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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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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6).


BY 길가는 나그네 2008-10-12

남편과의 실랑이는 새벽 4시가 가깝도록 이어졌다.

죽겠다며 엄포를 놓으며 나갔던 남편이

계단을 5~6번씩 오르내리며 미련처럼 말을 던져댔다.

“내가 죽으면 내가 몰래 붓던 보험금 타먹어라.”

“내가 죽거들랑, 내가 컴퓨터에 돈 받을 것들 적어 놓은 것

받아서 생활해라.“

드라마를 끼고 살더니 연출까지 하고 싶은 남편인가보다.

국민연금 체납 때문에 압류가 몇 번 들어왔고

의료보험 체납 때문에 또 들어 온 압류가 몇 번인데,

자신의 핸드폰 요금이며 카드결제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사람이

보험을 들었다구?

우리 집, 해피가 웃을 소리다.

언젠가 사람 앞 일 모르는 거라고, 암이라도 걸리면 어쩌냐고

보험을 들겠다는 내 말에도 쓸데없는 짓거리 한다고

난리를 치던 사람이었다. 저 죽으면 보험금 타먹으려고 그러냐며

저 죽기만 기다리는 나쁜 년 만들던 의인이 할 소리는 아니었다.

일 해놓고 수금이 안된다며 인상 구길 때, 내가 받아 올테니

거래처가 어디냐고 물으니, 남자 얼굴에 똥칠하는 일생에 도움 안되는

몹쓸 년 만들더니 죽음을 목전에 두고 이것저것 살갑게 잘도

챙기는 남편이었다.

마지막을 고하는 남편을 우리는 아무도 잡지 않았다.

죽겠다던 남편은 문 앞에서 몇 번이나 빼꼼거렸다.

“아빠는 갈 때가 없다.”

“아빠는 친구도 없다.”

“아빠는 엄마 옆에서만 있고 싶다. 나는 엄마 밖에 없다.”

계단에서 신파를 연출하던 남편이 새로운 술버릇을

개발한 듯 계단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저체온 증으로 죽기 딱 좋은 계절...죽었으면, 싶은 남편을

나는 아들에게 모셔오라고 했다.

문 밖에서 죽은 가장이 있다면 세상 사람들은

방관한 가족들을 향해 손가락질 할 것이 틀림없을 테니까...

그런 상황에서 죽은 아빠를... 아이들 역시 가슴에 한처럼

품고 가야 할 테니... 그런 상황은 만들 수는 없었다.

거실에 두툼한 요를 깔아주고 뉘었다. 그리고 그만큼

두터운 이불을 덮어주었다.

남편은 그곳에 양동이로 쏟아 부은 물의 양만큼이나

오줌을 흥건히 쌓아놓았다.

언젠가는 장롱을 열고 놓고 일을 봐놓아서 그 많은 이불 빨래

하느라고 애를 먹었는데...

처음 몇 번은 창피해하더니 이제 제법 이력이 났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젖은 빤스까지 방바닥을 뒹굴게 했다.

오줌이 뚝뚝 흐르는 이불을 세탁기 위에 수북하게 올려놓고도

아이들을 당당히도 바라보았다.

의미 없는 이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끝도 없는 이 고통을 언제까지 버텨야 하나...

이건 아니다. 이건 절대 아니올시다...

할아버지 제사에 다녀오라니 아들이 직접 시숙님께 전화를

걸었다.

“큰 아빠, 저 제사에 가지 않을래요... 가고 싶지 않아요...”

시숙님이 뭐라시는지 아들이 하는 말만 들렸다.

딸이 학교에 가고 술이 덜 깬 남편이 일어났을 때 내가

말했다.

“분명이 그 입으로 이혼을 해주겠다고 했어.

서류 준비를 해놓을 테니 확실하게 정리해줘.“

내 말에 남편이 대꾸했다.

“오늘 나, 건들지 마!”

늘 똑같은 상황이다. 뭐 달라질 것도 없다.

전에 언젠가, 도움 안되는 성질 못된 년이랑

살수 없다며 이혼을 운운하길래 올타꾸나, 서류를

준비해서 내놓으니 방으로 쏙 들어가서 며칠이고

나를 피하던 인간이었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날들이 벌써 많이도 흘렀다.

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얼만큼 더 흘러만 가야할지

막막함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그런 내 곁으로 아들이 다가와서 함께 누웠다.

“엄마... 무슨 생각을 하세요?”

“잡생각이지... 엄마는 어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살고 싶어. 먹을 게 없으면 풀뿌리를 뜯어 먹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살아보고 싶어. 뱀이 무섭고...벌레지가 무섭지만...“

“엄마, 우리 그렇게 살까요? 제가 뱀을 잡으면 되지요.

약초 캐서 먹고 살까요?“

“너 학교는?”

“거기서 학교 다니면 되지요...”

제법 갖고 있는 상식도 되는 놈이 현실감은 역시...뒤떨어져 있었다.

“엄마, 지구가 2020년에는 없어진대요. 그런 말,

들어 보셨어요?“

“아니...왜?...\"

아들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했다.

그래서 죽지 못해 안달이 난 내가 지구의 종말에 대해서

묻고 말았다.

\"핵이 멈추면 지구가 존재할 수 없대요. 언젠가

외국에서 철새가 떼죽음을 당했대요. 철새들의 귀에는

자기장을 느끼는 센서같은 것이 있는데 외핵의 활동으로

철새들이 방향을 잡는다네요. 그런데 언젠가 외핵이 잠시

활동을 멈춘 적이 있었대요. 그때 철새들이 방향감각을

잃고 부딪쳐서 죽었다는 거예요. 외핵이야, 잠시 멈춰도

크게 문제 될게 없대요. 문제는 내핵인데...내핵이 멈추면

우리는 모두 끝나는 거예요. 과학자들이 내핵이 멈췄을 때

살리는 몇 가지 방법을 알고는 있지만 워낙 지각과 맨틀을

뚫고 들어가야 하는 깊이가 있어서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도 있구요...“

커가면서 제법 생각지도 못한 상식들에 대해 떠들 때가

많아진 아들이 대견하기도 하다.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은 꼭 제 엄마에게도 알려주고 싶어하는

아들은 정이 많은 녀석이다. 그것이 감사하다.

“그래서...네가 하고 싶은 말이 뭐야.”

“2020년이면 엄마 연세가 50세가 되시지요? 저는 27살이 되구요.

우리 그때까지 속상해도 행복하게 살아요. 얼마 안 남았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