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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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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들...참...


BY 솔바람소리 2008-11-19

가을과 같은 날씨 탓에 만만하기만 했던

입동 지난 요즘이었다.

갑자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지니 거리를

나선 사람들의 어깨들이 하나같이 움츠려있었다.

단풍으로 물들었던 잎이 무성했던 나무들도 하루사이에

헐벗고 뼈대만 앙상해졌다. 진정한 겨울이 시작된듯하다.

 

오전의 가사 일을 대충 마치고 컴퓨터 앞에 좀 앉아

있다가 봐야할 책장을 몇 장 넘겼을 뿐인데 훌쩍 오후 2시가

넘어버린, 딸아이 학원 가방 가져다 줄 시간이 되어있었다.

허둥지둥 가방을 챙기고 자전거에 올라서 페달을 밟고 달리는데

학교와 가까운 길목에서 6명의 아줌마무리들이 길을 막고 섰다.

하나 같이 시린 얼굴의 콧등이 루돌프 코처럼 빨개져서는 비켜주지

않겠다며 잡고 늘어진다.

자식들이 맺어준 인연으로 비롯된 그 만남들은 학교와

맞붙어있는 도서관의 벤치에서 보통은 2시부터 4시까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었지만 나는 좀처럼 그 모임에

참여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하나같이 친분 있는 그들이지만 매일 앉아서

아이들의 얘기로 시작해서 학교선생님들 얘기로, 다시

주변사람들을 걱정하고 앉아있는 그들의 광범위한 대화를

두 귀로 받아서 작은 마음으로 지탱할 재간이 내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가정을 벗어나 유흥과 여가를 위해 즐기러 다니는 것보다

또는 집구석에 앉아서 TV를 끼고 앉아 있기보다 어쩌면

아이들을 맞이 할 때까지 다양한 얘기꺼리들을 공유하는 것도

좋을 테지만 내 정서와는 좀체 맞지 않는 그 모임이다.

어쩔 수 없이 끌려(?)갔던 두어 번의 기회조차 중간에

일어나고 말았던 인내력 부족한 나였다.

한결같은 그 모임의 맴버를 소개하자면,

 

44세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앳되고 예쁜, 그중

나와 알고지낸 인연이 큰 아이 입학한 날부터 비롯되어

어느덧 8년째로 접어드는 결한이 엄마는

늘 나를 ‘자기야’라고 부른다. 나는 요지부동 ‘결한이 엄마’란

호칭을 고수하며 여러 가지 추억거리들을 공유하며 지금까지

만남을 이어가고 있다.

 

영석이 엄마는 39살로 나보다 한 살이 많은데 그쪽에서

먼저 친구로 터놓고 지내자며 내게 다가왔던, 아영이 1학년 때부터

알고지낸 성격이 무난한 친구다. 장신구를 좋아하며 관심이

많아 늘 치장하기를 좋아하는 천상 여자일 수밖에 없는

정 많은 친구다.

 

형정이 엄마는 37살로 그녀의 큰 아들과 아영이가 1학년 때

같은 반을 하며 알게 된 인연인데 누구를 막론하고 ‘언니’라 부르는

붙임성 때문에 오히려 거부반응을 느낀 나는 거리감을

뒀는데 자신의 아픔에 대하여 전화로 조언을 구하며 다가온 만남으로

겉과 다른 깊이 있는 속을 알게 된 어여쁜 동생이다.

 

그중 제일 연배인 48살의 현영이 엄마는 생긴 모습은

가녀린데 행동은 껄렁껄렁, 오히려 그 모습이 친근감을

주는 것도 같고, 모두가 ‘언니’라 부르지만 나만 ‘현영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을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다. 별로 친한 사이는 아니지만

그녀 역시 정이 많은 사람이란 것을 느낄 수 있다.

 

42살의 여장부처럼 씩씩한 민영이 엄마는 5살 막둥이를

늘 달고 다니며 하얀 치아를 들어내 놓고 웃는 얼굴이 보기

좋다. 우리들의 호칭은 늘 ‘~엄마’다.

 

34살의 성철이 엄마는 아직도 나이가 제일 막내라

그런지 두 아이의 엄마라고 믿기지 않을 풋풋함이 묻어있는

내 눈에는 여대생으로도 비춘다.

 

6명의 멤버 속에 오고가던 안면 있는 사람들까지

몰려들면 그 공간은 수다들의 소음공해로 접시를 떠나서

그 튼실한 도서관 건물까지 무너트릴 것도 같다.

대단한... 무서운...집단이다.

그 속에 참여하지 않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전화를 주거나

때론 내 집을 찾아와서 차를 마시며 근심거리들을 털어놓기도

하는데 간간히 왜 그 속에 끼지 않느냐고 불만처럼 털어놓을

때가 종종 있다.

보통을 넘어선 그들이 모처럼 길에서 마주한 내게 추운

날씨에 편의점에서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보내주지 않겠다며

잡고 늘어졌다.

아영이 때문에 빨리 가야 한다고 조급증을 내니 아직

종례하려면 시간도 남았고 핸드폰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며

붙잡았다.

여자들 몇 명이 길에 서서 말 몇 마디만 뱉어냈을 뿐인데

나는 벌써 정신이 하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런 소란 통에 내 눈으로 형정이 엄마의 검지 손가락의

칭칭 감긴 붕대가 들어왔다.

 

“야, 너 손이 왜 그래?”

내가 놀라서 물으니

“응, 언니 내가 엊그제 17대 1로 싸웠다는 소리

못 들었어?“

하며 좀은 넘치는 표정으로 답을 했다.

“헉, 그게 너였냐? 내가 신문 봤잖어.

유치원생 17명과 싸운 아줌마 얘기... 그게 너였어?“

 

내가 한술 더 뜬 말로 대꾸하니 아줌마들 모두 뒤로

자빠지려했다.

 

“역시, 언닌 달러. 누군 내가 그렇게 말했더니

‘정말?’하며 놀라던데... 칼질 하다가 손을 베서

몇 바늘 꿰맸어.“

“조심하지... 애들이 고기 먹고 싶다고 해서 혹시

네 살 뜯어 먹이려고 했다면 그런 짓 다신 하지 말고

내게 얘기해라. 까짓 고기 내가 산다...“

 

말 몇 마디 나누다가 어쩔 수 없이 편의점에

이끌려 들어갈 판에 때마침 핸드폰 소리 요란하게

울리며 아영이가 날 찾았다.

아우성을 뚫고 딸을 향해 찬바람을 가르며 달려가는

내 뒤통수를 대고 기다릴 테니 얼른 다녀오라는 말들을

던졌다. 그곳에 다시 합류할 생각 없는 내가 혹시라도

그들이 눈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까봐 고개 돌려 대꾸

한마디 했다.

 

“기다리지마!!! 나 얼른 집에 가야해. 떡 붙여 놓은 거

누가 떼먹으면 안되거든!!!“

 

개인적으로 하나같이 괜찮은 그들인 줄 안다.

내가 집단처럼 모인 그들과 섞이지 않는 것은

어쩌면 틀에 박힌 관념을 벗어나지 못한 내게 문제가

많은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조용해야할 공공장소에서 소란스런 모임을 갖고있는 것보다

소란스런 시장 통 한복판이라도 한쪽에서 보따리를 풀러놓고

냉이 한 소쿠리와 다듬은 쪽파를 내놓고 팔려고 나와 앉아 있는

할머니와 주고받는 얘기를 마다하지 않는 나를 그들이 언젠가

독특하다 표현한 적이 있었다.

내가 정말 독특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