오지를 않았다.
그러다 다음 다음날쯤 다시 오기를 시작했는데,
아마도 이분은 차를 좋아하는데, 우리 가게는 테리야끼 식당이라기 보다는 일식집이기에 차를 무제한 공급해준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차를 따로 주문해서 돈을 내고 먹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조용하고 차를 마음껏 마실 수 있는 우리가게가 낫겠다 싶었던 것같다.
미국사람들의 특징이 그렇다.
아무리 친한 것 같아도 자기 이익앞에서는 아주 야무지다.
정으로 다가서는 한국사람들과는 조금 다르다.
좀 이상한 성격을 가진것 같기도 하고, 이름도 모르지만
늘 책을 읽고, 절대 매상에 도움이 되지도 않는 손님이지만
매일 매일 우리가게를 찾아주는 이분을 난 나의 아름다운 손님 1호로 등록한다.
이분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이 연말에 진심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