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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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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남자


BY 낸시 2008-12-08

여~보, 오늘은 어땠어? 자~알 맞았어?

골프치고 돌아 온 남편에게 살랑살랑 웃으며 물었다.

자~알 맞겠냐? 어~쩌다 한번씩 치는데?

화난 표정으로 퉁명스레 대꾸한다.

내 참, 어처구니가 없다.

일주일에 한 번이 적다 이거지...연습이야, 지가 게을러서 못하는 거고...

참자. 그래도 참자. 손님이 있는데...

 

손님이 우선이지.

내 감정은 뒤로 하고 주문을 받는다.

매운 닭고기를  곁드린 카레 하나, 시원한 녹차 하나....

다음 손님.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무엇을 드릴까요.

가래떡 넣고 만든 새우요리 둘, 레모네이드 하나, 홍차 하나, 훈제연어 월남쌈 하나...

다시 다음 손님.

안녕하세요. 어서오세요.

안뇽하세요.

젊은 남자하고 여자가 왔는데 여자가 한국말을 한다.

안녕하세요? 한국 사람이신가요?

네, 우리 가게 오는 손님이 한번 가보라고 해서 왔어요.

어머, 그래요. 반가워요. 오셔서 고맙습니다. 우리 가게가 미국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긴 있어요. ㅎㅎ 여기 메뉴있습니다.

한국말이 조금 서툰 것을 보니 아마도 1.5세나 2세인가보다. 이 생각은 속으로하고...

......

불고기 하나, 매운 닭고기 하나, 아보카도 넣은 월남쌈 둘, 잡채 하나, 즉석 장아찌도 하나,..., 일본식 된장국 둘, 맥주도 둘, 버블티 2개는 나중에...

......

나는 주문을 받고, 호세하고 산토스는 부엌에서  음식을 만들어 내고, 남편은 마실 것을 만들고 부엌에서 나온 음식을 손님 테이블로 나르고...

바쁘게 일하다보니 아까 화났던 것도 잊어버리고 다시 남편에게 살랑거린다.

여보, 나 오늘은 고등어 구이하고 된장찌게가 먹고 싶은데...

그래, 그럼 내가 40불 슬쩍했는데 그것으로 사줄께.

정말...히히 좋다. 맥주도 하나 사 줄꺼야?

그러엄.

 

문 닫을 시간이다.

더 이상은 손님도 사절이다.

우리도 밥 먹고 정리하고 집에 가서 잠도 자야한다.

얼른 끝내야지.

크레딧카드로 받은 것은 입력시키고 현금 받은 것도 세어서 컴퓨터 기록하고 맞나 확인도 하고 바쁘다 바빠...

식당을 둘러보니 손님들도 두 테이블만 남고   다 돌아갔다.

부엌도 청소가 거의 다 되어간다.

아, 배고파. 뱃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신발 장수가 고무신 한짝 운동화 한짝 신는다더니 밥장사는 밥 먹을 시간이 없다.

몇년을 같은 음식을 보고 있으니 우리 음식은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도 않는다.

얼른 야식하는 집에 가서 고등어랑 된장찌게 먹어야지...

 

한국사람이랑 같이 온 테이블에 버블티 두 개 나가야지...

남편의 말투가 마치 날 비난하는 것 같다.

잉, 이게 뭔소리. 마실 것은 여지껏 자기가 맡았는데 느닷없이 왜 날더러 하래.

다 된 줄 알고 있었는데...

따지는 것은 나중이고, 일단 손님이 우선이니 버블티를 만들어야지.

미쳐, 미쳐, 내가 미쳐...

호세하고 산토스가 다 버리고 청소를 해 버렸네... 이를 어째. 이를 어째...발을 동동 구른다.

잠시 생각해보고, 남편을 탓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화내는 것은 뒤로 미루고...

냉동실에서 얼어있는 재료를 꺼내 뜨거운 물에 담가 불에 올리고 기다린다.

오늘따라 왜 이리 더딘거야...

안달복달하면서  버불티 두 개를 만들어 내고 드디어 오늘 영업 끝.

