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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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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5).


BY 길가는 나그네 2008-10-11

“아빠, 그만 하세요!”

아들이 쉴새 없이 떠들어 대는 제 아빠에게 말했다.

그런 상황에 애들이 자고 있을 거라고 자신할 수는 없었다.

건물이 울리도록 쩌렁대는 목소리에 우리 집 뿐 아니라

윗 층, 아래층 모두 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이들이 방문을 열고 나온 것이 그리 놀랄 일도 아닌데

우습게도 나는 ‘놀라움’을 느꼈다.

날로 쇠약해지는 심장을 느낀다. 작은 소리에도 깜짝거린다.

아들은 제 아빠보다도 벌써 키가 커져버렸다.

중 2, 15살...

언제 클까, 언제 커서 혼자 이 험한 세상 버텨나갈까,

멀게만 느껴지던 미래가 어느새 문턱을 넘어서고 있었는데,

나는 왜 늘씬하고 훤칠하게 예쁘장하게 자란 녀석을

행복한 눈으로만 바라 볼 수 없는 걸까,

그것만으로 감사하면 안되는 걸까,

흔들리며 갈팡질팡 제 앞가림이나 할 수 있을까,

걱정하게 만들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 공부를 해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말처럼 노력하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 나의 뒷받침이 필요한 시기에

나는 또다시 미쳐서 날뛰는 꼴을 하고 있었다.

잘 참았다... 잘 견디었다... 스스로 대견하게 지나 온

내 발자취를 돌아보며 그래도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며

버텨왔건만... 늘 나는 내가 쌓은 공든 탑을 내 손으로

무너트리는 꼴을 하고 있었다.

다독이고 다짐하고 만반에 준비를 했다가도

언제 그런 마음 가졌기나 했었는지 와르르 무너져 있었다.

‘웃기는 년’... 말 할 줄 모르는 남편 입에서 나온 말이

적절하게 요점처럼 딱 들어맞을 때가 있다.

“아빠는 왜 매일 그렇게 사세요? 제가 그랬잖아요.

술 드시면 조용히 좀 주무시라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 없는 내가 아들에게 방으로

들어가 있으라고 했지만 녀석은 굽힘없이 제 아빠에게 따지듯 말했다.

녀석의 기세등등함에 남편이 발을 들어올렸다.

아들이 제게 날아오는 아빠의 발을 막아섰다.

술 취한 남편이 중심을 잃고 바닥으로 뒹구는가 싶더니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이 새끼가 아빠를 때려? 몽둥이 어딨어!!!”

남편이 이내 몸을 일으키더니 분해서 날뛰었다.

“제가 언제 아빠를 때렸어요? 아빠가 저를 때리려고 했고

저는 막았을 뿐이에요.“

아들이 분한 듯이 말했다.

“아빠가 넘어졌잖아. 오빠가 때리지 않았어. 아빠 미워.

나가버려.“

딸이 제 오빠를 돕듯 말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리됐을까.

남편을 향한 분노는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아이들도 어느 순간부터 제 아빠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러면 안된고 했지만,

아빠와 엄마의 불화는 둘의 어긋난 성격 탓이지

누구의 잘못만은 아닌 거라고,

나만이 너희의 엄마가 아니고

아무리 못났어도 너희의 아빠라고...

못됐어도 아빠인 거라고...

아빠를 무시해도 안되고 멸시해도 안되고

뉴스에서 나오는 것 같은 무서운 패륜이 되어서도

아니 된다고... 가르쳤지만...

우리가 그리 되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제는 여기서...이쯤해서 관둬야 한다.

남편이 몽둥이를 찾아서 방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다.

제 엄마의 매는 그대로 맞던 아들이 아빠의 몸을

막고 섰는데 매까지 들고 설치는 아빠에게 녀석이

어찌 대응하게 될지...나는 그것이 무서웠다.

그런 일을 만들 수는 없었다.

남편의 눈이 딸이 체육시간에 들고 다니는 배드민턴 채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몸을 그쪽으로 향했다.

내가 몸을 날렸다.

남편의 몸을 타고 눌렀다.

술에 취한 남편이 쉽게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놀란 아이들이 달려왔다.

내 남편이라는 사람의 눈이 잠깐 동그래졌다.

그리고 자신의 위에 쓰러진 나를 안듯이 팔을 둘렀다.

나는 그 팔을 뿌리치고 온 힘을 다해서 남편의 가슴을

눌러 버렸다.

제발 바닥에 눌러 붙어 버려라... 차마 입에 담지 못한

말을 속으로 외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