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일 이상을 병원에 누워있었다.
죽으려고 했던 사람이 ‘다행’이라고
표현하는게 맞는 건지,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다.
엉덩이에 고여 있는 죽은 피를 2봉지 이상을
빼내야 했다. 병원에서 해줄 것은 더 이상 없지만
내가 있고 싶을 때까지 있어도 된다는
의사의 배려(?)가 있던 날.
나는 엄마에게 다시 내가 살던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내가 친정으로 갈 것이라고 여겼던 엄마의 눈...
동공의 확대까지 느껴질 정도로 놀라셨다.
나는 가야만 했다.
병원에 있는 동안 남편의 전화는 시도 때도 없었다.
간간히 아이들의 울음까지 들어야 했다.
처음엔 모질게 마음먹었던 나였다.
어차피 안 되는 거라면, 이쯤해서 접자.
이쯤해서 접는 편이 났다.
훗날 내 새끼들 날 찾아오겠지...
그렇게 먹었던 마음이었다.
하지만...
“엄마, 이제 괜찮으세요?”
울먹이는 아들에게 미안한 엄마의 마음이,
“엄마... 집에 오실 거죠?”
라는 말에 “응... 갈게...”라고 대답하게 했다.
나는 세상에서 거짓말이 제일 나쁜 거라고
가르쳤던 <엄마>였다.
남편이 말했다.
“나에게 한번만 기회를 줘. 마지막 기회를 줘.
그래도 안 된다고 말하면 내가 나갈게. 당신이
애들이랑 살아.“
늘 말하고 실천 못하는 남편과 살면서 그의 긍지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어떤 말도 시답게 들리지 않았다.
단지, 애들이랑 살아...내가 나갈게... 이 말에
일말의 희망이 느껴졌다.
“정말 안 된다면 나가 줄 거야?”
지도 아버진데...그래도 제 핏줄인데,
저처럼 부모사랑 모르고 살게는 안하겠지, 싶었다.
그래서 간다고 했다. 내 집으로... 내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이혼해라, 하시면서 애들은 안 된다고 하시는 부모님.
애들 때문에 남편과의 끈을 완전히 놓을 수 없을 거라는
걱정을 알았지만...나는 병원에 있으면서 못 봐서
미칠 것 같은 내 아이들과의 만남과 기대감으로만
들떠있었다. 나도 자식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내 엄마처럼 <엄마>였다.
남편이 병원으로 애들을 데리고 나를 퇴원시키기
위해서 오겠다고 했다.
나의 행동으로 한동안 좋은 가십거리로 동네가
시끄러웠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남들의 시선에도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임을 알았다.
엄마는 다시 남편을 따라가겠다는 나와 인연을 끊겠다고
하셨다. 다시는 안 보겠다고...
나는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에궁~ 내가 내 새끼들
못 놓는게 엄마한테 받은 유전인데, 엄마가 날 어찌 놓누.‘...
하지만 내 눈에 고인 눈물을 엄마는 보고 말았다.
병원에 오고 있다는 사위를 보고 싶지 않다며 병원비를
침대에 팽개치고 달려 나가셨다.
몇 분 지나지 않아서 남편이 도착했다.
남편이 곧 엄마가 엘리베이터도 타지 않고 내려가신 계단을
뒤따라 달려갔다.
얼마 만에 남편이 올라왔다. 며칠 사이 남편도 핼쓱 해져 있었다.
어머님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병원비를 돌려드려도 받지 않으시고 눈물을 닦으며
달려가셨단다. 나는 불효를 밥 먹듯 해대는 막심한 딸년이다.
울 자격도 없었다. 그래서 눈물을 삼켰다.
무리하면 안 된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세상을
끝내려던 곳으로 ‘새로운 시작’을 의해 나는 나의
보금자리(?)로 다시 돌아왔다. 아이들이 계속해서 안겨들었다.
곁에서 보고보고 또 보며 안겨들었다.
얼마나 놀랐을까, 살았으니 미안함을 느껴야 했다...
미안함으로 단정 짓는 것도 미안할만큼...애들에게
나는 커다란 상처를 남겨주었다.
남편은 나를 꼼짝도 못하게 했다. 계속 누워있으라고 했다.
밥하고 설거지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아이들을
씻기는 것까지...그동안 내가 했던 것들을
나보다 더 잘 이행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은 채웠던 것 같다.
서서히 이탈해 나가기 시작해서 엇나가기 시작한 것이
한 달 후부터였던 것 같다.
내가 누워있는 동안 보였던 남편의 행동에서
나는 희망을 찾았었다.
‘그래...저 사람도 저럴 수 있었어...내가
기회를 주지 않았던 걸 거야. 사람이 태생이
있어서 쉽지는 않겠지만, 내가 좀 더 노력하면
될 수도 있어...‘
남편의 다시 시작되는 엇나감에도 나는
중심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술주정에도 귀를 닫고 입을 닫았다.
지치면 자겠지...
일 없다고 낮에는 자고 밤에는 tv 앞에서
버티고 있는 남편 앞에서 낮에는 가사를 돌보며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고 책을 읽었다.
밤에는 아이들과 놀아주다 잠이 들었다.
다시 1년이 흘렀지만 남편은 변화가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하기 전에 약속했던 말을 나는
냉정하게 꺼냈다.
“우리가 안 된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해.
약속대로 이 집에서 나가줘. 혼자 벌어서 혼자
자유롭게 훨훨 살아 봐.“ 라고...
내 말에 남편이 콧방귀를 꼈다.
웃기는 소리 한다는 말로 일축했다.
나는 웃기는 년이 되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웃기는 모자란 년이었다.
생활비를 안주는 것이 아니었지만 턱없이 부족한
돈이었다. 그마저도 인정하지 않았다.
폭력을 행하지는 않았지만 아이들과 나를
깨워가며 해대는 말 주정이 피를 말렸다.
대놓고 바람을 피지는 않았지만 늦은 시간까지
술집에서 간간히 여자도 끼고 마시는 듯도 했다.
그럼에도 나는 남편의 처분만 기다리는 심정으로
이혼을 요구하며 어쩌지 못하는 생활 속에서
마음을 닫았다가 열었다가를 반복하며 살았다.
그렇게 흐른 시간이 오늘 날에 이르렀다.
한 번의 이사가 있었고 부족한 전세보증금을
아빠 몰래 엄마가 보태 주시기까지 했다.
남편은 이제 그 돈도 제가 일해서 번 돈이라고
큰 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