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남쪽 지방에 있는 절친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른 선배의 일산에 사는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문상을 갔으면 했다. 남편 치료때문에 요즘 같은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다.
잠간 머뭇거리다가 \'글쎄요\' 하다가 \"내일은 남편과 언어치료도 가야하고 모레 출상이면 같은 경기도라도 길이 멀어 아마 그 시간 안에 도착 못할 것 같아요\"
가기 싫었다. 괜한 핑계다. 오늘은 병원개원기념일이라고 치료가 없는 날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데.
오래 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남의 초상에 문상을 가면 그 분이 돌아가심이 서러워서 우는 것이 아니라 엄마가 그리워서 목 놓아 우는 통에 상주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어 황당하기도 했다. 성당에서 장례미사가 있는 날에도 생전 알지도 보지도 못한 망인의 영정을 보며 울고, 폐암에 걸려 죽은 절친한 이웃의 아줌마죽음에는 며칠 째 밥을 목에 넘기지 못할 만큼 울었었다.
그 이후로 남의 초상에는 웬만해서는 가지 않았다.
그리고 눈물도 흘리지 않았고.
아이들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 남편의 의처증이 극에 다 달았을 때 기막힌 의심을 받아 너무 분하고 억울해서 이틀 밤낮을 운 적이 있었다. 결국 남편도 감당을 못해 내 친구들을 부르고..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병원 정신신경과에 실려가기도 했던 적도 있었다.
의심당하는 사람보다 의심하는 당신이 더 힘들어 보여서 생각을 바꿨다. ‘그래 마음대로 해봐, 나만 아니면 되니까’ 아니, 아이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는 나약한 엄마가 되면 안되니까. 스스로 독종이 되었다.
눈물샘을 막는 수술을 한 적도 없는데 그 후로는 거짓말처럼 눈물이 나지 않았다.
2년 전, 남편이 뇌경색으로 언어장애가 왔을 때 막혔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병원에 입원해서 어,어 ..만 하는 남편이 너무 기가 막혔고, 알아듣지 못하는 남편에게 손짓발짓해가며 대화를 시도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억장이 무너지면서 눈물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병문안을 오는 사람 앞에서도, 전화로 상태를 묻는 지인들에게도 말보다 눈물이 먼저 답하곤 했다. 6개월쯤 지나면서 내 눈물샘을 막는 다른 이유가 생겼다.
거꾸로 남편이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어리둥절 지나다가 차츰 인지가 돌아오면서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다는 현실 앞에 표현은 눈물로 드러냈고 종내는 통곡으로 변하여 수습하기가 여간 난감하지 않았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고 했던가.
-태어나면서 울고 나라가 망하면 울고 부모가 죽으면 운다-
언어장애가 온 남편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냥 病(뇌졸중) 앞에 나약한 인간일 뿐이었다.
남편의 속절없는 울음은 거짓말처럼 내 눈물샘을 막아버리고 대신 나를 독하게 만들었다.
\'여보 실컷 우세요. 속에 든 울분을 다 토해 내세요. 그리고 다시 일어섭시다. 당신은 할 수 있어요. 열심히 운동을 하고 언어치료도 받으면 다시 예전처럼 말을 할 수 있을거예요\'
우는 남편의 등을 토닥거리며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언어치료, 음악치료, 작업치료, 뇌파진동을 받으면서 조금씩 말을 알아듣고 글을 알아보기 시작하고, 간단한 단어는 쓸 수 있게 되면서 눈물 흘릴 틈도 없이 노력을 했고 돈과 시간과 혼신의 힘을 투자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성급한 마음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돌아오지않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이 병은 더, 더,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막연한 이야기는 남편에게 먼저 절망을 안겨주었다.
술을 먹기 시작하고 담배개비가 늘어갔다. 술은 과음만 아니면 조금씩 먹어도 되지만 담배만큼은 절대 피우지마라고 의사도, 같은 뇌졸중환자들도 말하지만 답답한 남편이 풀어낼 수 있는 건 한모금의 담배가 더 절실 했던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희망은 차츰 절망으로 변하였고 남편도 나도 우울해졌다. ‘이대로 그냥 멈추는건 아닐까. 영영 말도 다 알아듣지 못하고 벙어리처럼 하고 싶은 말을 못하고 살아야 하는건 아닐까.‘
저녁을 먹고 마트에 갔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깜깜한 복도 끝에 누군가 서있다. 남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밤중에 무심히 내뿜는 담배연기 속에 남편의 모습은 너무 허망해 보였다. 가엽다. 너무 가슴이 아프다.
명치끝이 아리면서 갑자기 눈물이 울컥 치민다. 장 바구니를 문앞에 놓아두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막혔던 눈물샘이 터져버렸다.
그냥 울었다. 놀이터를 빙빙 돌면서, 흔들거리는 그네에 앉아서, 시소에 앉아서, 그치지않는 눈물은 초등학교 운동장을 돌면서 계속 흘렀다.
정신없이 울다보니 가슴이 뻥 뚫렸다. 깊은 가을의 밤바람에 젖은 얼굴이 얼얼해졌다. 정신이 든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훨씬 짧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 아닌가.
그래, 답답해서 가슴이 터지려고 할 때 실컷 울자. 가끔씩 이렇게 밤중에 운동장을 돌면서 우는 것도 좋은 약이 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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