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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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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있어야 할 자리.


BY 낸시 2008-08-25

red bird of paradais라는 이름을 가진 꽃나무 위로 노랑나비 흰나비 여러 마리가 바쁘게 팔랑거린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가슴이 설레도록 이쁘다.

오늘은 유난히 나비가 많다는 생각이 들어 둘러보니 능소화가 올라간 전봇대는 조그만 갈색나비가 온통 뒤덮다 시피 하였다.

나비마다 좋아하는 꽃이 따로 있나...고개를 갸웃해보고 끄덕여도 본다.

나는 꽃을 사랑한다.

꽃씨로 성을 바꾸어야겠다고 농담을 하기도 할 만큼 꽃을 사랑한다.

꽃누리, 꽃마을, 꽃동네, 꽃나라, 꽃나리...꽃을 앞에 붙이면 무슨 이름이라도 예뻐지는데...하면서.

이사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꽃을 사다 심고 이삿짐을 싸면서도 꽃밭에 물주는 것은 잊지 않는다.

이삿짐을 풀기도 전에 뜰을 살펴 무슨 꽃과 나무를 심을까를 생각하느라 바쁘다.

그리 극성을 떨어도 결혼한 후 서른 번이 넘는 이사를 다니다보니 꽃과 나무와 친해질 시간이 많지 않았다.

친해질만 하면 이별을 하곤 했으니까.

삼년이 넘도록 같은 장소에 꽃과 나무를 심고 가꾸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처음 가게자리를 정하던 때,  길모퉁이 건물 앞에 가꾸어진 꽃밭을 보고  이렇게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하였다.

그 부럽던 꽃밭은 여전한데 지금은 가장 예쁘지 않은 곳으로 변했다.

내가 가꾸는 꽃밭이 점점 예뻐지니  그 꽃밭에서 절로 눈길이 돌아 내 꽃밭으로 향한다.

처음엔 메리골드, 채송화, 꽃백일홍이 화사해서 좋았다.

그 다음엔 가을부터 시작해서 겨울을 지나 봄까지 꽃을 피워주는 패랭이,데이지,  팬지, 핀쿠션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이 아니라도 노랑 사철나무랑 빨간 열매와 잎사귀를 가진 난디나도 자꾸 눈길을 끌었다.

봄부터 시작해 가을까지 줄기차게 꽃을 피우는 노란 난타나와 푸른 빛에 가까운 보라색 플럼바고도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여름엔 잎사귀 색깔로 겨울엔 꽃으로 한 몫하는 차이니즈 무슨 프린지라고 하는 꽃도 정말 고맙다.

연회색 잎사귀를 가진 텍사스 세이지가  한여름에 진달래 빛 꽃을 피워내면   내 맘속 고향에는 진달래꽃, 복숭아꽃, 개나리꽃, 앵두꽃...모두모두 함께 피어난다.

그 이름이 뭐였더라, 가시나무에 빨간열매가 닥지닥지 붙어 겨울내 화사한, 이름이 무엇이든 그 나무도 사랑한다.

내 꽃밭에 오줌을 싸고 가는 사람들을 쫓아내주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ㅎㅎㅎ

실은 구석진 그곳에 심은 이유가 그것이기도 했지만...ㅋㅋㅋ

모든 꽃들이 날 기쁘게 하는 것 만은 아니다.

날 실망시킨 꽃들도 엄청 많다.

우선 장미다.

화사한 꽃밭에 장미가 빠지면 안되지 싶은 생각에 여러그루 사다 심었지만 심는대로 도둑이 다 퍼가서 하나도 남아있지 않으니...ㅉㅉㅉ

그래도 미니 장미라도 남아서 다행이지만...

모란도 작약도 철쭉도 고향집이 그리워 사다 심었더니 텍사스 태양이 싫다고 시들시들하더니 꽃도 안피우고 죽어버렸다.

여러가지 나리꽃, 개옥잠, 글라디올러스, 프리지아, 플록스, 수선화, 튤립...모두모두 날 슬프게 한 꽃들이다. 

가끔 날더러 무슨 꽃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엔 대답하는 것이 쉬웠다.

시시때때로 변하긴 했어도 가장 예쁜 꽃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갈수록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되어간다.

꽃밭을 가꾸어보니 철따라 필요한 꽃이 있기도 하지만 그자리에 꼭 필요한 꽃과 나무가 따로 있다.

키 큰 나무 옆에 필요한 키작은 나무...,

잎사귀 색깔이 붉은 나무 옆에 필요한 잎사귀 색깔이 노랗거나 회색이거나, 아니면 짙거나 연녹색을 가진 나무...

겨울잎이 잎이 지는 나무 옆에 겨울이 너무 쓸쓸하지 않게 해 줄 화사한 풀꽃이나 열매를 가진 나무...

노란색 꽃을 피우는 꽃 옆에는 노란색이 살아나도록 같은 시기에 보라색이나 푸른색이나 빨간색을 피워내는 꽃...

화단 가장자리는 사람들이 밟아도 죽지 않을 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하지만 키가 크지 않아 화단에 심어진 꽃을 가리지 않는 꽃...

거기에 더해 사막기후에 가까운 이곳 기후에 살아남을 수 있도록 자주 물 달라고 보채지 않는 꽃과 나무를 고르다보니  내가 좋아하는 꽃은 예쁜 것과 거리가 멀 때도 있다.

하긴 꽃도 사람과 같아서 외양보다 내면이 중요한지도 모른다.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곳에 있는 꽃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시들어 볼 품이 없다.

가끔 꽃을 보면서 내가 있어야 할 자리를 생각한다.

나를 세상에 보내신 이가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한다.

시멘트 보도블럭사이에서 노란 꽃을 피워내는 괭이밥을 보면서 부드럽게 거름과 섞인 꽃밭의 흙에 심겨져 시들어가는 꽃을 보면서...

사철 잎사귀 색깔로 꽃으로 아름다운 나무를 보면서, 짧게 한 철 화사한 꽃을 피우고 마는 풀꽃을 보면서...내게 주어진 삶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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