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들 휴가 왔을 때 \'안치환\' 콘서트를 함께 다녀왔다
사실 공연 보다 게스트를 가까이서 얼굴 대한다는 기분으로 공연장을 찾았다.
기대 이상의 감동... 그날의 벅찬 여흥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아들이 중 2때 \'이승환 콘서트\'를 가게해 달라 했다
마침 시험 성적도 전교권을 달린터라 고 3 담임 맡은 남편은 빠지고 딸애와 세식구가 함께 갔다
어른들의 콘서트는 몇차례 다녀 온적 있지만 아이들이 즐겨 하는 공연장의 면모도 내심 엿보고 싶었다
\'무적\' 이라는 타이틀로 3시간 30분 동안 무대 위를 종횡무진 하는 가수의 열정도 놀라웠지만
내가 놀란건 따로 있었다.
처음엔 아들이 내 눈치를 보며 아는 노래를 슬슬 따라 부르는것 같았다
\"눈치 보지 말고 니가 하고 싶은데로 행동 하고 기분 확 풀고 가~~\"
그말과 동시에 야광봉을 움켜쥔 아들이 벌떡 일어서더니 공연이 끝날 때 까지 자리에 앉질 않았다
파워풀한 율동과 모르는 노래가 한 곡도 없이 모두 따라했다
학교에서나 집에서 범생중 범생인 아이는 나도 모르는 사이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할곳 없어 쟁여 두고 있었던거다
자식의 무한한 가능성을 부모는 어디까지 알고 있음이며 알고자 노력 했음일까?
그다음 부터 이 가수의 콘서트는 내가 앞장서 티켓을 예매해 주었다.
ss501은 딸애가 중학교때 목을 맸다.
\'슈퍼 스타, 다섯명이 영원히 하나되자\' 라는 그룹명 설명까지 나에게 곁들였고
짬만 나면 이 가수 나오는 프로를 찾아 지상파 방송을 뒤지고 또 뒤졌다
중 3 겨울 방학 즈음 서울에서 대규모 콘서트가 열렸다
아이를 기르다 보면 본의 아니게 남편께 거짓말도 하게 된다
마침 그 전 날, 서울 경기 지방엔 폭설이 내린 상태였다
새벽밥 한 술 뜨고 집 나서는 아이에게 휴대폰으로 실시간 방송해 달라 신신 당부 했고 맘이 들뜬 아이는 건성으로 대답 하는것 같아 속이 바짝 타 들어 가는것 같았다
이윽고 늦잠 자고 일어난 휴일 아침 남편은 아이의 부재를 물었다
평소에 거짓말도 하고 살았으면 적당히 둘러 댈 말이라도 찾았으련만...
\"콘서트 갔제?\"
\"예\"
\"어디? 서울은 설마 안갔제?\"
\"예\"
\"그럼 어디? 부산?\"
\"예\"
\"가시나~~이 추운날..... 누구 콘서트라 카드노?\"
헉~~~~답을 못하고 있다가 \"들었는데... 누구라 커더라.....???\"
밤 12시 다되어 눈이 빠끔하게 들어간 딸은, 그러나 온 몸에선 기운이 넘쳤다
\"엄마, 고마워~~이젠 대학 들어 갈 때 까지 어떤 콘서트도 안가도 돼. 세상에...버스가 16대나 출발했었어...\"
그다음 날 새벽 같이 일어난 아이는 남편에게 부산에서 열리는 콘서트 다녀왔고 친구들과 뒷풀이 하느라 늦게 왔다고 나와 입맞춘 부분을 얘기하며 안심을 시켰다
아이들의 이 행동을 지켜 보며 내가 적극적으로 동조 해 준것은 젊은날의 열정, 열병은 호되게 앓고 지나가야 한다는 평소 내 소신 때문 이었다
누구에게 무엇엔가 미치지 않고 지나가는 젊음은 설익은 과일과 같아서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요즈음, 우리에게 잊혀지고 사라져 가는 풍경이 있다
두고두고 가슴에 남으면서 설핏 눈물 머금을 정도로 그리움을 유발 시키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가곡의 향연과 손으로 직접 쓰는 편지글이다
얼마 전 원고지 60매 정도의 글을 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평생 보아온 내 글씨가 뜨악해 지고 40여장째엔 주리가 틀어 지는게 아닌가?
컴맹입네 어쩌내 하면서도 이미 워드로 글자 치는게 이렇게 익숙히 자리 잡고 있음이 아닌가....
가을이 오면 곳곳에 \'가곡의 밤\' 현수막이 걸리고 팜플렛을 나누어 주곤 했었다
엄정행, 백남옥을 비롯한 수많은 성악가들의 음색을 하나라도 놓칠세라 숨소리 조차 차분히 고르며 가곡의 향연에 몰입 되곤 했었다
가을이 끝나면 내 열정도 쓸쓸해져 다가 올 내년 가을을 목 뽑고 헤아리며 기다렸었는데...
어느 새 그 즐겨 부르던 가곡이 손편지와 함께 우리 곁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시대의 또다른 문화라 지칭 하는 이 도 있겠지만 \'가곡\'을 우리 시대 문화 유산이라 치부해 버리기엔 찡한 미련이 가슴에 고인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그래서인지 성악 하는분들이 지금 많이 어렵다고 한다
찾아주는이 없고 입에 올려 불러 주는 노랫가락이 사라진 지금, 가곡 이란 이름 자체도 우리 세대가 끝나면 영원히 잊혀져 버릴까 혼자 조바심 내어본다
오케스트라 협연에 맞춰 연미복과 드레스 입고 눈부신 감성 담은 가곡을 공연장 쩌렁쩌렁 울리며 토 해 놓을 때,
우리의 가을은 참 알맞게 익어 가곤 했었는데...그 흔적 어디에서도 맞닥뜨려지지 않는다
나 부터라도 우리 가족 이라도 책 한권 사 오면서 가곡 cd 한장 사 와야 할것 같다
그 노래들엔 우리의 청춘이 있고 되돌릴 수 없는 여학교 시절의 음악 시간이 오롯이 살아 숨쉬어 내 손에 잡혀 줄것만 같다
한편의 시에 가슴 저미는 선율 부쳐 아름다운 음악으로 탄생 되었을 때 그 노래 익히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추억속에 눕혔었나...
꽃구름 속에, 옛날은 가고 없어도, 고향 그리워, 고향의 노래, 황혼의 노래, 그 집 앞, 비목, 선구자, 내고향 남쪽 바다, 목련화, 산, 동심초 .. ....등 등.....
제목만 나열 했음에도 목 안이 칼칼해져 옴은 못나빠진 나만의 상념 탓일까?
우리도 지금의 젊은이들 못지 않게 책과 음악과 연극과 협연에 미쳐 있었을 때가 분명 있었다
우리가 아끼고 사랑했고 영원히 내 삶속에 녹아 들것 같던 그 모든것들.
그들은 우리 곁을 떠난적 없건만 내가 우리가 기억 속에 방치하고 있음일테지.
잊혀지고 사라짐이 어디 이것들 뿐 일까마는...
종일토록 가곡을 끌어안고 이쁘지 않은 손글씨로 언뜻언뜻 밀쳐 두었던 고운 벗들께 가을을 꼭꼭 눌러 보내야겠다
더 늦기전 이 가을, 꺼져 버린 불씨 하나씩 되살려야겠다
일부러 짬 내서라도 젊음의 흔적과 질펀하게 노닐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