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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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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결혼했을까.


BY 낸시 2008-10-12

아이들에게 수학을 가르치던 시절 즐겨쓰던 말이 \'왜냐하면\' 이었다.

무엇이든 \'왜?\'라고 묻는 습관을 들여야하는 거라고 아이들에게 강조하곤 하였다.

그것이 나에게도 습관이 되었을까...

나는 \'왜?\'라고 묻고 그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가끔은 나는 왜 사는가하고 묻기도 한다.

삶이 복잡해지려할 때 많은 도움이 된다.

복잡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갑자기 단순해지기도 하고, 골치아프던 일이 웃으운 일이 되기도 한다.

단순하고 쉬운 것을 좋아하는 나는 그래서 내가 왜 살지? 하는 질문을 가끔 한다.

하긴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지금은 쉽지만 어려운 때도 있긴 했었다.ㅎㅎ

 

남편과 같이 산 세월이 삼십년이 가까워진다.

따지기 좋아하는 여자와 성미 급한 남자가 만나서 많은  사연을 만들며 살았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맥도날드 가게 단골 손님 중 하나는 울남편이다.

미국에선 자동차로 오분이나 십분거리면 발견할 만큼 흔해빠진 가게인데 두 시간씩 달려 찾아간 이유가 뭘까....

나랑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겠다고 마음 굳게 먹고 집을 나선 남편이 자동차 타고 도망치다 배가 고파 들렸던 가게란다.

햄버거 사 먹으면서 다시 생각하니 싸우더라도 같이 사는 것이 났겠다 싶어 돌아섰단다.

물건 사러 휴스턴에 같이 가는 길에 남편이 손가락질 하며 가르쳐 주었다.

둘이서 낄낄거리며 웃고 같이 들러 햄버거랑 후렌치후라이를 먹기도 하였다.

도망치는 것은 남편만 한 짓이 아니다.

나도 도망치려고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혼을 꿈꾸고 시도한 것이야 손가락 발가락 다 동원해도 못 센다.

앰블런스에 실려가 병원 신세를 진 적이 두 번, 한 번은 아예 정신병동에 갇혀있기도 하였다.

 

오늘 남편은 골프치러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나 미역국 끓이고 흰 쌀밥 짓고 김치 한 포기 잘라 툭하면 밥 굶는 여자 밥 먹여 놓고 나갔다.

엄청난 변화다.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 떨어지는 줄 알았다던 남자였는데...

하하 그것 뿐이 아니다.

우리집 청소 빨래는 남편 몫이 된 지 오래다.

모처럼 내가 세탁기를 돌리는 날은 남편은 제대로 작동을 시켰는지 확인하러 나간다.

그 만큼 청소나 빨래가 내게 서툰 일이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첫아이 때 심한 입덫으로 한달 사이 몸무게가 52에서 43으로 바뀌어도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것이 내 일인 줄만 알던 때와 비하면 나도 참 많이 변했다.

돌아보면 같이 산 세월이 기적이다.

그리 많이 싸우면서 어찌 살아냈을까...

 

나는 왜 결혼했을까?

어렵지 않다.

사랑에 빠졌던 그 때 난 남편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결혼했다.

그런데 살다보니 행복은 고사하고 나로 인해 남편이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같이 따지기 좋아하는 여자가 아니라면 괜찮은 남편감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 말대로 돈을 못 벌어다 주는 것도 아니고 주색잡기에 빠진 남자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내겐 싸울 이유가 수두룩했다.

싸우면서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내가 왜 결혼했을까...싸우면서 숱하게 되뇌었던 질문이다.

행복하지 않은 결혼은 의미가 없다.

이혼하자가 당연한 결론이었다.

하지만 이혼이 어디 그리 말처럼 쉬운가...차라리 죽는게 쉽지.

몇번 죽음에 실패하고 나니 살고 싶었다.

하긴 자살하는 사람의 간절한 소망이 살고 싶다는 거라니까...

살고 싶어서 이유를 찾았다.

없었다.

아이들도 다 자라서 날 필요없다고 한다.

 

엉엉 울면서 없다고 도리질하던 신에게 살려달라고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알았다.

남편을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던 생각이 오만이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남편에게 요구하는 것은 억지였다.

마음 비웠다.

남편에게 해주고 싶던 것도 받고 싶은 것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쉬운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을 그리 먹으니 견딜만 했다.

이혼하고 싶은 마음도 죽고 싶은 마음도 견디고 참아낼 만 하였다.

옛날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싸운다.

남편이 밉다.

그럴 때 젊었을 적 오만을 상기한다.

내가 왜 결혼했을까...

그러면 화가 조금 풀린다.

미웠던 남편의 얼굴이랑 팔을 쓸어본다.

불쌍한 사람...

어쩌다 나를 만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