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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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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러봅니다. 그리운 이름들을.


BY 선물 2008-11-11

어릴 때 나는 분명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정이란 것은 때로 절제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이 상처를 덜 받는 길이 되기도 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지, 억지로 감정을 조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모르는 사람들과 마음을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안 것은 한 카페를 통해서였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카페에 가입하게 된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다독이며 공감할 수 있는 세상이 참 신기했다.

나이가 어린 이들은 나를 언니라고 부르며 다정한 댓글로 반겨주었고 처음에는 어색하기만 했던 나도 차츰 익숙해지면서 그 분위기 속으로 급속히 빠져들었다.
어느 하늘 아래 어느 공간에서 숨쉬고 있는 지도 몰랐던 이들이 친동기처럼 가깝게 다가오며 점점 절제되지 않는 따스한 정들이 차곡차곡 차오르고 있음을 느끼게 된 날들.
너무 긴장이 풀리고 만만해진 탓이었을까, 깜찍한 어조로 유쾌한 장난이라 생각하며 올린 글이 카페 주인인 어떤 분의 심기를 건드린 일이 발생했다.
글은 말처럼 어떤 높낮이나 기교가 없는 무생물이다.
어떤 마음으로 읽느냐에 따라 같은 내용의 글도 180도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말이란 것도 <아>다르고 <어>다른 법인데 글이란 것은 뱉어내는 사람의 표정도 없는 지라 오해를 하자면 얼마든지 뒤집혀 해석될 수가 있었다.
호의를 담았던 글이 그분의 마음을 다치게 했고 나는 당황했다.
자신에 대한 신념이 무척 강했던 분이라 왠지 모르게 그분 앞에선 조심스러웠는데 그일로 인해 나는 더욱 위축되고 주눅들기 시작했다.
오해를 풀기 위해 동동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일까 회의를 갖기도 했다.
내 노력에도 불구하고 개운치 않은 감정이 조금은 남아 있었던 것인지 그 후로도 자잘한 일들로 계속 그분과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다가 내게 피치 못할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어 그분께 양해를 구하고 탈퇴와 가입을 번복했던 일이 몇 차례 계속되었다.
그런데 그 당시 선거가 있어 정치적으로 다들 예민했던 시기라 그 카페에서도 갑론을박 시끄러웠던 것 같다.
그 와중에 서로 상처주고 상처 받으며 카페를 떠난 이들이 제법 있었다. 카페 주인은 나도 그들과 같은 시기에 탈퇴했던 것이 맘에 걸렸는지, 아니면 평소의 내가 맘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나를 강퇴시키고 말았다. 친하게 지내던 정든 이들과의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었다. 메일도 자주 주고 받던 이들이었는데 그때 있었던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그들과의 메일도 다 삭제했던지라 어쩔 수 없이 연락이 끊기게 되었다. 그때가 아마 아컴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컴 앞에 앉을 여유도 없던 시기였을 것이다.

그러다 여유가 생기자 그들이 궁금하고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오프라인에서 따로 연락하고 만나지 않는 한은 정말 친하다고 생각했던 인연조차 물거품 되는 것이 한순간에 불과했다. 게다가 나처럼 소통의 공간으로 들어갈 수 없게 되면 정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조차 알 길이 없다.
4년 만에 나는 다시 그곳을 찾았다. 카페 이름도 바뀌어 어렵사리 찾게 되었다. 손님이 되어 들어간 그곳엔 아직 몇몇 그리운 님들이 발길 한 흔적이 남아 있긴 했으나 예전의 활기는 간 곳 없고 쓸쓸해 보였다. 손님의 자격으로 볼 수 있는 글은 극히 제한적이었지만 그래도 몇몇 님들의 안부 정도는 훔쳐볼 수 있었다. 그곳에 다시 가입할 수 있는지를 묻는 글을 남겼다.
그 글에 대롱대롱 반겨주는 이들의 댓글이 달렸는데 어찌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주인인 분은 단호했다.
나와 성향은 매우 다르지만 나는 그분의 그런 단호함을 존중했고 어떤 면으로는 그것을 매력으로 느끼기도 했던 터라 순순히 마음을 접었다. 그후 나는 접근금지회원이 되어 있었다. 씁쓸함은 있었으나 수긍했기에 상처는 없었다.

온라인에서의 인연이란 어떤 의미일까.
때론 안개 같기도 하고 때론 허방 같기도 하다.
그동안 인터넷으로 맺은 인연이 오프라인으로 연결되었던 것이 몇 번 있었다.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웠는지, 그리고 생생한 존재감을 느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때론 글로 새겨진 이미지와 달라 어색한 면도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그 부분은 극복해 내야 할 부분이다.

물론 온라인에서의 만남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힘든 시기를 글로써 함께 해주는 이들의 응원이 있어 힘을 얻게 되는 것 만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는 그 은혜를 직접 입어 본 사람이라 잘 알고 있다. 그래도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사이로 다 빠져나갈까 조심스럽다.
지나간 글들을 잠시 들춰보다가 문득 느껴지는 서글픔이 있어 또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었다.

여러 상황들로 인해 먼저 손 내밀어 만나지는 못해도 그래도 이곳에서 좀 더 오래도록 함께 해주었으면 싶은 좋을 인연들이 너무 많이 사라졌다.

불러보고 싶은 이름들. 그러나 이젠 이 글을 보지 않을지도 모를 분들.
다들 개인적인 사정이 계시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렇게 한번 더 그분들을 부르며 마음을 전한다. 바람처럼 스치듯이라도 전해지기를 바라면서.

먼저 나를 이곳으로 불러주신 영원한 글친구 바다새님.
처음 아컴이 낯설기만 할 때 따뜻이 내 글을 안아주신 골무님.
자상하신 선생님처럼 나를 이끌어주신 밥푸는 여자님.
그리고 따뜻한 댓글로 저를 데워주신 아리님, 설리님, 마당님, 얼그레이님, 캐슬님, 꿈꾸는 바다님, 산골향님, 안단테님.
또 함께 글올리며 동료같았던 연경님, 햇살님,빨강머리 앤님, 최지원님.
그리고 다시 이곳에 나타나 거목처럼 우뚝 서 계셔야 할 도영님, 동해바다님, 이쁜 꽃향님.
큰언니 같은 최근 주춤하신 은지네님. 찔레꽃님.

그리고 사실 이 글을 꼭 쓸 수 밖에 없는 심정이 되게 해 주신 님들이 있다.
엎드려 절을 드리고 싶은 고맙고 그리운 이름.
내가 너무나 절박할 때 기꺼이 내 편이 되어주신 분들.

패랭이님. 라메르님, 소심님.(소심님은 가끔 뵙지만...)

 

아주 가끔이라도 이곳에서 함께 해주시는 분들은 지금 목이 간지러우면서도 애써 참으며 더 부르지 않습니다. 그 이유를 다들 헤아려 주시리라 믿구요.

2003년에 처음 이곳에 온 뒤로 1년씩 이곳을 떠난 날들도 있었지요.
사람 일은 알 수 없기에 오래도록 부르지 못한 님들을 불러보았습니다.

제 인사를 받을 수 있는 분이 많으셨으면 좋겠고 다시 뵐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