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착하제? 날마다 산에 잘 다니니까.\"
\"아니, 산에 안 가는 것이 더 좋아.\"
\"왜?\"
\"산에 가는 날은 어깨 팔 다리 아프다는 증거니까.
안 아프면 산에 안 가잖아.\"
\"나 참, 그 말도 맞네. 어쩜 그렇게 아는 것도 많을까.\"
남편은 출근하려고 나는 산에 가려고 신발 신다가
산에 잘 다니니 칭찬해 줄 거다 하고 던진 말 이었는데
본전도 못 찾았다.
이틀만 집안 일 하느라 산에 안 가면
당장 발목부터 시큰거린다.
게으름 피면 바로 탄로가 난다.
어느 날은 남편 눈치보다 억지로 산에 올라가고
날씨가 마음에 들지 않는 날엔
운동화까지 신었다가 다시 벗어 버리는 날도 있었다.
오늘은 왠지 기분이 좋아
아무도 없는 산 입구부터 소리 내어 노래를 불렀다.
그저께 내린 약간의 비로
허연 먼지를 씻어낸 듯
풀숲까지 숨소리들이 상쾌하여 내 발 걸음도 가벼웠다.
간간히 아직 노란 깨알 같은 꽃잎을 자랑하며
쉬이 가는 가을을 붙잡고 있는 야생화를 찾아보며 걸었다.
눈 가는 곳마다 한 편의 시(詩)가 살아있건만,
재주 없어 옮겨오지 못하니 안타까웠다.
걷다보니 봄이면 진달래 철쭉이 반겨주고
여름이면 시원한 바람이 있어 좋아 하던 길목에 들어섰다.
바쁘게 걸었던 어제는 느낄 수 없었는데
오늘은 준비 된 마음이었나.
너무 아름다운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무대를 꾸미고 있는 가을이 거기 있었다.
그 푸르렀던 나무 잎들을 밤사이에 떨구어 내고
수많은 솔잎마저 비처럼 쏟아지게 하여
온통 길을 덮어 놓았다.
나는 레드 카펫이 아닌 솔잎 카펫을
사뿐 사뿐 밟으며
소녀가 되어 인기인처럼 멋지게 걸어 나갔다.
다시 돌아보니 정말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잠시였지만,
오랜만에 나이를 잊고
나로 돌아 가 보았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어쩐지 아침부터 기분이 좋더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