 

가게 오픈 사인도 끄고, 촛불도 끄고, 꺼진 불도 다시 보고, 문도 닫고, 쓰레기통도 비우고 집에 갈 준비 끝.

월요일에 봐요-아스따 루네스, 고마워요-그라시아스. 호세! 산토스!

호세도 가고 산토스도 가고.

아, 배고파, 얼른 야식집에 가서 된장찌게하고 고등어 구이 먹어야지.

어, 그런데 남편은 뭐하는 거야.

부엌으로 들어간 남편이 꿈지럭거리고 안 나오네.

남편따라 들어 간 부엌.

남편은 남은 밥도 싸고, 야구르트, 두부,무우, 애기상추를 챙긴다.

나는 배 고픈데...

말이 곱게 나갈 리 없다.

당신 뭐 해?

예민한 남자 내 말투를 놓칠 리 없다.

당신 말투가 그게 뭐야?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이다.

말투를 갖고 따지면 나도 억울해 죽겠다, 정말로 할 말이 많은 건 나다.

 

뒤로 미루어 두었던 화가 몰려온다.

야식집도 고등어 구이도 된장찌게도 다 싫다.

말없이 집에 왔다.

남편은 가져 온 밥이랑 김치를 꺼내 먹을 준비를 한다.

화 났나 보다.

내 밥그릇도 수저도 없다.

혼자 먹으라지.

내 몫까지 다 먹고 내 몫까지 다 살라지.

방에 들어와 컴퓨터를 켜니 에세이 방이 시끄럽다.

무슨 일이야. 난공주님 글을 찾아 읽어본다.

그렇구나 그렇구나..아, 졸려 다 못 읽겠다.

그래도 잠들기 전에 한마디 해 주어야지.

방문을 열고 말해주었다.

내 몫까지 혼자 다 먹고 나 죽은 뒤 삽십년은 더 살아라. 인간아...

아, 졸려. 졸려...이빨도 안 닦고 밥도 못 먹고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새벽이다.

남편이 옆에서 자고 있다.

밥도 못 먹고 잤지만 자고나니 싸울 힘이 솟는다.

새벽에 잠을 깨우면 싫어하는 남편이다.

싸우고 싶은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아니 이게 기회다.

야, 인간아. 그래 말해 봐.

골프가 잘 맞았냐고 했더니 너 화냈찌. 그게 화 낼 일이냐?...

아니, 화내면 안되지.

어라, 잠을 안 자고 있었나. 대답이 금방 나온다. 그리고 이런 대답이 나오면 안되는데...

야, 인간아. 말해 봐.

손님 테이블에 음식 누가 날랐냐.

버블티를 부엌 청소 다 끝나도록 안 만들고 청소 끝난 다음에 재료도 다 없어졌는데 날더러 만들라고 하면 나 화 안나겠냐?

화 나겠다.

어, 점점... 이상한 대답만 한다.

각시가 고등어 구이에 된장찌게 먹고 싶다고 하니까 사 준다고 해 놓고 부엌에 들어가 남은 밥 챙기는 심사가 뭐냐.

밥 안 사주고 싶었지. 내가 화 안나게 생겼냐?

그것은 아니다. 일요일에 집에 있으니까 먹으려고 한 거지.

아씨...할 말 없게 만드네.. 괜히 굶었잖아.

 

저녁 굶은 시어미상이 되어서 이불 속에서 밍기적 거리고 있었더니 아침 차려놓았다고 먹으란다.

먹을까 말까...

그래도 그냥 먹으면 좀 그렇지...

방문을 빼꼼 열고 한마디 했다.

혼자 먹어. 그러면 맛있을 거야.

알았어. 그러지. 뭐. 그런데 맛은 없지...

다른 때 같으면 달래기도 할텐데...오늘은 아니다.

그래도 뭐. 새벽에 깨워서 싫은소리해도 화 안 냈으니 봐 주지 뭐.

더 기다려도 밥 먹으라고 사정할 것 같지도 않고...망설인다.

어서 와서 먹어, 먹고 힘내서 또 싸우더라도...

더 이상 뭘  바랄까... 히... 웃고 식탁에 앉았다.

오늘 아침 식탁엔 내 밥그릇도 있고 수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