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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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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버지...(3)


BY 솔바람소리 2008-10-24

내가 엄마에게 향한 간절한 사랑과 상관없이

나 때문에 그 험한 꼴을 당하는 내 엄마라니...

바닷내로 비릿하고 땀내로 시큰해도 모든 것에

예민했던 나였지만 엄마의 향기라면 뭐든 좋았다.

따뜻한 엄마의 품이 좋았다.

엄마의 품이면 행복했다. 어떤 것에 비유하지 못할 정도로

내 엄마를 사랑했다.

나의 그런 사랑과 상관없이, 의지와 상관없이

이모는 나 때문에 엄마가 힘들어져 버렸다고 했다.

나 때문에...

왜... 왜 나 때문에 엄마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세상 버겁게 살아야 하는 내 앞날은 어쩌라고

정말 힘든 것이 누군데... 엄마의 가슴 아픈 희생이

이모는 나 때문이라고 했다.

나 때문에 아빠가 그런 돼먹지 않은 인간이 되어버렸다니

억울했다.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이모가 미웠다.

어린 나이에 나는 엄마와 내 동생들, 그리고 외할머니 말고는

세상 모든 것을 원망했던 것 같다.

늦은 밤, 엄마는 간간히 동생들을 놔두고 초등학생 딸래미를

등에 업고 돌부리에 걸려 뒤뚱거리다가도 용케 넘어지지 않고

좁은 논둑을 지나서 사람들의 발길을 피해서 부둣가와

한참을 떨어진 어두운 갯벌로 향하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는 그때마다 세상 살아가기 힘든 딸과

바다 속으로 첨벙 들어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엄마를 너무나 사랑하는 철부지 딸은 코와 닿은 따뜻한 엄마의

등에서 행복한 마음으로 들썩거리기만 했다.

“엄마가 좋아. 업어준 것도 좋아.

엄마도 좋고, 냄새도 좋고...엄마 나 무겁지 않아?”

대꾸 없는 엄마에게 계속해서 주절대던 내게 엄마는

한참 만에 말을 이었다.

“엄마는 너 때문에 산다. 니 동생들은 걱정하지 않아.

너만 걱정한다. 너 때문에 내가 참고 산다. 니가 내가

살아가는 힘이다...“

그때 나는 왜 엄마가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하는구나, 라고만

생각했을까. 엄마 스스로 최면을 걸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단지 엄마는 내 동생들보다

나만을 제일 사랑한다고만 생각했고 그래서 행복하기만 했다.

그런 날 밤이면 더 이상 밤이 두렵지 않았다.

서글프도록 외로운 마음으로 동생의 손을 잡고, 때로는 엄마의

손을 잡고 피신해야했던 그런 밤들을 야속하게 방관하며 바라보던

달과 별을 용서 할 수도 있는 밤이었다.

억새풀을 뜯어서 풀피리를 불어주는 엄마를 흉내 내며 마냥 행복하기만

했던 밤이기도 했다.

그런 날 밤마다 엄마가 세상을 등지고 싶어 하는 절망감에서

허덕이고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던 철부지였다.

 

 

왜 아빠는 엄마를 범한 것일까,

17살 꽃다운 내 엄마를 몸뚱아리 외에 가진 것 없는

19살 아빠가 무슨 배짱으로 엄마를 범한 것일까.

그리고 왜 엄마는 바보같이 그런 아빠에게 몸을 줘버린 것일까...

엄마도 살면서 그 날을 후회했기에 남자들은 모두

늑대라며 여자의 몸가짐에 대해서 내게 누차 말했던 건지도 모른다.

양계장 집 막내딸로 귀하게 살던 엄마는 야밤도주를 하기 전날까지도

외할머니의 팔 베게로 잠이 들만큼 사랑받고 살았다고

어리시절 우리들의 밥을 해주던 외할머니께서 간간히 한처럼

되뇌어 말씀하셨다. 내 엄마가 내 아이들에게 “니 엄마는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할머니랑 살겠다고 했었다.“ 라고 했던 한스런

말처럼...

 

우습게도...

나는 내 엄마의 그런 간절한 바램에 어긋나게

몸가짐을 조심하지 못했고 내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스무 살이 넘도록 엄마의 등에

서슴없이 업힐 정도로 두터운 사랑 속에서 살았었는데...

운명의 장난질에 말려든 것처럼 엄마의 삶을 그 딸도

비슷하게 되물림 받고 말았다.

 

다부지고 인물도 잘생긴 외모의 청년에게

엄마는 반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내 남편에게 싹 틔운 연민처럼

내 엄마도 어린 나이부터 험한 세상을 떠돌며

살아가는 남자가 불쌍했던 마음에서 비롯된 삶이라고 했다.

 

남몰래 만남을 가졌던 두 분이 통금시간에

걸려서 예견치 못했던 밤을 보내던 날 밤,

내 엄마에게 두려워 말라며 손만 잡고 자겠다고

누차 손가락까지 걸며 약속 하셨다고 했다.

드라마 속 흔하디흔한 요즘 연인들의 레퍼토리처럼 내 엄마는

아버지의 그 말만 믿고 까만 밤 한 남자와

밤을 보내게 됐고 어이없이 내가 들어서고 말았다고 했다.

남녀가 뽀뽀만 해도 임신이 되는 줄 알던 순진한 엄마였기에

남부끄러운 행위에 대한 불안함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쯤, 내가 엄마의 태중에 있다는 것을 엄마는

외삼촌이 즐겨보는 잡지책을 몰래 훔쳐보다가

알게 되었다고 하셨다.

가명의 S양, K양...등의

경험담 속에 나오는 그녀들의 증상들과 흡사한 엄마의

몸의 변화에서 깨닫게 되었다고 하셨다.

 

월경이 멈추고 좋아하던 음식들을 보면 속이 매스꺼웠던 것이

‘제발’ 무서운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랬던 일이 내 엄마에게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버린 순간

엄마는 아버지께 달려갔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실수를 당연한 듯 받아들였고 그 길로

내 엄마를 데리고 <선술집>을 하시는 자신의

엄마인 나의 친할머니에게 가셨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