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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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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묻는다면...(끝)


BY 새봄 2008-12-08

온천호텔에서 우리의 주요 관광지 다카야마까지는 기차를 이용했고, 오전엔 시골 장을 둘러보고 한낮엔 일본산골생활을 그대로 재현한 곳으로 이동을 했다. 호수 뒤로 펼쳐진 우리나라 민속촌 같은 그곳의 산골마을은 자연스럽고 한산했으며 아름다웠다.

 

우리의 초가집보다 지붕이 높고 안이 넓었는데 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어둡고 습해 보였다. 온통 나무로만 지어진 실내는 몹시도 추워보여 포근하고 아늑한 맛은 나지 않았다. 느긋하고 편안하게 한 집 한 집 둘러보면서 많은 얘기를 하고 장난을 치고 나무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며 먼 산을 바라다보기도 했다.

 

가을이라 곳곳에 들국화가 듬성듬성 만발해 있었다. 하얀 구절초도 보이고, 보라색 들꽃도 풀섶 사이사이 얼굴을 들어내고, 꽃병에 미국구절초를 한 아름씩 꽂아 놓을걸 청아와 마주앉아 들여다보기도 했다. 작은 물레방아 가에서는 사진도 여러 장 찍고 물이 고였다 쏟아내는 물레방아의 단순한 원리를 보면서도 우린 떠들며 웃었다.

 

가을이 익어가는 이 곳 일본은 우리나라 산천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쌀이 주식이라 그런지 논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것 또한 정겹고 낯설지 않았다.

 

돌아오는  버스안은 노을이 살고 있었다.

 

밤 열 시경에 청아의 기숙사에 도착, 일본에서의 마지막 잠자리에 들었다.

 

“행복하다고 생각하니?”

밑도 끝도 없이 물어보니 상록이는 행복한 편이라고 생각해요, 라고 얼른 대답한다.

청아는 “나도 행복해, 조금은 외롭지만…….”

“그래 엄마도 행복해. 이렇게 일본에도 오고 우리가족 모두 건강하니 말이야. 조금은 외롭지만…….”

그리곤 서로 말이 없다.

상록이는 벌써 잠이 폭든 숨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청아가 운다.

“우니?” 난 울지 않으려 담담하게 물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래 엄마, 그땐 앞날이 안보였는데…….지금은 가진 게 많고, 참 행복한편이잖아. 우린 빚도 없고……. 과친구들 중엔 등록금이 없어 빚을 냈다는데……. 엔화도 너무 올라버리고…….”

“그러게 말이야 생활비가 많이 들 뻔했는데…….장학금을 받게 되어서 엄마가 한시름 덜었다. 고맙다 우리 딸”

우린 손을 꼭 잡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서로 고맙다고 하면서 서로 고생 많았다고 하면서…….

 

청아는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했다. 패스트 푸드점을 시작으로 음식점, 편의점, 백화점, 영화관, 지금 일본에선 가락국숫집 주방에서 몇 시간씩 우동을 삶아내고 그릇을 닦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보통 유학생들보다 생활비를 반만 보내줬는데 이 학기부터는 장학금을 받게 되었고, 그걸로 가족이 일본 여행을 계획하고 실제로 오게 되었으니 눈물이 나올 만큼 행복하다.

 

우리나라의 경제 위기는 유학생들부터 실감하며 살고 있다. 작년에 백 엔에 구백 원하던 것이 지금은 천오백이나 올라서 생활비가 두 배 가까이 들어 내년에 유학 올 후배들이 유학을 포기하고 있다고 하니…….

 

청아와 나는 손을 잡고 울다가 잠이 들었다. 헤어져야하는 아쉬운 마음과 지난날의 아픔과 지금은 다행인 행복감과 그래도 사람이니까 조금은 외로움에 눈물을 흘리다가 서로 위로하다가 어느 절에 잠이 들었다.

 

이른 비행기 시간에 맞춰 새벽에 일어났다. 날씨는 잔뜩 흐려 있었다. 나고야 공항에 도착하니 비가 내리려고 한다. 수속을 밟고 짐을 다 맡기고 나니 활주로엔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한다. 시간이 남아서 간단하게 아침을 사서 둥그런 탁자에 앉았다. 꼬치와 주먹밥을 서로 나눠 먹으며 또 웃고 떠들었다. 누나를 엄마처럼 친구처럼 따르는 상록이의 싱거운 장난에 노란 남방을 입은 청아의 웃음이 키 작은 소국처럼 예쁘다. 두 아이들을 보며 나는 다시 행복을 묻는다.  '망초야, 너는 그래도 행복하잖아, 그치?'

 

"청아야 잘 있어라.

육개월만 있으면 볼 텐데 뭐…….

상록아 파이팅!

누나~~안녕~~ "

서로 손을 흔들며 뒤돌아 가는데…….

“어??? 내 핸드폰?”

상록이가 주머니랑 가방을 뒤져도 핸드폰이 없단다.

“하이고, 내가 미쳐.”

아까 주먹밥 먹던 탁자에 두고 왔나보다.

 “청아야? 탁자에 핸드폰 두고 왔데?”

청아는 놀란 토끼눈을 해가지고 위층으로 뛰어간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빠져나가고 우리만 남아서 핸드폰을 기다렸다.

노래진 청아가 핸드폰을 흔들고 나타났다.

생전 동생에게 화를 안내던 청아가 화를 낸다.

“이 자식아~~ 정신 좀 차려.”

우린 냅다 달려 대한민국으로 돌아가는 풀잠자리만한 비행기에 무사히 올라탔다.

 

비행기 창엔 가을비가 먼저 와서 방울방울 맺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