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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단감이 먹고싶다.


BY 정자 2008-09-25

앞집도 뒷집도 우리 집 옆에 사는 이웃도 지금 파랗게 영글어가는 단감엔

아무도 관심이 없나보다.

요즘엔 들껫잎에 모두 정신이 팔려 키작고 어린 묘목에 달린 단감나무에

나는 유독 저 감이 언제 익을까?

그것만 골똘히 집중한다.

 

일곱살 무렵 외갓집과 멀지 않은 곳에 살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집주인 할머니는 집이 두 채였다.

한 채는 섬에, 또 한 채는 육지에 있어 우리가족에게 독채로 세를 준 집 뒷뜰에

오래 늙은 단감나무 한 그루가 살고 있었다. 

 

내 어린 직감에도 그것은 푸른땡감이 아닌 풋내나는 단감을 알아내어

동네 고만고만한 애들 몇 몇을 몰아서 우르르 굽고 낮은 흙담을 끼고 돌무덤같은

담을 넘어서 나뭇가지를 송두리채 꺽어 먹는 법을 일찍 저질럿으니.

울 엄마 그 단감나무는 할머니가 섬에서 나오면 추석에도 제사에도 쓸 것이라고

따 먹지 말라고 신신당부는 하시지만.

 

내 어린 눈빛에 딱 걸린 그 단감은 기어히 오물오물 아삭아삭 씹히는 유혹에 이겨 낼 수가 없었다.

낮은 가지에 매달린 감을 차례차례 따먹다 보니 높은 가지에 몇 개 안남은 감은 내 키와 전혀 거리가 멀었다.

동네 애들은 감나무 밑에서 햇빛을 피해 찡그려 손바닥으로 가려가며 올려다 보고 나는 보란듯이 감나무를 타고 오르는 원숭이처럼 요리저리 잘도 감을 땃는 데.

 

순식간에 얄창얄창한 감나무가 분질러져 나는 뚝 떨어졌다.  

눈을 떠보니 우리방이고 내옆에서 울 엄마는 내가 여름내내 다 따서 먹어버린 단감이 더 걱정이다.

\" 세상에 그 많은 단감을 어떻게 그렇게 다 따먹냐? 내가 그렇게 말렸는 데..주인할매가 오면 니 뭐라고 할 겨?

 어이그 어째 닌 하지말라면 더 하냐?\"

 

감 따다가 떨어진 딸 걱정보다 내가 먹은 그 단감을 더 걱정하는 울 엄마 앞에서 나도 별 할 말이 없었다.

입이 한 개이기 망정이지.

 

그나저나 요즘 구월인데도 무진 덥다.

그래선가 도통 푸른땡감마냥 이 단감이 노랗게 물들 기미가 없다.

이 나이에 내가 올라갈 단감나무도 없고

가을비가  이렇게 짙게 내리는 날이면 얼른 단감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