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물고기 우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014

아...아버지...(1)


BY 솔바람소리 2008-10-24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딸래미... 아빠야...”

술에 잔뜩 취한 친정아버지셨다.

“응...아빠 술 많이 드셨네?”

나는 살가운 목소리로 아버지의 전화를 반겼다.

“응...오늘 마을 이장들하고 술 한 잔 했지...딸래미

밥 먹었어?“

혀가 잔뜩 말린 아버지께서 발음에 신경 쓰듯 느릿

하게 말씀하셨다.

“난 먹었지, 아빠는?”

“응...먹어야지...엄마는 요즘 잔업을 한다고 10시가

넘어서 들어와서...아빠는 외롭다...“

그렇게 시작된 아버지의 말씀은 한참동안 이어졌다.

흐느낌에 묻힌 어눌한 목소리가 간간히 섞여있었다.

아...내 아버지는 내게 이런 적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으신 분이셨다.

아버지의 울음에 나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내 아버지도 늙어버리셨다. 약해져버리셨다...

\"딸...미안하다... 아빠가 늦게 철이 들었다...\"

아버지께서 잔뜩 말린 혀로 내게 용서를 구하셨다.

나도... 이제서야 아버지를 완전히 용서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아버지... 나도 죄송해요...

 

 

 

결혼 16년 세월 동안 아버지께서 내게 손수 전화를

걸어 주신 적은 다섯 번도 안 될 듯하다. 그 다섯 번도

작년과 올해에 이뤄진 것이 아닌가싶다.

딸래미 고생시키는 사위가 미워서,

그런 남자와 반대를 무릎 쓰며 사는 딸이 미워서였을까...

아버지는 내게 전화를 걸어주신 적이 없으셨다.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엄마를 고생시키는 것도 모자라서

아픔까지 주시는 아버지가 너무도 싫었다.

바닷가로 끌고 다니며 보통의 남자들도 하기 힘든

뱃일을 시키면서도 미안함은커녕 폭행까지 일삼는

아버지가 싫었다.

불같은 성격에 성미까지 급하신 분.

모두가 도리질 칠만큼 일 욕심도 많으신 분...

어쩌다 빠진 노름의 덫에서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하셨던 분.

집까지 몇 채 날리셨지만 때마다 밤잠까지 줄여가며

일을 하셨고 날린 돈을 머지않아 모두 만회하신 분....

그런 남편 때문에 허리 펼 날 없이 매일 여자가 감당하기에

벅찬 노동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내 엄마가 불쌍해서...

그 희생이 가여워서 나는 아버지가 싫었다.

술만 드시면 폭력성이 심해지는 아버지의 희생양은

엄마와 큰 동생이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내게만은

손을 대지 않던 아버지였지만 나는 지켜보는 것만도

두려웠다. 아버지는 내게 있어서 단지 싫고 두려운 존재일 뿐이었다.

엄마의 당부 때문에 그마저도 들어 내놓고 표현하지 않았을 뿐...

반면 나는 엄마를 몹시도 사랑했다. 아버지 몫인

사랑까지 모두 엄마에게 드렸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증오는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5~6학년 때였을까

일주일에 한 번씩 들르던 집에 가던 날이었다.

바닷가에 계실 줄 알았던 부모님께서 집에 계셨다.

빈 집이 아니라는 기쁨으로 수돗가에 막내를 씻기고 계신

엄마에게 달려갔을 때...

나를 품에 안아주던 엄마가 살짝 고개를 돌리셨다.

“밥은 먹고 왔니?” 하시는 엄마의 발음이 약간 이상했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집에 계신 부모님만 반가워서 가방을 팽개치고 냉장고를

뒤져서 간식거리를 찾았던 것 같다.

아마도 바다 속 고기들의 산란철이라서 어업이 일시

중지됐을 때가 아니었나싶다.

안방 tv 앞에 누워계신 아버지께 인사하는 것도 잊지 않고

잠시 내방에 들렸다가 다시 안방으로 들어갔을 때...

엄마가 막내의 벗은 몸에 옷을 입히고 계셨는데 얼굴의 한쪽이

거무스름한 것이 보였다.

연탄을 갈다가 검정이 묻은 줄 알고 나는 옷소매를 끌어내려

엄마의 얼굴을 닦았는데 엄마가 “아...” 하는 신음소리를 냈다.

“아...” 하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온 엄마의 입 쪽으로

다시 내 눈길이 쏠렸다.

엄마의 얼굴이 변해있었다. 그 중에서도 엄마의 입이 이상했다.

그 모습에 나는 ‘철렁’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걸 느꼈다.

내가 없는 동안 엄마에게 또 무슨 일이 생겼던 것이다...

그동안 엄마가 아버지께 겪었던 폭력의 영상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 속을 떠다녔다.

 

밤이 싫었다. 불안한 밤이...

달리기도 못하는 내가 숨을

헐떡이며 달빛에 의지한체 돌부리에 채이지 않으려고

신경 쓰면서 개구리 소리 시끄러운 밤길을, 때론 귀뚜라미,

여치, 계절마다 밤이 내는 소리는 철마다 달리 피는 꽃처럼

변해있었다. 잠들지 않은 온갖 풀벌레의 울음소리들로 시끄러운 밤...

그런 밤길을 나는 잠에 취한 동생의 손을 이끌고 귀신이

매일 밤 울고 있다는 우물가를 겁도 잃고 지나쳐서

이모네 대문까지 동생을 피신시켰다.

엄마가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떨치지 못하고

이내 집으로 향해야 했던 밤이 싫었다.

외로운 밤이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밤이었다.

일상적인 그 일을 방관하는 가까이 살고 있는 둘째 이모네도

싫었고 이웃들도 싫었다. 그런 시간을 만들어주는 밤이 싫었다.

그런 일을 매번 만드는 아버지가 싫었다.

때론 그렇게 당하고만 있는 엄마가 싫기도 했다.

그리고 불쌍한 내 엄마이기도 했다.

 

술 취한 아버지를 찾아다니던 엄마는

밖에서부터 머리채를 잡아끌려 들어와서 발길질을 당하기도 했다.

또 어느 날 밤엔 잠들어 있는 엄마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셨다.

엄마는 갓난쟁이 막내가 다칠까봐 끌어안고 책상

속으로 등을 보이며 들어가 계시기도 했다. 그 등판을 내 아버지는

두꺼운 빨래판으로 ‘퍽퍽퍽...’ 한여름 뙤약볕에 빨래 줄에 걸린

이불을 터는 것처럼 때리셨다.

큰 동생을 이모네로 피신시킨 나는 그때마다 매번 아버지의

다리에 매달려서 그만하라고 사정을 해야만 했다.

이성을 잃고 엄마를 때리던 아버지는 내 울부짖음에 지친 듯

엄마에게서 떨어지셨고 바닥에 누워서 이내 잠이 드셨다.

그 모진 매를 맞고도 엄마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고 계셨다.

나는 그런 엄마의 등을 잡고 엉엉 소리 내어 울어버렸다.

그런 일을 겪고도 다음 날 새벽이면 아무 일 없었던 듯

바다로 나가셨던 내 부모님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