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이야기 5
내가 처음 자전거를 타게 되던 날...
교통수단을 넘어 일상의 자전거 사랑.
8월 16일 토요일, 2시 30분. 3시까지 부평역으로 가야한다.
하얀 운동복에 분홍 모자를 눌러 쓰고 아이는 샌들을, 나는 하늘색 운동화를 신다가
혹시나 싶어 \'부평 자전거 도시\' 카페지기에게 전화했다.
“오늘 자전거 대행진 일정대로 진행하죠?”
“아이쿠, 지금 막 취소됐습니다”
“네? 지금 막 나가려다가 전화했는데요, 비 와도 한다고 써 있던데?”
“비가 너무 많이 오네요. 웬만하면 진행하려했는데, 방금 취소 결정했습니다”
“잉. 또 비 때문에 참가 못하네요”
매달 셋째 토요일마다 부평역에서 ‘자전거 대행진’이 열린다는 것을 지난달에서야 알았다.
인터넷 검색 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부평 자전거도시(만들기 운동본부)’라는 카페를 발견하고
가입했는데, 알고 보니 이 단체가 지난해부터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도 부평에서 자전거를 좀 탄다면 타는 경력 8년의 ‘자전거 아줌마’인데도 이렇게 반가운 단체가 있다는 걸 몰랐다니, 이건 홍보가 부족한 단체 탓 아니면 아이를 낳고는 ‘화를 내는 엄마가 아이를 망친다’는 등의 육아책에만 정신이 팔린 내 탓일 게다.
어쨌든, 내 주변에는 친정 식구들 외에는 자전거를 즐겨 타는 사람이 없어서
종종 자전거 모임이 그리웠는데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7월부터 ‘자전거 대행진’에 참가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날도 부평역으로 달려갈 마음을 먹고 있는데 여름비가 쏟아졌다.
채우(5살 아들)를 태우고 도저히 빗속을 달릴 자신이 없어서 집에서 비 구경만 했다.
얼마나 아쉽던지 한 달을 꼬박 기다려 8월 셋째 토요일이 되기만을 기다렸는데,
만약 비가 온다면 아이에게 우비라도 입히고 달릴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었는데,
또 취소란다. 미운 비.
미운 비는, 여름을 마감하는 비였나 보다.
서늘해진 햇빛이 가을을 외친다.
가을은 책 읽기 좋은 계절이기도 하지만 자전거 타기도 딱 좋은 계절이다.
게다가 최근 ‘부평 자전거이용 활성화’를 위한 부평구의 계획 수립 등
자전거 관련 기사가 부쩍 자주 보여서 8월 자전거 대행진 취소로 아쉬웠던 마음도 풀렸다.
부평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로 달릴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그 밑거름에 ‘부평 자전거도시 만들기 운동본부’도 있었을 테니,
다음 주에는 시원한 댓잎차라도 싸들고 문화의 거리에 있다는 단체 사무실로 달려가
인사라도 하고픈 마음이다.
▲ 제1회 푸른부평 자전거 대행진. 부영공원에서 출발 직전.(2001년인가??) |
그런 저런 기분 탓인지, 요 며칠은 8년 전, 자전거를 처음 탔던 달달한 추억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99년 결혼, 나는 2000년부터 부개동에 작은 공부방을 꾸려 초등학생들에게
독서 지도와 글쓰기를 가르치는 일을 했는데, 부평시장에 있던 신혼집과 공부방은 버스로 불과
서너 정거장 밖에 되질 않았다.
버스비가 참 아깝다고 말하는 내게 남편은
“군것질은 아낌없이 하면서, 버스비는 아까워?” 하며 대수롭지 않게 웃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남편은 몇 달 키운 빨간 돼지저금통을 내 앞에 내놓았다.
“자전거 타고 다니는 건 어때? 이 돼지 잡아서 자전거 사. 아줌마 자전거 값은 나올 거야”
돼지는 간신히 10만원으로 꽉 차 있었다.
날마다 남푠이 팍팍한 하루를 보내며 500원, 1천원씩 모았을 따뜻한 저금통.
그 돈을 들고 부평5동에 있는 자전거 가게에 혼자 가서 황금색 자전거를 샀다.
얼마나 신이 나던지, 그 날씬한 자전거를 타고 부평5동에서 부평역까지 단숨에 달렸다.
내친김에 부평3동에 있는 친정까지 달려가 친정엄마에게 자전거 자랑을 얼마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니까 함서방이 네 자가용을 사준거네? 자전거 자랑이 아니라 우리 사위 자랑하러 왔구나?”
친정엄마는 그러니(남푠의 마음을 타고 달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남편에게 더욱 잘해야 한다는 당부도 잊지 않으셨다.
그렇게, 내가 자전거를 처음 타게 된 이유는 바로 ‘버스비’ 와 \'남푠의 사랑\'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떠드는 친환경 무공해 교통수단 이용이나, 고유가 교통정체 해소 등의 거창한 이유가 아니라 가까운 거리를 ‘버스비’ 내고 다니기가 싫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가슴 찡한 돼지 한 마리.
그날부터 금빛 자전거는 내 자가용이 돼 부평 어디든 씽씽 달렸다.
그 첫 자전거는 중국산답게(?) 열흘이 멀다하고 바퀴에 땜질을 해야 했고
몇 번 넘어졌더니 운전대가 휘어서 방향 잡기 힘들었고,
1~2년 후에는 자전거 부속품들이 너덜너덜해져 고물상에 팔아먹을 지경이 되었지만,
그러는 동안 나는 자전거의 매력에 푹 빠져버려 버스를 타는 게 오히려 어색했다.
몸 전체로 공기를 가르는 그 느낌,
페달을 밟고 있는 발바닥의 감촉,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목적지를 잃을 눈빛의 긴장감,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바로 멈춰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즐거움에 중독돼
그때부터는 버스비를 아끼려고 자전거를 타는 게 아니라,
자전거를 타기 위해 일부러 길을 나섰다.
자전거 중독을 톡톡히 앓았던 나는, 지금의 하얀 자전거까지 세 대의 자전거를 아낌없이 탔다.
아기를 임신하고 만삭 때도 자전거를 천천히 타고 출산교실엘 다녔다.
어느 가을밤엔 친정 동생들과 일부러 계산동까지 영화를 보러 다니기도 했다.
그뿐 아니다. 영종도 해안도로가 자전거 타기 좋다는 말을 듣고는,
두 돌이 채 안 된 아이를 태우고 여동생과 월미도까지 엉덩이가 아프게 달려서
자전거와 함께 배를 탄 적도 있다.
지금도 날씨가 쾌청할 때마다 동생들과 \"오늘 자전거 고고씽??\" 하며 눈빛을 나눈다.
버스비가 아까워 타기 시작한 자전거가 이제는 교통수단을 넘어서 일상이 된 것이다.
가끔, 뜨거운 여름 햇빛 아래서 자전거 바구니에 \'대파\'를 싣고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어떤 사람은 ‘궁상맞다’고 한다.
또, 추운 겨울에 내복을 껴입고 하얀 입김을 뿜으며 위험한 차도를 달릴 때는
‘불쌍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오히려 그 사람들에게 TV프로의 달인처럼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전거 타봤어요? 안 타봤으면 말을 하지 마세요.
부평 자전거도시 완성돼서 남들 자전거 도로로 달릴 때 혼자 차도로 달리면 무지 부러울 겁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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