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였을때 아버지는 굉장히 부지런하시고 모범적이고 근엄하신하버지셨습니다. 아침5~6시면 산에 땔감하러 가셔서 일찍 오시고 염소밥이랑 해오시고 밭에도 다녀오시고, 들에도 다녀오시고 배는 고픈데 아버지가 안계시면 엄마는 아버지가 오셔야 상을 차리시곤 하셨습니다.
시골에 살면서 부지런하지 않을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일찍 일어나면 밭에서 깻잎도 따올수도 있고 부추도 해오라고 하면 해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20대였을때 아버지는 집이 가난하여 남의집 논농사도 짓고 시제도 지내고 완도에서도 일 하시곤 했습니다.
5남매라서 생활이 많이 어려워서 언니와 저는 일찍 사회생활을 했고, 엄마 아빠 두분다 성격 자체가 부드럽게고온화한 편은 아닙니다.
마음은 정말 따뜻하고 정이 많고 법없이 살 분들이십니다.
제 나이 30대땐 아버지는 말없고 엄마 일을 잘 도와 주셨습니다.
직장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직하시자 소키우는일을 주로 도와 주셨는데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셔서 관절 퇴행성 관절에다 여러가지 몸이 아프셨는데 엄마 또한 많이 안좋으시니 약을 잘 드시는 편이었는데 아버지 연세칠순을 남겨놓고 삼월에 돌아가셨습니다. 시골이라 많이 추운날 돌아가시면 날씨가 안좋으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아버지는 3개월을 병원에서 계시다 그렇게 저 멀리 가셨습니다.
작년 설날 아들 딸 며느리가 모여서 사위랑 같이 춤추고 즐겁게 지내셨는데......
많이 아파도 그저 아파서 아무일도 못한다던 아버지 셨다.
올 추석에도 엄마는 아빠가 많이 보고 싶을거란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엄마 한테는 심하게 싸우시는 일도 있었지만 우리에게는 어쩌다 빨리 안일어난다. 다 컸는데 집안일 잘 안 도와준다고 소리만 질렀다. 외모는 별로 늙지 안았지만 빼짝 마르신 아버지가 가여웠다.
아버지 항상 지켜봐 주세요 열심히 아빠처럼 잘 살겁니다. 엄마도 잘 지켜주셔야 해요. 꼭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