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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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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버지...(2)


BY 솔바람소리 2008-10-24

세상에서 내 엄마에게 ‘해(害)’를 입힐 사람은

오직 한사람 뿐...

어여쁜 엄마가 하루아침에 마귀할멈처럼

입가가 쭈그러지게 만들 사람은 딱 한사람 밖에 없었다.

 

나와 동생이 외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

엄마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다.

엄마에게 무슨 일을 제공했을 아버지에게

나는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가 또 때렸어?!”

엄마의 대답을 기다리는 잠깐 사이에도 내 가슴은 마구 떨렸다.

“아니...” 엄마가 태연하게 대답하셨다.

“그런데 왜 이가 없어.”

엄마의 치아가 하나도 없었다. 윗니 아랫니 모두...

파파할머니처럼, 마귀할멈처럼... 그 젊은 나이에

예쁜 우리 엄마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늘 생선비늘 덕지덕지 붙은 우비차림이었던 엄마가

학교에 올 때면 재투성이 신데렐라가

마법의 힘으로 아름다운 공주의 모습으로 변한 것처럼

긴 머리를 늘어트리고 세려된 옷차림과 그만한 화장으로

한껏 멋을 내고 장화를 벗은 발엔 뾰족 구두를 신고 있었다.

내 엄마는 동화 속의 공주보다 어여뻤다.

또래의 엄마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와 앳된 내 엄마의

학교방문이 있은 날이면 다들 “네 엄마 정말 이쁘다.” 라는

소리를 자랑스런 마음으로 듣곤 했다.

부실한 몸으로 기죽지 않고 학교생활 잘하는 딸래미를 향해서

내 엄마는 새하얀 이를 들어내며 활짝 웃어보이곤 했다.

눈이 부시게 예쁜 엄마의 미소가 나는 행복했었다.

내 엄마의 새하얀 이... 그 이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친구들 앞에서 더 이상 자랑스러울 일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나는 눈물이 나오려고 했지만 애써 참았던 것 같다.

왜, 이가 없어...라는 나의 질문에 tv에 집중하던 아버지께서

고개를 돌리고 엄마를 대신해서 대답을 하셨다.

 

“엄마가 부엌에서 넘어졌어.”

“...... 정말이야?”

아버지의 이외의 대답이셨다.

괜한 의심을 한 것이 아니었나, 하지만 완전한 믿음이

들지 않아 여쭈었는데 엄마가 “응...”하고 대답하셨다.

응... 간단한 대답이셨다. 나보고 늘 행동을 조심하라더니

엄마가 덜렁대다 하고많은 중에서도 부엌에서 넘어지셨다니

어떻게 넘어지면 앞니가 몽땅 빠질 수 있는 건지 영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엄마의 눈이 부시게 새하얀 치아를 나는 다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생니 빠진 엄마의 고통이 어땠을지 가늠하기 보다는

그나마 아버지께서 하신 일이 아니라니 다행이다, 싶었다.

철부지 어린 딸은 앞으로 엄마는 학교에 올 때마다

마스크를 하고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쓸데없는 걱정도 잠시, 일주일 만에 만난 막내 동생과

놀아주던 나는 다시 마루에 있는 엄마 곁으로 쪼르륵 달려갔다.

엄마가 밖으로 나가시려는지 입고 있던 원피스를

벗고 외출복으로 갈아입는 것이 보였다.

까맣게 탄 얼굴과 팔뚝과 달리 속살이 백옥처럼

하얀 엄마의 몸뚱이에 입가보다 더욱 또렷하게

남아있는 검붉은 멍 자국이 큼지막한 모습으로

곳곳에 있는 것이 내 눈으로 들어왔다.

운동장만한 부엌에서 넘어져서 굴렀다고 하더라도

그런 멍 자국이 생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두 평 남짓한 부엌에서 어찌 넘어졌길래 그런

무식한 멍이 생겼다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몸이었다.

“엄마... 아빠한테 맞았지?!”

떨리는 목소리로 내가 다시 물으니 엄마는 한사코

아니라고 했다. 그 모습을 내게 들킨 것이 창피한 듯

엄마는 살짝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한사코 아니라는 엄마의 말을 뒤로한채 안방에서

태연하게 tv를 보는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아빠가 또 때렸어. 그치?! 아빠가 또 엄마 때렸다고!!!

나는 아빠가 싫어!!! 거짓말쟁이 아빠가 싫어!!!

매일매일 그랬어!!! 아빠는 매일 엄마를 때렸어!!!

아빠가 미워! 아빠가 정말 미워!!!“

싫지만 두려운 아버지에게 나는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겁도 없이 울부짖으며 목청을 높였는지 모른다.

엄마의 손에 이끌려서 안방 밖으로 나와야 했지만

나는 쉽게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이 승복 어린이가 ‘공산당이 싫어요’ 했을 때도

나 같은 증오가 끓어올랐을까,

나는 아버지가 공산당보다도 싫었다.

그리고 늘 당하고만 사는 엄마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또 내가 한없이 싫었다. 내가 없었더라면

우리 엄마는 그런 수모를 당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내가 원인이었다.

내가 엄마를 그렇게 만들어 버렸고

아버지를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너 때문이야, 니 애비가 변한 것이...”

둘째 이모는 맞고 사는 막내 동생이 가슴 아플 때면

내게 그런 말을 해댔다.

모든 것이 내 탓이라고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